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인 아이디어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실체화할 것인지에 관한 고민이다. 그러한 고민의 열쇠는 자기 자신에 관한 믿음과 자신감이다. 1996년생 뮤지션 레미 울프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할지도 모를 이 진리를 아주 잘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소포모어 앨범 < Big Ideas >는 자신이 듣고 자란 음악으로부터 받은 거대한 아이디어를 조립하고 자신의 다채로운 색깔을 덧입힌 콜라주 작품이다.
데뷔작 < Juno >가 하이퍼팝을 기반으로 주체할 수 없이 넘쳐흐르는 창의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앨범에 가까웠다면, < Big Ideas >는 그 기발함을 유지하면서도 예쁘게 수렴하려 노력한다. 과거의 소울과 펑크(Funk), 디스코는 물론, 사이키델릭 록과 포크, 그리고 레게 리듬까지 선사하며 장르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본인의 내면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섞으며 에너지를 응축한다.
'Cinderella'는 모든 사람이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는 팝이다. 자신을 사랑하자는 메시지가 담긴 팝이라는 점에서는 과거 리조의 레퍼런스가 연상될 수 있으나, 곡 안에 담긴 요소들은 엄연히 레미 울프만의 것으로 느껴진다. 전체적으로는 디스코, 펑크를 기반으로 근래 팝 유행을 정갈하게 따라가는 듯 하나, 자신만의 재기발랄한 음악 세계로 내실을 채운다. 모든 세션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번잡하지 않고, 브라스 사운드는 곡의 포인트를 확실하게 잡아준다. 트라이앵글과 휘파람 소리도 절묘하게 파고들어 지루할 틈이 없다.
묵직한 비트와 베이스 라인에 유려한 신스 멜로디를 올려낸 'Soup'는 상대를 향한 갈망과 애정이 담긴 아련한 감성으로 가득하다. 상대적으로 선명한 펑크 리듬과 기타 리프를 강조한 'Toro'는 약간의 장난기를 품으면서도 관능적인 매력으로 다가온다. 두 곡은 레트로적인 면에서 'Cinderella'와 닮아있으나 이와는 다른 결의 감정을 노래하면서 레미 울프의 입체적인 면모를 드러낼 수 있는 판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둥으로 자리한다.
'Alone in Miami'를 기점으로 중반부에 접어들면 벡이나 플레이밍 립스가 연상되는 인디 록의 색채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애정 관계에서의 고독과 공허감이 도사리는 가사에 걸맞은 멜랑꼴리한 감각은 적당한 우울감과 술에 취한 듯 들떠있는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레게 리듬과 이모 펑크라는 재밌는 조합을 시도한 'Wave'는 파도처럼 일렁이는 마음의 직관적인 표현으로써 적절한 모습이다.
과감한 시도는 레미 울프의 강점이긴 하나 그로 인해 개구리 소리를 중심으로 한 하이퍼팝 'Frog rock' 같은 애매한 결과물도 나타난다. 정석적인 소울의 느낌을 담아낸 'Motorcycle'의 경우, 곡 자체의 완성도는 흠잡을 데가 없으나 즐거운 트랙 사이에 어정쩡하게 배치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다행히도 트랙 간 퀄리티 편차나 구성의 아쉬움은 앨범의 치명적인 단점이라기보다는 작은 군더더기로 느껴진다.
산발적인 아이디어는 축복이지만, 어쩌면 찬란한 저주이자 고통일지도 모른다. 깔끔한 정리 정돈보다 어지럽혀진 상태가 더 편하게 느껴지는 뮤지션에게는 더욱 그렇게 다가올 수도 있다. 이에 레미 울프가 내놓은 해답은 무질서 속 질서다. 여러 음악 장르는 물론, 다양한 고민으로 인해 발생한 해답 없는 문제,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장 등을 기분 내키는 대로 어질러놓은 듯 보이지만, 사실 그 속에는 본인만의 엄연한 흐름과 규칙이 존재한다. 여기에 소소한 일상적 즐거움과 솔직한 자기 성찰은 흐름의 핵심 에너지로 작용해 우울감을 씻겨낼 수 있는 행복한 음악 세계를 형성한다. 자신만만하고 산만하지만, 그렇기에 즐겁다.
-수록곡-
1. Cinderella [추천]
2. Soup [추천]
3. Motorcycle
4. Toro [추천]
5. Alone in Miami [추천]
6. Cherries & cream
7. Kangaroo
8. Pitiful
9. Wave
10. When I thought of you
11. Frog rock
12. Just the start
13. Slay bitch - bonus tr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