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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Name
잭 화이트(Jack White)
2024

by 김태훈

2024.09.08

푸른빛의 박하사탕을 깨물자 그 속에서 붉은 즙이 흘러나온다. 잭 화이트의 여섯 번째 솔로 앨범 < No Name >은 그의 음악 세계를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 3D 안경이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셀로판을 겹쳐 들여다보니, 그의 모든 것이 입체적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그 시절처럼 투박한 기타 톤과 정직한 드럼 비트는 물론, 개러지와 블루스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러 기타 리프와 함께 기타리스트로서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끌어안고 고성을 지르며 질주하는 그가 보인다.

화이트 스트라입스 시절의 미니멀리즘 성향에서 탈피해 더 넓은 판을 벌이고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던 지난 솔로 앨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것은 사실이다. 잭 화이트와 큐팁이 선사하는 합동 콜라주 작품인 < Fear Of The Dawn >의 'Hi-de-ho'라던가, 봉고 비트를 첨가하거나 예상치 못한 돌발 구성을 취하는 < Boarding House Reach >의 'Corporation' 같은 곡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전작 < Entering Heaven Alive >는 포크 록 위주의 구성으로 큰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이는 실력이 정점에 도달한 아티스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너리즘 탈피 수단이자 특이점 도달을 위한 탐구, 혹은 기행으로 보였다.

그러나 < No Name >은 앨범을 듣는 이들을 당황하게 만들거나 그들에게 복잡한 감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 시절의 화이트 스트라입스가 그랬듯, 단순명료한 비트와 구성에 몸을 흔들고 기타 리프 위에서 유영하다가 폭발 지점에서 미친 듯이 뛰놀면 된다. 첫 번째 트랙 'Old scratch blues'는 제목처럼 고전적인 리듬과 응어리진 감정의 덩어리를 긁어내는 거친 기타 사운드를 배합한 블루스로, 그의 회귀이자 전통적인 강점을 멋지게 빛내는 인트로다.

미니멀하면서도 함께 뛰놀기 좋은 포인트를 잡아내는 구성, 완급 조절이 뛰어난 쫀득한 기타 리프, 그리고 날카로운 비음의 보컬까지, 잭 화이트의 록 음악이 지닌 아이덴티티를 거의 모든 트랙에서 잡아낼 수 있다. 그중에서도 'That's how I'm feeling'은 가장 정수에 가깝다. 간단한 베이스 리듬으로 시작해 차근차근 세션을 쌓아 올리고 후렴에서 폭발시키는 구성은 정석적이지만 질리지 않는다. 'Oh yeah'를 외치는 잭 화이트의 목소리는 폭발한 사운드를 하나의 감탄으로 응축해 던지는 해방의 한 마디처럼 다가온다.

전체적으로는 < Elephant >의 노스탤지어가 배경을 그리지만, 그 위에서 화려하게 붓을 휘날리는 잭 화이트는 그 시절보다 더욱 노련하고 여유롭다. 'Archbishop Harold Holmes'에서는 특유의 신기 들린 듯한 보컬로 구원의 가사를 읊으며 지글거리는 사운드와 현란한 기타 연주에 광기를 더한다. 시원한 속주의 매력을 선보이는 ‘Bombing out'은 짧고 강렬한 펑크로, 앨범 중반부를 든든히 받쳐준다. 뒤이어 나오는 'What's the rumpus?'는 선명한 멜로디와 댄서블한 리듬으로 긴장감과 쾌감의 경계를 넘나들며 가장 매혹적인 트랙으로 자리 잡는다.

'Underground'는 전작과 비슷한 결이면서도 < White Blood Cells > 시절의 블루스 록에 지금의 여유로운 장난기와 현란함을 추가한다. 'Number one with a bullet'은 이전 트랙을 이어받는 듯하더니 메탈로 변모해 폭주하고, 'Missonary'에서는 2000 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개러지 록의 모습을 취한다. 정통 블루스 록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수미상관의 'Terminal archenemy endling'까지, 다양한 스타일이 담겨 있으면서도 어느 하나 동떨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잭 화이트의 정체성이자 과거로의 귀환 및 강화다.

많은 아티스트가 시간이 지나면 초심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옛날의 자신을 재현하려는 시도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일 것이다. 과거의 '나'는 오직 해당 과거에만 존재할 수 있기에, 섣불리 현재로 끌어오면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이 아니게 되는 아이러니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 No Name >은 결이 다르다. 단순한 회귀작이 아니라, 잭 화이트의 음악적 뿌리와 그가 쌓아온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향취가 배어 있는 간결한 구성이 음악적 토대를 이루고, 그 위에 각기 다른 빛깔의 열매를 맺은 나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한 숲을 이룬다. 그의 즐거운 로큰롤이 울려 퍼지는 안식의 땅에서는 통성명도 필요 없다. 각자가 짊어진 무거운 이름들을 잠시 내려놓고, 함께 모여 음악의 본질에 몸을 던지면 그만이다. 

-수록곡-
1. Old scratch blues [추천]
2. Bless yourself
3. That's how I'm feeling [추천]
4. It's rough on rat (If you're asking)
5. Archbishop Harold Holmes
6. Bombing out
7. What's the rumpus? [추천]
8. Tonight (Was a long time ago)
9. Underground [추천]
10. Number one with a bullet
11. Morning at midnight
12. Missionary
13. Terminal archenemy endling [추천]
김태훈(crapter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