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작곡가 존 오스왈드(John Oswald)는 악곡을 포함하여 라디오나 TV, 영화 등의 대중매체에서 사용된 음성과 갖가지 소리들을 재조합하여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작법에 대해 ‘약탈하다’라는 뜻의 ‘Plunder’에 ‘소리를 이용한 장치’의 ‘Phonic’을 붙여 플런더포닉스(Plunderphonics)라고 명명했다. 마이클 잭슨의 ‘Bad’를 잘게 쪼갠 뒤 재배열한 ‘Dab’과 같은 오스왈드의 난해한 실험작들은 대표적인 플런더포닉스 음반이라 할 수 있는 디제이 섀도우의 1996년작 < Endtroducing..... >처럼 턴테이블리즘에 기반을 둔 음반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약탈’, 좋게 말해 ‘재조합’의 음악을 순수 창작물로 바라봐야 할지의 대한 여론은 아직도 이분되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플런더포닉스가 힙합의 샘플링 작법을 발전, 성행시키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플런더포닉스하면 빠질 수 없는 음반이 호주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그룹 애벌랜치스의 데뷔 앨범 < Since I Left You >이다. 장편 러브스토리를 모티브로 한 음반엔 세르지오 멘데스, 마돈나, 랙원 등의 음악뿐만 아니라 캐나다 코미디 듀오, 웨인과 셔스터(Wayne and Shuster)의 만담과 영화 < 성공시대 >의 음성 등, 총 3500개가 넘는 샘플들로 도배되어있다. 이처럼 어떠한 연관성도 찾을 수 없는 샘플들 사이에 연결 다리를 놓는 마술은 ‘Since I left you’와 같은 근사한 파티용 음악으로, ‘Flight tonight’과 같은 빠른 리듬의 빅 비트 음악으로도 ‘Frontier psychiatrist’과 같은 인스트루멘틀 힙합 트랙으로 나타난다.
‘소리의 벽’을 고안한 필 스펙터부터 존 오스왈드와 비스티 보이즈까지, 애벌랜치스 본인이 경험한 예술가들의 작품들에게 찬사를 던지는 듯한 음반은 듣는 이에겐 하나의 큰 노스탤지어 덩어리가 된다. 1980년대 팝이나 고전 영화 등, 옛 것의 조각들을 집대성한 < Since I Left You >가 추억들을 소환하거나 혹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킬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현재의 진귀한 경험을 선사하는 멋진 음반임은 틀림없다.
-수록곡-
1. Since I left you [추천]
2. Stay another season
3. Radio [추천]
4. Two hearts in 3/4 time
5. Avalanche rock
6. Flight tonight [추천]
7. Close to you
8. Diner’s only
9. A different feeling
10. Electricity
11. Tonight
12. Pablo’s cruise
13. Frontier psychiatrist [추천]
14. Etoh
15. Summer crane
16. Little journey
17. Live at Dominoes [추천]
18. Extra k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