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과 출신 영향력이 지대한 흑인음악 계에 독특한 샛별이 등장했다. 이민자 여성이라는 사실이 반갑고 통쾌하다. 비슷한 시기 출발한 동료들이 잘 노는 법과 과격한 표현을 자랑하며 존재감을 과시할 때 오드리 누나는 깊은 내면에서 창작의 원석을 찾아 힙합과 알앤비의 칼로 깎아내는 데 열중했다. 결과물은 미대륙에서 태어난 10대 아시아 인의 혼탁한 성장기. 이 한국계 미국인 2세 래퍼의 주변인 서사는 데뷔작 < A Liquid Breakfast >로 본격 시작되었다.
정체성 고민의 흔적은 여전하나 소포모어 앨범에는 변화와 성장의 기록이 더 짙다. 전작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필연적 상황을 고민하고 또 경계하기도 했다면, 이번엔 개인의 삶을 결정지은 사회문화적인 요소를 뛰어넘어 자기 마음을 자유롭게 탐방하고 표출한다. 그를 둘러싼 환경은 뉴저지를 넘어 세계가 되었고, 최근에 새롭게 마주한 배경과 감정을 솔직하게 녹인 것이다. 중심에 진입한 오드리는 더 이상 잡음을 잡기 위해 옷장 속에 숨어서 노래하는 소녀와는 다른 사람이다.
짧은 곡의 나열 속 우리는 수많은 오드리를 관찰하게 된다. ‘Ca$h’나 ‘Jokes on me’의 연결처럼 래퍼와 보컬리스트의 혈투가 빗발치는, 예상할 수 없는 전개가 가장 직관적이겠다. 또 의도적으로 전통적인 A면과 B면 형식을 빌려 작품 초입에서는 ‘Me’와 ‘Mine’을 연발하며 자신감과 자존감을 표현하다가도 뒷면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깊고 나약한 면을 내보인다. 굴곡진 혼란으로 꾸며진 ‘오드리 누나’ 캐릭터, 음악적 표현이나 형식에서 스스로 정의한 이 양가적인 인생이 잘 나타난다.
오드리가 말하는 기법에는 그가 심취한 힙합의 규칙이 정돈된 형태로 새겨져 있다. ‘Baby og’나 ‘Doggie pound’에 보이듯 여러 비속어나 유행어로 자기를 치장하고, 위치를 설정하며 동시에 담론을 제시하는 언어 활용에 켄드릭 라마의 영향이 스치고, 불안정과 비대칭이 짙은 소리 배치에는 그가 귀감으로 삼은 카니예 웨스트의 작법이 드리운다. ‘Suckin up’ 혹은 ‘Starving’에는 알앤비 싱어로서의 동시대성도 엿볼 수 있다. 랩과 노래의 성대를 갈아 끼우는 특유의 접근법이 한층 자연스러워진 결과다.
음악에 있어서는 다분히 미국적인 구성 요소로 점철된 모습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가정에서는 한국의 문화를 흡수했지만 사회에서는 뉴욕의 환경에서 겪은 그대로가 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경험에서 비롯된 ‘나’를 음악적으로 확실히 정의하기 위해 그는 영리한 방식도 차용했다. 한 세대 전을 상징했던 브랜디와 모니카의 'The boy is mine'에서 소리를 빌리고 고향의 리듬인 저지클럽을 얹어 'Mine'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이렇게 힙합과 알앤비, 얼터너티브 사이를 능숙하게 저울질한 덕분에 < Trench >가 표상하는 여러 자아에 쉽게 설득되고 만다.
오드리가 내는 목소리는 그 자체로 무거운 중력을 품는다. 한국어 ‘누나’를 예명으로 삼은 것처럼 그는 모국의 영향을 부정하지도 않고 애써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가 지닌 희귀한 정체성은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같은 대형 스타만이 이 사회 속 청소년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본인의 의지에 관계없이 이곳을 고향으로 삼아야 하는 누군가가 음악에 귀의한 삶도 있음을 상징한다. 동시에 그가 고심한 본토음악 역시 주류에 편입해도 될 만큼 충분히 훌륭하다는 증거. 한 이민자의 표상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다양성 존속을 증명했다.
-수록곡-
Side A
1. Nothing feels the same
2. Me & my Baby
3. Suckin up
4. Mine [추천]
5. Ca$h
6. Jokes on me
7. Pajamas
8. Baby og [추천]
Side B
1. Dance dance dance
2. Doggie pound
3. 1-Way
4. Locket [추천]
5. Starving (Feat. Teezo Touchdown) [추천]
6. What about me?
7. Jitterbug
8. 2Hi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