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 성장기로 써내린 소년만화에 마침내 찾아온 본격적인 전투. 동정 어린 응원과 진정한 인정 사이 의구심을 타파하는 필연적인 과정으로, 여기저기 입소문으로 명성을 쌓아왔던 스카이민혁은 이 출정에 '해방'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복선과 서사는 충분하다. 열등생 취급을 받던 이가 꾸준한 창작열로 우상향하는 실력과 완성도를 보여줬으니 이제 한계를 온전히 해금하고 정점을 찍을 적기다.

과거를 양분 삼고 극복하여 납득과 감탄을 쟁취한다. 사람들이 주목했던 짙은 호소력과 날것의 가사를 유지하면서 랩 스킬도 날카롭게 다듬은 덕분이다. 자신감과 열등감을 동시에 표출한 '14-23', ‘욕심’처럼 자기고백형 트랙들은 여전히 대중을 주목시킬 힘을 갖췄고, 특유의 에너지와 플로우가 인상적인 ‘식사’나 소울컴퍼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올드 스쿨 넘버 ‘Outcome’도 환골탈태의 증거로서 충분하다.

결국 모두가 주목하는 무대에서 청취자들이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제대로 기회를 잡은 것이다. 자기 캐릭터를 뚜렷하게 각인하는 영리함과 이를 위한 근면함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업계 주변인에 불과했던 이가 중심에 파고들어 훼방을 놓을 때 느껴지는 희열감은 이 음반의 절정. 비정하고 음울한 맛을 살린 멤피스 랩(Memphis rap)은 그 감정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악귀 같은 랩을 쏟아내는 ‘해방’과 가족사를 콘셉트로 활용한 ‘아버지’는 느와르 영화처럼 거칠고도 풍성한 만족을 선사한다.

공격적인 반전으로 작품의 가치도 서서히 드러난다. 이제 그의 언어는 개인사와 내면이 아닌 밖을 향한다. 안정기에 접어든 업계의 중진들과 그를 뒤쫓는 신예들에게 날리는 통쾌한 펀치 한방. 복고 힙합 양식의 ‘현주소’는 철저히 내부를 관찰해 작성한 르포고, ‘내 방에서 나가’는 그 행태에 대한 일종의 쿠데타 선언이다. 목말랐던 팬들은 금기를 깬 그의 선전포고에 해방감을 느낀다. < 해방 >이 단순히 사적인 기록에 그치지 않고 청중 각자로, 그리고 힙합 문화 전체로도 확장될 수 있는 이유다.

발전적 논의가 사그라든 작금엔 이런 발포가 더 필요하다. 숱한 래퍼들이 성공을 과시하고 추종자들의 추앙만을 양식으로 삼을 때, 그는 가감 없는 감정과 경험을 분출하며 독보적인 위치를 획득했다. 자기혐오와 열등감으로 얼룩진 이들이 함께 한 연대, < 해방 >은 2년 전 최엘비의 < 독립음악 >과는 유사하면서도 또다른 방식으로 너른 공감대를 형성한다. 업적이 빛났던 올해 한국힙합의 트로피 전시 속, 유일하게 공감과 가치를 쟁취한 스카이민혁의 해방일지다.

-수록곡-

1. 14-23

2. 식사 (Feat. 필리) [추천]

3. Outcome (Feat. 쿤디판다)

4. 아버지 (Feat. 권기백)

5. 현주소 [추천]

6. XXK Next Level (Feat. XXK)

7. 내 방에서 나가 [추천]

8. 파이트 (Feat. 코르 캐쉬) [추천]

9. 해방

10. 공생

11. 진실

12.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