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좋지 않다면 애초에 담론이 형성되지 않는다. 큐더블유이알을 둘러싼 많은 말은 역설적으로 이들의 커리어를 인정받는 과정이다. 실력이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 시작했으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등 유수의 공연에 오르며 향상된 연습 결과를 제시해 오면서 말이다. 본인들 말마따나 성장형 밴드의 길을 차근히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고민중독’ 이후로 자리를 다지기에 적기인 지금, 외부 프로듀서를 적극 기용하며 스펙트럼을 넓힌다.
다소 노골적이던 보컬로이드 기반의 일본 음악 색깔을 희석했다. 신시사이저에서 피아노로 옮겨붙은 불씨는 보다 한국 대중에 친화적인 그을림을 만든다. ‘고민중독’과 ‘내 이름 맑음’은 얼핏 보기에 비슷한 양상을 띠지만 세밀한 부분에서 차이를 가진다. 밑그림을 다시 그린 전소연이 교두보 역할을 맡아 팀 결성 역사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서브컬쳐의 해석을 달리했다. 쉽게 말하면 선 굵은 멜로디만 유지한 채 재건축한 셈이다. 같은 내용을 일본식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것과 한국식 웹툰으로 읽는 건 분명히 다르다.
다만 이디오테잎은 너무 이디오테잎이고, 전소연은 너무 전소연이었다. 좋은 곡들이지만 크레딧의 존재감이 밴드의 입지를 좁힌다. 타이틀에는 시연의 가창 스타일과 큐더블유이알의 연주법이 없다. 이러한 한계점 이면에 연주 멤버들의 늘어난 보컬 비중은 고무적이다. 마찬가지로 수민의 정체성이 강하지만 ‘달리기’는 그럼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쵸단과 마젠타의 음색을 전면에 내세운 알앤비를 담아 록 외의 장르도 의연히 피워낸다.
오히려 큐더블유이알의 캐릭터가 살아나는 지점은 그 반대에 있다. 음반 내에서 가장 빛나는 구간은 포용을 노래하는 ‘사랑하자’와 먹먹한 록 발라드 ‘안녕, 나의 슬픔’으로, 지난 앨범들에서 시너지를 보인 작곡진과의 조화가 이들의 톤을 견고하게 다져낸다. 발광의 원인은 단연 큐더블유이알에 대한 높은 이해도다. 전작인 < Manito >가 소구한 이른바 청춘 이미지를 밴드에 심층 접목하는 방식은 이미 능숙하고, 이제 고유한 작법과 담고자 하는 메시지, 음악적 색채를 구체화 하는 단계로 올라섰다. ‘달리기’가 먼 꿈에 닿는 진입로라면, 두 곡은 가시화된 활동의 땅을 비옥하게 다진다.
유튜브가 수단이 아니라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십수 년이 지났다. 뮤직비디오가 우선시되는 노래가 있듯 인터넷을 등에 업은 음악의 존재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늘 시끌벅적한 언쟁이 따르는 데다, 밴드라면 응당 가져야 한다고 여겨지던 정통성을 비껴간 그룹이기에 더욱 소란했다. 주어진 숙제를 열심히 헤치며 진압해 가고 있으니 오로지 음악으로만 본다면 좋은 결과물이다. 이들을 듣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은 이제 하나뿐, 열린 마음이다.
-수록곡-
1. Intro
2. 가짜 아이돌
3. 내 이름 맑음
4. 사랑하자 [추천]
5. 달리기 [추천]
6. 안녕, 나의 슬픔 [추천]
7. 메아리
8. Out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