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록 인터뷰

한경록

by 박효재

2008.01.01

홍대의 한 까페. 떡볶이 코트에 대충 매만진 머리, 작은 체구에 해맑은 미소를 짓고 내 앞에 앉아있는 한경록은 펑크 씬의 큰 형님이 아니라 그냥 옆집의 아는 형이었다. 연예인의 화려함이나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펑크 록 스타의 과격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밤이 깊었네'가 그리는 보통 젊은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말달리자'의 히트에 뒤이은 '밤이 깊었네'의 성공은 크라잉 넛의 음악적 방향 선회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분노에 가득차 '닥쳐'를 연발하던 젊은 청춘들이 이제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주변 사람들의 삶,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고나 할까. 나에 대한 관심, 주변 것들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 타인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성숙함이 인상적이었다. 5집에 이르러서 그러한 자기 세계의 확대는 정점에 이른다. 화끈한 로큰롤은 물론이고 레게, 폴카, 심지어는 트로트까지 끌어안는, 음악적 포용력의 최고치를 보여주었다.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 한경록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분명 크라잉 넛의 존재를 알린 것은 '말달리자'의 스트레이트함이었다. 언제나 정신없이 내달릴 것만 같았던 그들에게 어른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은 '밤이 깊었네'부터다. 아련한 향수가 묻어나는 음악,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힘든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공감할만한 멜로디와 가사쓰기로 크라잉 넛의 팬층은 가시적으로 확대되었다. 국민가수라고 부르기는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인디, 펑크를 내세운 밴드로서 이렇듯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디와 펑크를 수면으로 끌어올린 장본인, 십년이 넘는 긴 시간을 버텨온 중견밴드의 멤버로서의 자기 인식이 궁금했다. 또한 어쩜 그렇게 항상 열정적이고 순수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 그저 인간 한경록이 궁금했다. 막 공연 연습을 마치고 돌아와 지친 그는 우선 시원한 맥주 한 병을 시키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공연이 언제죠?
내일 모레요. (1월 19일 토요일). 연말에 너무 공연을 빡세게 해서 쉬고서 다시 하려니까 몸을 녹슬어서 죽겠어요.

어떤 공연이죠?
클럽 전국 투어를 돌기로 했어요. 대전, 광주, 대구, 부산 이렇게 클럽 공연을 오랜 만에 돌 예정입니다. 이번 주는 '크라잉 너트 쇼'라고 한 달에 한 번 내지는 두 번씩 홍대 클럽 드럭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대충 우리 크루들이 있다면, 락 타이거스, 문 샤이너스, 갤러시 익스프레스 등이에요. 당분간은 그렇게 공연을 많이 하고요, 관객 팬들도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일전에 만났을 때 권투 자격시험을 준비한다고 했잖아요. 합격했나요?
잊으셨나본데, 웃음. 3월이에요. 프로테스트요. 그런데 사실 저는 복싱한다고 말하기도 창피하죠. 그저 틈나는 대로 복싱과 맥주와 로큰롤과 사랑을 마시면서 살고 있습니다. 완전 미쳤어요. 저는 미친 새끼입니다. 웃음.

복싱, 맥주, 로큰롤은 바로 알겠는데, 그럼 사랑은 뭔가요.
모든 걸 사랑하죠. 아름다운 소녀와. 장미와 마티니. 거기까지. 제 인생을 사랑하죠.

펑크 로커가 꼭 하필 권투를 한다고 하면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저 사람은 뭔가를 막 풀어야 되나보다. 승질이 장난 아닌가보다 이렇게요.
예, 맞아요. 맞는 얘기에요. 전 그래요 좀. 가만히 못 있겠어요. 가만히 있으면 미칠 것 같아요. 자면서도 막 잠 버릇이 심하대요. 발정난 거죠 뭐 맨날. 웃음

맞을 때 아프지 않아요?
아파요. 정신이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투를 하고 싶은 이유는 뭐에요?
어렸을 때부터 복싱 보는 걸 좋아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때 도전자 허리케인을 봤는데, 그 당시 주제가의 가사가 너무 좋았어요. 시시하게 청춘을 보내고 싶진 않은 그런 거요. 김종서 씨가 불렀는데, 김종서 씨 노래 중에 제일 좋은 거 같아요. 그리고 뭐랄까, 권투를 통해서 살아 있다는 거를 시험하고 싶다고나 할까. 내 존재를. 내 인생을.

그 빡셌다는 연말 공연에 대해서 좀 얘기해 주겠어요?
굉장히 오랜만에 하는 콘서트였어요. 여름에 노 브레인이랑 한 번 같이 하려다가 삐걱 나가지고 굉장히 오랜 만에 하는 콘서트가 되어버렸는데, 보통 콘서트라고 하면 체육관 같은 곳에서 크게 하잖아요. 그런데 “그러지 말고 두산 아트센터랑 얘기를 해서 4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4일씩 공연을 하자”는 얘기가 나왔고, 우리는 굉장히 설렜죠.

우린 정말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아요. 다 보여주려면 두 시간은 해야 되요. 그래서 이건 좋은 찬스고 기회라고 생각해서 4일 동안 각 공연마다 컨셉을 다 다르게 잡고 하루하루 틀린 공연을 했어요. 로맨틱, 펑크 슬램, 호러 데이 이런 식으로요. 우리가 한 번 '도전'을 해봤던 공연인 거 같아요. 공연 시간도 게스트 출연까지 합하면 하루에 3시간이 넘었고, 공연만 한 게 아니라 뒤풀이도 매일 하고, 공연 중간에 미친 듯이 술도 마시고. 그런데 정말 힘들지가 않았어요. 너무 재밌었어요. 그게 너무 행복했어요. 물론 공연 중에 술 마신다고해서 대충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흥을 돋우잖아요. 이 공연에서 많이 배우고, 더 많이 키가 큰 것 같아요. 흥분할 수 있고 흥분 시킬 수 있는 거.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정신 나가봐요.

예전에 이즘과 인터뷰할 때 '애환'이나 '고통'을 담은 것에 끌린다고 말한 적이 있죠? '피에로의 비애'라고도 말했는데요. 제 생각엔 이 감성이 상당히 오랫동안 일관적으로 한경록 음악에 있어온 것 같아요. 이게 뭔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줘요.
제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아티스트는 찰리 채플린인데, 그런 걸 되게 좋아해요. 굉장히 재밌으면서도 웃음을 줄 수 있고, 웃기지만 실제로 보면 페이소스가 있고. 어떻게 보면 슬프죠. 그런데도 웃기고요. 뭔가 희망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고 마시고 취하고 그런 게 제 인생인 것 같아요. 그걸 또 노래로 부르고요.

나의 그런 페이소스가 담긴 음악적 감수성가 생기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어떤 커다란 상처? 아니면 결심?
그냥 뭐 계기는 없고,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배인 것 같아요. 음악을 이론적으로 자세히 배워서가 아니라 거의 느낌을 가지고 하니까, 그래서 오히려 그런 게 더 여과 없이 묻어 나오지 않나 싶어요. 순수하게. 기교 없이.

순수하고, 기교 없음. 그게 크라잉 너트의 장점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크라잉 너트의 음악에 대해서 'B급'이다, '아마추어적이다'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혹시 여기에 불만은 없어요?
더 멋있지 않아요? B급이? 멋쟁이들이지. B급 출신으로 해갖고 사랑 받고 그러잖아요.

제 생각엔, “우리가 이렇게 다양한 접근법, 장르, 확장을 시도했었고, 우린 정말 성숙한 밴드가 되었는데 우리를 왜 하필 'B급'이라고 부르나, 그냥 독특한 감수성이라고 해주지” 이렇게 느낄 줄 알았어요.
그거 불만 갖는 게 촌스러운 거지 뭐. 웃음.

한경록 씨의 감수성 중에 또 재밌는 건, 뭐랄까, 싸나이, 유머, 하류 같은 것들이 섞인 거 있잖아요. 이번 앨범에서 'OK 목장의 젖소'란 곡은 특히 세 가지가 정말 재밌게 결합된 가사 같은데. 그거 듣다가 혼자 방에서 낄낄 웃었어요. 웬만하면 집에서 혼자 잘 안 웃는데. 웃음.
하면서 저도 웃었어요. 그냥 상면이가 연주곡을 만들어왔는데 심심한 거에요. 제목을 뭘로 할까 결정하다가, “오케이 목장의 랄라?”, “그건 너무 간지럽잖아” 그런 얘기가 오갔고, “오케이 목장의 젖소 어때?” 했는데 “좋았어!”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그냥 장난 식으로 끄적거리다가 나왔어요. 그거 녹음도 '그냥 내가 한 번 해볼게' 하고 가이드 식으로 했는데 좋아하더라고요.

지금까지 밴드 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뭐에요?
작년 펜타포트 공연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아~ 2007 펜타포트요? 저도 거기에 있었어요. 그 때 정말 많은 관중들이 크라잉 너트 무대가 시작하자마자 일제히 무대 앞으로 몰려갔잖아요.
뭐랄까. 그건 아마 관객들도 재밌었겠지만, 우리가 무대에서 봤을 때 이렇게 물결이 치는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뭔가 한명 한명이랑 얘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죠. 아마 뭔가가 교감이 많았으리라고 생각해요.

'말 달리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혹시 '말 달리자'가 히트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래도 저는 음악을 하고 있었을 것 같아요. 우린 나름대로의 뚝심 같은 것들이 있는 거 같아요.

(계속 머뭇거리자) 너무 가혹한 질문인가요. 웃음. 그럼 질문을 바꿔서, '말 달리자'가 히트한 후에 달라진 건 뭔가요.
사실 히트한지 그런 것도 잘 몰랐어요. 그 당시엔 맨날 공연하고 그렇게 지냈으니까.

그럼 '밤이 깊었네'가 히트한 이후에 한경록에게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글쎄. 좀 더 약간은 로맨틱해진 것 같기도 하고요. 예전엔 지금보다 좀 더 미친놈처럼 술을 마셨는데, 요즘은 좀 더 재밌게 취하는 거 같아요.

크라잉 너트에 대한 기사, 평 같은 것들 나오면 다 봐요?
카페 같은 곳에 올라온 건 체크하는 편이에요.

혹시 크라잉 너트도 안티가 있던가요?
제 생각에는 그렇게 많이 있진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이건 제 생각인데, 크라잉 너트는 그렇게 미워할 짓을 한 적이 없잖아요. 또 저는 외모가 한 몫을 한다고 보는데, 일단 한경록 씨 외모부터가 좀 순진한 표정을 짓잖아요. 천진하게.
그거 다 가면이에요. 웃음. 제 생각엔 크라잉 너트 팬들이 좀 좋은 거 같아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초창기에 펑크를 한다고 하면, 대한민국에서 펑크 하긴 되게 힘들었어요. 정체성이 아직 자리를 잡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 1970대 상황이랑 비교를 하려고 한다고요. 세대가 틀리고, 나라도 틀리고 그런데, 그걸 갔다가 끼워 맞추려고 하니까 보는 사람들도 쟤네가 무슨 펑크냐 그런 말도 하고, 편 가르기도 많이 하고 그랬어요. 어떤 팬 분들은 '크라잉 넛은 가짜다' 그러기도 했는데, 그 때 우리 팬클럽에서는요, 팬들이 다른 밴드를 욕하는 건 못 봤어요. 그냥 신경 안 쓰고. 그게 멋있는 거 같아요. 그게 크라잉 너트의 힘이고 팬들의 힘인 것 같아요.

'펑크'라는 타이틀이 그래서 좀 무서운 것 같아요. 일단 그렇게 규정되자마자 다들 순수성이나 애티튜드에 대해 물고 늘어지니까요.
그래도 그렇게 고민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우리도 우리가 하는 게 과연 펑크가 맞을 것인가에 대해 잘 몰랐어요. '그거 맘대로 하는 거 아니야?' 하면서 술 먹고 싸우기도 했고요. 그런 고민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것도 없이 만들어지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그게 크라잉 넛이죠.

저희가 정말로 의도하고 만들진 않아요. 그리고 우선 자연스럽게 살면서 느낀 게 나온 거에요. '이번에는 좀 말랑말랑한 노래를 많이 쓰자', '이번엔 스카니까 스카를 많이 만들자' 이렇게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내가 그냥 살아온 게 이런 건가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6집은 좀 스트레이트하게 가봐야죠.

4집이 좀 그런 앨범 아니었어요? 하수연가 이후에 살짝 스트레이트하게 변신했던.
저는 4집이 좀 아쉽기도 해요. 너무 급하게 만든 감이 없지 않아요. 군대 가기 두 달 전에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었고, 잘 만들어야겠다는 중압감도 있었고. 그냥 힘이 좀 많이 들어간 듯한 앨범이에요.

군대에 있으면서 바뀐 점이 있나요?
우리는 클럽에서 공연 하면서 지내던 사람들인데, 이제 처음으로 제도권을 경험한 거잖아요. 그리고 완전히 쫄따구잖아요. 그런 것들을 경험을 하면서 '아 이렇게 세상이 돌아가는 구나'하고 느꼈고, 뭔가 좀 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크라잉 너트의 팀 워크와 호흡도 좋아졌죠. 군대에서 있으면 물론 하도 자주 보니까 짜증나는 일도 생기죠. 그런데 그걸 다 견뎌냈죠.

군악대를 가서 음악을 많이 배웠다고 할 수도 있죠. 색소폰도 좀 불어보고. 그리고 그곳은 옷 같은 보여주는 제식에 되게 충실해요. 어떻게 보면 쇼 적인 요소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도 어차피 쇼니까. 그런 것도 많이 배웠어요.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도 들어볼 수 있었어요. 예전에는 클래식을 들으면 그냥 들었는데 이젠 '아 여기에서 이런 악기가 쓰이는 구나' 하고 들려요. 얼마 전에 < 아마데우스 >를 다시 봤거든요. 예전에 봤던 거랑 정말 느낌이 틀리더라고요.

저도 그 영화 정말 재밌게 봤어요. 갑자기 그 장면 생각나네요. 왜 그 있잖아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악보를 하나씩 넘기는데, 배경 음악으로 그 음악들이 연주가 되고, 그러면서 살리에리 표정이 '뭐야 이 자식'하는 거. 노트에 있는 작품들이 다 명곡이라는 거 알고 엄청 질투하는...
아. 그거 좋은 편집이죠. 그래서 저는 그 영화의 주인공은 오히려 살리에리 같아요. 어릴 때 영화 볼 때는 무조건 '주인공이 이겨라!' 하고 봤으니까 몰랐는데. 웃음.

아마데우스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혹시 질투 나는 밴드 있어요?
요즘에는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그래요.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주말에 클럽 공연을 보러 많이 다녀요. 그런데 거기서 배울 점들이 굉장히 많아요. 실력 같은 거는 원래 오래 하면 다 잘 하기도 하는데, 그런 것보다도 무대에 임하는 자세라던가 열정이라던가 아니면 어떤 쇼적인 것도 재밌게 준비하는 팀이 있고. 최근에 본 팀들 중에는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이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내가 더 열정적이고 싶어. 특히 어떤 면을 칭찬하고 싶으냐면, 만약 이 음악이 외국에 나가면 '아~ 독특하다~' 이런 얘기가 있을 거 같아요. 외국엔 그런 게 없으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꼭 질투라고 하기보다는...

자극 받는다는 거죠?
네. (결코 질투하고 시기하는 사이는 아니라는 의미로) 서로 얘기도 많이 하고 그래요. 공연도 제일 많이 보고.

요즘 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최고의 기쁨조는 뭔가요. 다른 말로, 요즘 무슨 재미로 사나요.
생각보다 제 삶의 패턴이 너무 단조로워요. 음악은 계속 듣고 있어요.

그럼 주로 어떤 때 음악이 제일 끌려요? 나 같은 경우는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인데.
대중없어요. 자다가 일어났는데 음악을 듣고 갑자기 감정이 확 북받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아침에 햇살이 되게 따사로웠는데 베토벤 비창 1악장을 트는데 갑자기 베토벤 형이 피아노를 갑자기 확 치는데 눈물이 뚝 떨어지더라고요. 그 꽝! 한 음에서요. 그냥 바이오리듬에 따라서 끌릴 때가 틀려요.

술을 엄청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한두 번 경험해봤지만, 정말 잘 마시던데요. 주량이 얼마나 되나요.
많이 먹지는 않고요. 가볍게 즐기는 정도지 뭐. 웃음. 예전엔 2박 3일 콘도에서 나오지도 않고 마셨죠.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1박 2일로 마시긴 하는데요. 많이 약해졌어요.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술을 좋아하게 된 사연이나 이유가 있잖아요.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Rehab'에서 '나도 술을 그만 마시고 싶어. 난 단지 친구가 필요해'라고 했는데. 한경록이 술을 먹는 이유는 뭔가요.
술이 너무 좋아요. 우리나라는 마약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술을 마시면서 감성도 좀 돋우고, 불길에 휘발유를 붓는다고나 할까.

한경록의 가슴은 불씨고, 술은 휘발유군요.
작게 있는 불이라도 폭파를 시키죠.

그럼 술 마시고 만든 곡들이 있나요?
거의 다죠 뭐. 웃음.

크라잉 너트는 데뷔 이후에 한 명의 멤버 교체도 없이 (추가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왔잖아요. 그게 참 신기하고 대단한 지점이에요.
그게 아마 연주 테크닉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우리는 크라잉 너트가 같이 뭉쳤을 때 제일 멋있다는 걸 알았죠.

그렇게 오래 동안 같이 할 수 있는 힘이 뭔가요.
긍정적인 거요. 너무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아요. 안 될 거를 너무 염려하지 않아요. 그냥 항상 희망적이죠.

남의 음악 들으면서 제일 먼저 들여다보는 부분은 뭐에요.
나는 딱 멜로디죠. 한 소절의 멜로디? 그것만 들으면, 아니면 가사와 어울리는 딱 한 구절만 들어보면, 그 음악의 정체를 알 수가 있죠.

아까 칭찬한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그런 점에서 어떤 거 같아요.
갤럭시가 잘하는 거는, 굉장히 좀 정신이 없는 것 같은데 하나로 호흡이 맞춰가고, 그러다가 가끔씩 하나씩 좋은 멜로디를 내놓더라고요. 좋은 작전이에요. 잘 뽑는 것 같아요. 그리고 포지션 간의 밸런스가 좋아요. 하나에 집중하기보다는.

라몬즈의 노래 중에 '난 어른이 되기 싫다'는 노래가 있잖아요. 한경록도 그런 편이에요?
그거 탐 웨이츠의 'I don't want to grow up'하고 같은 그 노래 말이죠? 아는 형 한 명이 자기 생일만 되면 그거 틀어놓고 (탐 웨이츠 버전) 술 먹고 그랬어요. 웃음.

불안하지 않아요? 이 삶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가끔씩 이런 생각해요. 제가 지금까지 작곡을 할 때는 정말로 별 생각이 없이 흥얼거리다가 나온 게 많거든요. 기타 잡고 노래하면서 낙서하고, 글 쓰고 그런 걸 좋아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다가 집중하면 한 곡이 나와 있고 그렇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 '안 나오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자연스럽게요. 그런데 잘 나오더라고요 아직은. 웃음. 헤밍웨이가 죽을 때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아' 하고 자살했다던데.

나중에 만약 그렇게 되더라도 자살은 하지 마세요. 웃음.
저는 사는 걸 되게 좋아해요. 일단 살아있다는 게 되게 좋아요. 술에 취해서 숙취로 고생할 때도 좋은 거 같아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예전에 누군가가 쓴 글 중에, 내가 가장 살아있다고 느낄 때는 미친 듯이 찬바람을 맞을 때나 고통스러울 때라고 하더라고요.
극한에 있을 때죠.

한경록의 가사는 일부러 현학적인 언어를 피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학적인 거 싫어해요. 일부러 뭐 전문 용어 같은 거 써가면서 하는 건 좀 그래요.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이런 게 있어요. 단어가 어렵지 않아도 뜻은 굉장히 심오하고 재밌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곡이 좋아요. 그래서 단어 자체만 봐도 재밌고, 아이들도 좋아하고, 어른들도 좋아하고.

자신이 쓴 가사 중에 제일 맘에 드는 거 하나를 고른다면?
'OK 목장의 젖소'

혹시 스스로 '밤이 깊었네'에 대한 애정이 많지 않은가요?
'서커스 매직 유랑단'이랑 '밤이 깊었네'가 저의 주제가이긴 해요. '밤이 깊었네'를 만들고 나서 좋았던 건, 이걸 녹음하고, 믹스하고, 이제 마스터하기 전이었는데, CD를 들으면서 홍대 밤거리를 돌아 다녔죠. 혼자 술도 마시고. 기분이 되게 행복했죠. 이 기분이 나쁘진 않았죠. 제가 저한테 부르는 노래인 거 같아요.

만약 솔로 앨범을 낸다면, 어떤 음악으로 채우고 싶은가요.
한 번 이런 건 계획해본 적 있어요. 한 열 세곡 정도를 듀엣 곡으로 여자를 다 바꿔가면서 한 앨범을 내는 거죠. 웃음.

단지 계획뿐이 아니라 언젠가 정말로 솔로 앨범 내보고 싶지 않아요?
한 번 내야 되지 않을까요. 음악을 하면은.

혹시 6집을 구상했나요? 어떤 앨범이었으면 좋겠어요?
크라잉 넛이 클럽에서 95년부터 했으니까, 13년 쯤 됐거든요. 술로 따지면 '크라잉 너트 14년산 음악'을 준비할 것 같아요. 음악적으로는 계속 '시도'를 하지 않을까 해요.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싶어요. 아직 녹음을 안 들어가긴 했지만, 새로운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이제 한경록도 속된 말로 홍대에서는 짬밥이 좀 되잖아요. 후배 밴드들에게 한 마디 해주시죠.
일단, 존경하는 홍대의 후배 밴드 언니 오빠 동생 밴드 여러분, 제 생각에는 조금 더 미치십시오. 이거 뭐랄까, 제 생각에는 제 정신에서는 예술이 안 나오는 것 같습니다. 미쳐야죠. 또 자기 자신이나 자기 밴드를 표현하는 데에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음악만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음반 시장이 안 좋으면 오히려 자기가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면 자기 영역을 넓혀가고, 독불 장군으로 남기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밴드들과 신을 만들고. 그렇게 하는 게 서로 간에 보기가 좋지 않을까. 그러면서 좋은 경쟁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가르쳐주기도 하고, 자극도 받고. 그래서 썩어빠진 한국 음악에 쿠데타를 일으킵시다.

원더 걸스의 텔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원더 걸스가 일단은 국민들이 다 알고 흥얼거리잖아요. 어떻게 보면 국민 가수죠. 하지만 국민 가수는 홍대에서 나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거기까지. 웃음.

아직도 혹시 가슴에 남은 불만 같은 거 있어요?
일단은 내 자신이 극복하지 못하는 영원히 살 수 없는 거. 웃음. 사회에 불만도 많이 있죠. 부조리 같은 것도 많이 있고. 불만을 따지다보면 너무 많죠. 나뿐만 아니라 억울한 사람들. 그들의 편에서 노래를 만들겠습니다. 근데, 이거 너무 상투적인가? 크크.

인터뷰: 이대화, 박효재
정리: 박효재, 이대화
사진: 배강범
박효재(mann61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