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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In The Wild
템스(Tems)
2024

by 신동규

2024.08.29

그간 유행하지 않던 장르가 인기를 얻게 되면 시류에 편승한 곡이 쏟아져 나오기 마련. 작금을 뜨겁게 달군 화제의 장르 아프로비츠 또한 어느덧 수없이 양산된 아류의 물량 공세에 열병을 앓는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산업적 세태에도 뚝심 하나로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음악가는 존재한다. 진지한 접근으로 차근히 영역을 넓히며 해당 장르를 탐구해 온 템스가 대표적인 예시다.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의 본토 음악을 수혈받은 템스는 아프로비츠의 차기 스타로 자리매김할 실력을 갖췄음에도 타일라의 데뷔 앨범이나 비욘세의 < Renaissance > 등 다수의 협업으로만 대중에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수년 간의 작업 끝에 본인의 얼굴을 내건 첫 정규 앨범 < Born In The Wild >를 선보이며 홀로서기에 첫발을 떼고자 한다. 토속 리듬 특유의 경쾌함을 무기삼아 차세대 검은 별이 되기 위한 야망의 발톱을 드디어 드러낸 것이다.


우선 탁월한 배합 능력이 빛난다. 본국의 뮤지션과 타국의 래퍼를 이은 기민함, 아프리카 억양의 영어와 라틴어를 횡보하는 개성은 차별점을 낳는다. 나아가 아프로비츠에 레게나 댄스홀의 특성을 결합해 나이지리아에서 인기를 끈 알테(Alté)에 오늘날의 알앤비와 힙합을 섞어 장르 면에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보컬은 어떨까. 단번에 로린 힐과 샤데이 아두가 떠오른다. 한 사람은 레게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았고, 다른 한 사람은 템스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음악을 했으니 유사할 법도 하다. 이렇듯 융화와 참조로 구축한 독자성을 토대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덧입혀 완성도를 높인다.

 

앨범명 그대로 야생(빈가 혹은 빈국)에서 태어나 배회하던 성장기를 고백한 첫 곡 ‘Born in the wild’, 뮤지션의 길을 걸으며 느낀 고통을 담은 ‘Burning’, 1999년 아프리카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던 매직 시스템의 ‘1er gaou’를 샘플링한 ‘Wickdest’ 속 유명인이 된 자신을 옥죄는 시선을 풀어낸 가사까지 애써 꾸미지 않은 솔직한 노랫말로 본인을 주저 없이 드러낸다. 유년기부터 시작해 원숙을 얻는 과정을 그린 자전적 앨범은 대개 시간 순서에 따라 음악이 차분해지는 양상을 보이는 반면 < Born In The Wild >는 그렇지 않다. 어릴 적 방황이 담긴 전반부는 역설적으로 침착한 데 반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강한 래핑과 잔뜩 힘준 연주가 돋보인다. 과거의 고통, 대과거의 혼란을 이겨내고 여유를 찾은 템스의 긍정을 전파하려는 의도와 상통한다.

 

더불어 열여섯 곡에 달하는 대장정에 두 인터루드는 주제 의식을 알리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어머니와의 대화로 채운 ‘Special baby’에선 자신을 향한 세간의 부정적 평가를 거론하고, ‘Voices in my head’에선 간략(幹略)한 성공에 목매지 말 것을 당부하는 형제들과의 대담을 담았다. 하나 타인의 눈길, 작품을 향한 욕심과 그 무게감에 힘겨워하던 인고의 시간을 지켜봐 온 가족들의 애정 어린 조언에도 템스는 대답이 없다. 짧은 추임새로 듣고 있음을 표할 뿐이다. 그의 회답이 궁금한 시점, 이어지는 곡을 통해 답변을 시작하는 액자식 구성은 개별 곡의 높은 완성도와 결합해 퍽 근사한 서사를 그려낸다.

 

서두에 언급한 뮤지션뿐만 아니라 저스틴 비버나 드레이크와의 합작, 영화 사운드트랙 작업 등 다방면의 활동으로 각종 시상식의 초청을 받던 그를 항상 쫓아다니던 수식어는 ‘자기 앨범 하나 없는’이었다. 이는 타인의 곡에서도 두드러진 음악성에 대한 인정이자 대중음악가로서 정규 앨범을 갖는 일에 관한 따끔한 일침이었다. 앨범 안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며 본인도 인지하고 있음을 표명한 그는 고향의 음악이 그저 인기의 영합 수단으로 남용되자 그동안의 원기를 모아 돌파를 시도한다. 흉내를 부순 정통의 힘. 존재 자체가 주류 시장을 향한 도전인 템스의 음악은 이제 시작이다.

 

“She doesn't even have a full album, and so, and so / Is that the criteria? / So they are—, some of them are just perplexed / Some of them are angry / Some of them are, like, odd, wow.” (그녀는 정규 앨범도 없고, 뭐도 없고, 또 뭐도 없고. / 그게 기준인가요? / 그런데 그들은 이제 그저 당황하고 있네요. / 몇몇은 화가 났고 / 몇몇은 이상해 보이죠. 역시.)  -‘Special baby (interlude)’ 中-


-수록곡-

1. Born in the wild [추천]

2. Special baby (interlude)

3. Burning [추천]

4. Wickedest [추천]

5. Love me JeJe

6. Get it right (Feat. Asake)

7. Ready

8. Gangsta

9. Unfortunate

10. Boy o boy

11. Forever

12. Free fall (Feat. J. Cole) [추천]

13. Voices in my head (interlude)

14. Turn me up

15. Me & u

16. T-unit [추천]

17. You in my face

18. Hold on [추천]

신동규(momdk778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