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호화로운 라인업과 다채로운 형식, 매혹적인 질감을 한 호흡에 몰아넣을 수 있는 인물이 과연 몇이나 될까. 흑인음악을 중심으로 온갖 장르를 섭렵하며 획득한 식견과 명석한 두뇌에서 말미암은 탁월한 감각, 수많은 재능을 끌어모으는 인간적 매력과 명성, 또 이들을 한 방향으로 이끄는 리더십이 동시에 반영되지 않고서야 좀처럼 도출되기 어려운 결과다.
우선 크레딧을 상다리가 부러질 듯 채운 참여 인력의 면면이 눈에 들어온다. '섹시느낌'에서도 접점을 맺은 크루 바밍 타이거의 프로듀서진, 6월 초 컴필레이션 앨범 발매를 예고한 박쥐단지 소속 인디 거물들(실리카겔 김한주, 제이클레프, 김아일)뿐만 아니라 영국 힙합의 젊은 여제 리틀 심즈, 주가를 잔뜩 올리고 있는 재즈 듀오 도미 앤 제이디 벡, 섬세한 감각의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모제스 섬니 등 걸출한 해외 인사들까지, 국내외 곳곳의 고수들을 끌어모은 알엠식 '송캠프'는 자연스레 작품의 다채로운 질감으로 연결된다.
제 색깔이 강한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할당하는 솜씨 또한 인상적이다. 까데호 이태훈의 참여로 독보적인 그루브를 획득한 'Nuts', 일본어 합창에서 바밍 타이거의 향취를 강하게 내는 'Domodachi', 도미 앤 제이디 벡의 손길이 잔뜩 뻗친 인터루드 '?' 등의 인력 배치는 물론 앨범의 전체적인 트랙 배열까지 모두 이렇다 할 군더더기가 없다. 의심의 여지 없이 알엠 본인의 높은 음악적 이해도와 강력한 리더십의 결과다.
이토록 수많은, 또 커다란 재능들의 가담이 더욱 놀라운 이유는 그럼에도 작품의 중심축이 흔들림 없이 아티스트 본인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색채를 보여주는 와중에도 < Igor >의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 The Forever Story >의 제이아이디가 연상되는 재즈풍 힙합/네오 소울의 방향성을 강하게 견지하면서 그 통일성으로 사운드 각각의 감흥을 더욱 끌어올린다. 길을 잃은 화자의 심리를 불안정한 소리로 표현한 타이틀 트랙 'Lost!'는 그 대표적인 예시.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Earfquake'를 호기롭게 재해석하면서 다방향의 조력(助力)을 한 줄의 선으로 집중시킨다. 본작의 대규모 협업을 협업 이상의 협력이라고 표현해야 할 이유다.
다소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던 알엠의 랩도 강한 응집력과 함께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가사를 둔탁하게 밀어 넣던 면모는 줄어들었고 소리 위에 부드럽게 띄워 보내는 빈도는 눈에 띄게 늘어났다. 여러 동료와 협력의 과정을 겪으며 알엠 스스로도 한 단계 발전한 것이다. K팝의 상업성을 상징하는 하이브의 아스팔트 위 들꽃처럼 피어난 연결과 협동의 미학, 함께라는 가치를 극대화하며 찾아낸 진정한 의미의 독립이다.
-수록곡-
1. Right people, wrong place
2. Nuts [추천]
3. Out of love
4. Domodachi (With. Little Simz) [추천]
5. ? (With DOMi & JD Beck) [추천]
6. Groin
7. Heaven
8. Lost!
9. Around the world in a day (With. Moses Sumney) [추천]
10. ㅠㅠ
11. Come back to me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