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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N
퍼퓸(Perfume / パフュ_ム)
2011

by 황선업

2011.12.01

아, 영리하다. 여태까지 퍼퓸의 음악을 들어온 사람이라면 탄복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2년 4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워프해 날아온 이 3인조 테크노 유닛의 신작은 '아이돌에게 있어서 진화란'이란 명제에 색다른 해답을 내놓는 인상적인 작품으로 다가올 여지가 다분하다. 항상 다른 길만 걸었던 그들이기에 내놓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이던스라 할만하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그들이 추구해 온 음악 덕분이었다. 캡슐(Capsule)의 핵 나카타 야스타카(中田 ヤスタカ)와의 만남으로 구축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는 다른 그룹과 선을 그으며 훨씬 넓은 층의 팬들을 흡수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 활동했던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 이후로 끊겼던 '음악으로 먼저 인정받는' 아이돌의 계보를 복원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문적인 장르'를 다루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팝의 정서는 일정부분 봉인되어야만 했고, '편곡은 코어하게, 멜로디는 단순하게, 보컬은 오토튠으로'라는 것이 전작이었던 < ⊿(Triangle) >까지의 정석이었다.

다시 말하면 의도치 않게 '대중성'이라는 최강의 무기를 지금까지 아껴온 셈이다. 그래서 이번엔 이를 마음껏 개방했다. 지금이 바로 소리의 틈에 감추어 두었던 테이스트를 발현할 최적의 시기임을 직시한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과 노하우에 더욱 다채로운 향기를 부여하는 '멜로디'의 가세로 여태까지 유지해왔던 수면 아래에서의 차가움 뿐만 아니라 그 곳으로 투사되는 한 줄기 빛의 열기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야말로 회심의 한 수, 비장의 카드에 비견될 만 하다.

두 신스 루프의 정면충돌로 생겨난 파장이 캐치한 선율을 흡수하며 총천연색 이미지의 선명함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Glitter'가 변화된 일면을 농도 짙게 함축하고 있다. 여기에 상징과도 같았던 오토튠을 배제한 자연스러운 보컬 톤은 '일렉트로니카'에서 '테크노 팝'으로 저울추를 조금 더 기울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한음절한음절 분절시켜 블록을 쌓듯 다양한 방법으로 조립해 입체감을 피력한 'レーザービーム(Laser Beam)'은 '연애는 분명 레이저빔'이라는 가사처럼 한 곳을 꿰뚫는 강한 소리의 광선을 내뿜으며 확실한 기선제압을 도맡고 있다.

사랑으로 인해 뛰는 가슴을 운동경기에 비유한 '心のスポーツ(마음의 스포츠)', 왠지 롤플레잉 게임에서 나올법한 분위기를 띄며 그룹의 세계관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해 낸 '時の針(시간의 바늘)'도 지나칠 수 없는 트랙이다. 좋아하는 대상과의 미묘한 거리감을 곡으로 표현해내는 퍼퓸만의 감성은 그대로 두고 좀 더 기승전결의 맥락을 부여하며 포퓰러한 느낌을 부각시켰다. 그 밖에 기존의 노선을 이어받은 'ねぇ(저기...)', 본인들도 불가능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던 랩을 매끄럽게 소화해낸 '575' 등에서도 여러 캐릭터로 분하며 알차게 러닝타임을 꾸며냈다.

이러한 눈에 띄는 전진이 한 번 더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곡 작업을 도맡고 있는 나카타 야스타카(中田 ヤスタカ)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멤버들이 주체적으로 작사와 작곡을 맡으며 음악적인 능력을 어필해야 한다는 한국만의 '아이돌의 정점은 아티스트다'라는 인식에 반기를 드는 앨범이라는 데에 큰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어쨌든 무대에 서는 '퍼포머'이기에 안무나 가창에서의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그것에만 온 힘을 기울였다. 그것이 결국 성장이라는 단어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누군가 '잘하는 걸 더 잘할 생각을 해야지 왜 못하는 것을 붙잡고 있느냐'라고 했다. 정확히 자신의 역할을 나누어 그 능력을 극대화시킨 이 앨범은 정확히 그 점을 간파한다. 장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단점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굳이 이미지의 변화를 주려고 무리하지 않아도, 가수 스스로가 자작곡을 만들거나 프로듀싱을 하지 않아도 음악성과 대중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포획할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오랜 공백을 < JPN >이라는 야심에 찬 타이틀로 대수롭지 않게 극복해낸 퍼퓸. 이 세 명의 아가씨들이 에이케이비포티에이트(AKB48)나 아라시(嵐)와 같은 정통파에서 벗어난 사파의 정상에 설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수록곡-
1. The opening
2. レーザービーム(Laser Beam) (Album-mix) [추천]
3. Glitter(Album-mix) [추천]
4. ナチュラルに恋して (내츄럴하게 사랑해줘) [추천]
5. My color [추천]
6. 時の針 (시간의 바늘) [추천]
7. ねぇ (저...)
8. 微かなカオリ (아련한 향기)
9. 575
10. Voice [추천]
11. 心のスポーツ (마음의 스포츠) [추천]
12. Have a stroll
13. 不自然なガール (부자연스러운 소녀)
14. スパイス (Spice)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