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절과 메아리로 가득한 전작 < 우리는 깨끗하다 >의 목욕탕 사운드는 4년 동안 습기가 많이 말랐다. 욕실의 공명감과 입체감은 여전하지만 보컬과 기타의 소리가 한층 명징해졌다. 특유의 에코와 오버더빙은 높은 음역대의 신디사이저로 대체되어 환상성과 밀고 당기기의 테크닉을 더한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오래된 남자와 여자가 스텔라를 탄다는 뜻) 음악은 밴드명만큼이나 제멋대로이고 비정상적인 감성을 발산한다. 특히 타이틀에서 명시된 특정 장소(그것이 진짜 우정을 위한 장소일지라도)에서 동반하는 울렁거리고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내밀한 속사정을 '툭'하고 자연스레 내뱉는다. 별다른 의미 없이 나열된 가사 속에 결정적인 단어 몇 개가 고막에 박혀 쉽게 넘어가지도 않고 좀처럼 빠지지도 않는다. 여기에 계속해서 다른 무늬를 그려내는 업템포와 조웅의 의뭉스러운 보컬이 자신의 세계를 뻔뻔한 얼굴로 관철시킨다.
놀랍도록 분방한 음악 구조도 상투성을 피해 맥락을 뒤튼다. 이들의 노래는 일찌감치 장르의 선을 지워버렸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주행한다. 장르를 으깨고 형태까지 부숴버리는 파괴적 진행은 온갖 것을 용해시켜 복잡심란한 틀에 부어낸다. 이 틀을 그들은 한동안 '퍼스널컴퓨터 록'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악기의 입지를 세움으로서 '2인조'와 '17인치 모니터'의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이들의 스텔라는 '변주'로 향한다. 잘 달려가다가도 일부러 길을 이탈하고 주변의 풍경을 향해 돌진한다. '귀여워'에서 갑자기 곡은 유턴해버리고 '남쪽으로 간다'는 아예 트로트로 우회한다. 이들의 옆자리에 앉아 '감기망상'과 '프라블럼'의 사운드스케이프를 바라보면 상상력에 따라 변화하는 개성강한 작법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음악은 지독한 '허무주의' 속을 헤맨다. 그것이 이들의 음악에 그저 몸을 맡기고 취해 마냥 즐거워할 수 없는 이유다. 이들은 끝없이 공허함과 외로움에 대해 노래한다. 우리는 아침에는 같이 누워있지만 난 너의 이름도 모르고, 결국 너와 나는 연결되지 않는다. 이런 어색하고 황량한 상황은 이들에게 계속해서 진지하고 처절한 음색을 요구한다. 미친 듯이 놀다가 홀로 터벅터벅 돌아가는 길, 만취한 다음날 밀려오는 허탈감이 모텔방 안을 가득 매운다.
-수록곡-
1. 건강하고 긴 삶 [추천]
2. 샤도우 댄스
3. 귀여워 [추천]
4. 남쪽으로 간다
5. 굳모닝
6. 장단 [추천]
7. 본격적인 마음
8. 아침의 빛
9. 감기망상
10. 생두부 [추천]
11. 집시여인 [추천]
12. 백야
13. 프라블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