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EP < If U Want It >으로 피치포크(Pitchfork)와 믹스맥(Mixmag) 등 해외 웹진의 호평을 등에 업고 일렉트로니카 씬의 총아로 부상한 박혜진은 더 넓은 도약의 발판을 꾀한다. 두 번째 EP < How Can I >가 선택한 본격적인 재료는 테크노다. 레이브(Rave) 문화의 역동성을 머금은 사운드는 어느덧 부드러운 유희 단계를 넘어 힘차게 꿈틀대기 시작하고, 이윽고 내재한 춤의 본능을 끌어낸다.

전작이 다운템포(Downtempo)의 몽환적 성질과 정직하고 나긋한 타점으로 안정적인 구심점을 자아냈다면 현작은 정반대 방식으로 귀를 잡아끈다. 트랙이 넘어갈수록 거듭 바뀌는 스타일과 꾸준히 가속을 받으며 빨라지는 BPM, 이 과정에서 박혜진이 가진 스펙트럼을 폭넓게 담아내려는 시도가 적극적으로 배어 나온다. 두 작품 모두 실력의 증명이라는 같은 방향성을 가짐에도 필체에 있어 '신중'과 '과감'이라는 차이를 지닌다.

흐릿하게 각색된 '나는 오늘도 이렇게 눈을 떠'의 한국어 문장과 익숙한 작풍으로 앨범의 포문을 알리는 'Like this'와 달리 이후 나오는 수록곡 대부분이 새로운 세계관에 투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양상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No'다. 차가운 테크노의 예열 단계인 'Can you'와 투 론 스워드맨(Two Lone Swordsmen)의 아쿠아틱 질감이 묻어나는 'How can I'을 지나면, 디제이 셋 리스트로 착각할만한 단순하고 원초적인 트랙들이 등장한다.

눈여겨볼 점은 후반부 곡들이 가진 다채로운 박자감과 이를 이용해 밀어붙이는 그 기세다. 멜로디의 살을 발라내어 뼈대만 남은 곡들의 음침함은 전작의 친절함과 거리가 멀고 다분히 박자 중심적이지만, 멜랑꼴리한 박혜진의 보컬을 살짝 흘려보낸 뒤 둔탁한 킥 드럼과 점차 강해지는 기계적 리듬으로 마치 클럽 인파에 섞인 듯한 최면 효과를 부여한다. 부족한 인간성은 마지막 트랙 'Beautiful'가 가진 선율의 온기로 공급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앨범은 멜로딕(Melodic) 하기보다는 스킬풀(Skillful)에 가깝고, 따라서 진지한 감상을 요하기보다 가볍게 듣기 좋은 노동요로 어울린다. 골치 아픈 콘셉트나 따분한 교훈을 배제한 < How Can I >는 본인을 철저히 스트레스 해소의 촉매로 소개한다. 청자에게 정신을 뒤흔들 무작위의 댄스 플로어를 호출하고, 디제잉이 이뤄지는 그 현장의 도파민을 집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수록곡-

3. How can I

4. No

6. Beauti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