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탈 티의 음악은 밤에 열심히 써놓고 다음 날 아침에 구겨버린 러브레터처럼 미숙하고 충동적인 10대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난 EP < 핑크 무비 >가 비이성적인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연애 소설이었다면, 정규 1집 < 하이스쿨 뮤지컬 >은 명랑하면서도 섬세한 학생의 일기장으로 만든 하이틴 무비와도 같다. 이는 과거의 차수정이 미래의 크리스탈 티에게 전하는 소중한 기억이자, 뮤지션 크리스탈 티가 학생 차수정에게 건네는 위로이기도 하다.
세기말과 밀레니엄 시기의 J록, 특히 시이나 링고를 떠올리게 하는 스타일은 여전히 짙다. 이는 당시 그러한 음악들이 주류는 아닐지언정 여러 10대들의 마음을 보듬었다는 점에서 유니크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온다. 여기에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삼고 있지만, 지나치게 개인적인 서사보다는 섬세한 감정 묘사에 집중한 가사로 보편적인 공감대도 확보한다.
대부분의 트랙이 이전 싱글들의 재수록인 점은 아쉽지만, 아티스트의 일관된 정서 덕분에 들쭉날쭉하지 않고 오히려 탄탄하게 연결된다. 특히 2014년에 발표한 '보이즈 캐러밴', '나쁜아이', '카라가 뒤집혀진 채로'의 편곡은 과거와 현재의 직접적인 조화라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
가사에서 드러나는 방황과 약간의 우울한 감성은 폭발적인 로큰롤과 융합되어 10대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확보한다. 'B급 선생'은 기성세대를 향한 반항과 더 나은 삶에 관한 욕구를 펑크 록으로 나타낸다. 본인조차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을 노래하는 '나쁜아이', 조금은 차분한 태도로 어른이 되는 미래를 걱정하는 '미성년' 또한 해답 없는 고민에 빠진 상황을 발랄하면서도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사랑과 우정에 관한 애틋한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랑하는 대상의 모습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카라가 뒤집혀진 채로'는 발라드적인 구성으로, 앞선 직선적인 로큰롤 트랙들과 대비되는 완급 조절의 역할을 한다. 메신저 프로그램을 통해 쌓아왔던 우정의 행복한 순간들을 회상하는 '버디버디'는 아련함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얼터너티브 록을 들려준다. 전형적일 수 있지만, 곡에 담긴 사연의 감성을 극대화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장르다.
< 하이스쿨 뮤지컬 >은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의 파편 모음집이자, 아티스트로서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첫 정규앨범 특유의 패기로 가득한 작품이다. 앨범 곳곳에서 나타나는 과거지향적 성격은 그때 그 시절을 소중히 여기는 크리스탈 티의 아이덴티티 발현이자 커리어의 압축, 그리고 자신을 보듬어준 음악들을 향한 감사처럼 다가온다. 그의 알록달록한 다이어리가 앞으로도 계속 열려 있을지, 서랍장에 들어갈지는 알 수 없지만, 학생 차수정과 뮤지션 크리스탈 티가 음악을 통해 각자의 한 챕터를 아름답게 마무리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앨범이다.
-수록곡-
1. B급 선생 [추천]
2. 나쁜아이 [추천]
3. 미성년 [추천]
4. 카라가 뒤집혀진 채로
5. 보이즈 캐러밴
6. 열일곱의 소나티네
7. 지금은 베타테스팅
8. 버디버디 [추천]
9. 조퇴의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