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계 영국인 싱어송라이터 비바두비의 꾸준한 오름세가 무섭다. 인터넷에 커버곡을 업로드하던 십 대 소녀가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어 어느덧 세 번째 정규 앨범을 내놓았다. 그는 < This Is How Tomorrow Moves >를 통해 발아 이전의 미숙한 모습에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는 새 시대의 총아로 거듭나기까지의 가파른 성장 가도에 방점을 찍고자 한다.
한계점부터 밝히고 시작하자. 헷갈릴지언정 쉬이 잊히지 않는 이름과 달리 가창 방식은 그리 낯설지 않다. 중반부에 자리 잡은 ‘Tie my shoes’와 ‘Girl song’에선 빌리 아일리시가, 말미에 위치한 미니멀한 구성에선 렌카가 연상된다. 전조 지점에 보컬의 수몰이 아름답게 합치한 ‘Real man’과 ‘Ever seen’의 프리코러스를 통해 본연의 실력을 만날 수 있지만 고유하다 말하긴 어렵다. 개념도 모호한 베드룸 팝을 다루는 뮤지션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엇비슷한 잔상으로 얽혀있다. 때문에 유사성으로부터의 탈출은 몽롱한 보이스 바깥에 존재하는 음악 그 자체의 우수성이 기준일 수밖에 없고 비바두비는 이에 초점을 맞춰 자신만의 바운더리를 견고하게 구축한다.
같은 목소리도 담긴 그릇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법이다. 과거 음악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기반으로 한 우물만 파기보다 여러 장르를 준비하는 전략을 택해 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인다. 너바나와 벡 풍의 기타로 시작해 건반 플레이를 위시한 팝 트랙과 보사노바 리듬에 포크의 문법을 결합한 어쿠스틱 구간으로 이어지더니 노 다웃의 향기가 느껴지는 록 트랙이 다시금 존재감을 드러내고 종반에 이르면 컨트리 요소를 담은 통기타 트랙을 마주한다. 뿐만 아니라 반세기 이전의 정취를 재현하는 선율과 오늘날의 팝 사운드를 적절히 안배하여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장르의 폭과 시제의 폭을 동시에 성취한 점 또한 고무적이다.
허나 제아무리 물이 오른 싱어송라이터라 할지라도 신보 작업의 모든 과정을 혼자 헤쳐가다 보면 객관성을 잃기 마련이다. 본인의 직관을 철저히 믿거나 타인의 시선을 빌려 혜안을 얻어야 하는 갈림길에서 비바두비는 후자를 택했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제이 지, 아델, 린킨 파크 등 수많은 음반을 제작한 전설적인 프로듀서 릭 루빈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이미 모든 작곡이 완료된 상태에서 그에게 부탁한 사안은 음향과 연주. 세션의 라이브 녹음을 확실하게 끝낸 뒤 다음 작업을 진행한다는 대전제는 음원에서 티 없이 깨끗한 사운드와 질감으로 구현된다. 드넓은 들판에 피어난 다양한 꽃으로 그림을 그리던 비바두비에게 미처 생각지 못한 뿌리의 중요성을 알려준 셈이다.
앞서 발매한 두 장의 정규 앨범은 십 대만이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의 낱말로 외줄타기 같은 삶의 불안함을 담아냈다면 약관의 나이를 넘어 발매한 < This Is How Tomorrow Moves >에선 점차 성숙을 찾아가는 과정이 돋보인다. 그동안 환경 탓으로 돌렸던 모든 문제의 원인이 사실 나에게 있었다는 명료한 명제를 말하기 위해 현재 그를 감싸고 있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하나씩 음악으로 승화한 모양새다. 모든 음악가가 그 나이에 맞는, 그때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한다지만 비바두비는 분명 같이 출발선에 섰던 동료들보다 이르게 철이 들어가고 있다. 원숙미를 겸비한 그에게 프로듀싱 감각이 보완될 미래를 그려보니 다시 한번 무서움이 엄습한다.
-수록곡-
1. Take a bite [추천]
2. California [추천]
3. One time
4. Real man [추천]
5. Tie my shoes
6. Girl song
7. Coming home
8. Ever seen [추천]
9. A cruel affair
10. Post
11. Beaches [추천]
12. Everything I want
13. The man who left too soon
14. This Is how It w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