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열린 제65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신인상과 최우수 재즈 보컬 앨범 부문을 수상한 사마라 조이의 < Linger Awhile >은 전통을 잇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작품이었다. 이탈리아의 재즈 기타리스트 파스콸레 그라소와의 호흡 아래 빌리 홀리데이와 사라 본에게 받은 영향을 호소하며 자신의 주안점이 과거를 향해 있음을 밝혔다. 이십 대 초반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깊이감과 반세기 이전 재즈 싱어의 표본과 같은 목소리는 다른 재즈 보컬리스트와 구별점을 만들었다.
2년 만에 발매한 세 번째 앨범 < Portrait >는 한발 더 나아간다. 건반, 드럼, 베이스, 기타의 간결한 쿼텟 구조로 보컬을 부각했던 근작을 넘어 1940년대 빅 밴드 형태를 꾸린다. 개인기만으로의 단독 돌파가 아닌 세션과 조명을 나눠 가지며 차분히 육각형을 채우겠다는 의지가 비친다. 더불어 그의 특장점인 역사성을 확장한 점 또한 중요하다. 연주의 비중을 높이다 보니 레퍼토리를 더 이상 보컬 재즈 넘버에 국한할 필요가 없어졌고 보다 넓은 분야에 본인의 소리를 더하는 식으로 다채로운 선택이 가능해진 것이다.
첫 곡 ‘You stepped out of a dream’은 이러한 방향성을 알리는 일종의 선전포고다.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냇 킹 콜의 1953년 원곡을 재연해 보컬을 얹었으나 건반과 관악보다 앞서지 않는다. 노랫말을 줄이고 스캣의 비율을 높여 음계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뿐이다. 이는 곧 재즈 베이시스트 찰스 밍거스의 1960년 작 ‘Reincarnation of a lovebird’, 1941년 클로드 쏜힐의 기악곡 ‘Autumn nocturne’, 보사노바의 아버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No more blues’로 이어진다. 구성 변화와 이미 검증된 곡의 자기화로 뿌리를 밝히는 동시에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며 그래미 어워즈의 간택이 과한 처사였다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한다.
거장들이 수놓은 역사적인 명곡 행렬에도 이질감 없이 스며들 수 있는 까닭은 높은 수준의 편곡과 해석력 덕이다. 반주 없이 목소리만으로 몰입을 유도하는 방식이나 196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소울 가수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을 연상케 하는 관악의 극적 전개, 쿨 재즈 기반에서 변주를 꾀한 드럼의 프리템포까지 각색의 기법을 상술한 스탠다드 넘버에 접목한다. 그 사이 연주자의 솔로 파트 자리를 마련하고 신곡을 배치한 교묘함은 덤. 이로써 앨범 단위의 듣는 맛이 살아나 번갈아 찾아오는 익숙함과 생경함의 교대가 사뭇 달갑다.
오늘날의 재즈 음악가들은 대중성 확보를 위해 얼터너티브 재즈라는 모호한 분파로 대거 이주하고 있다. 그들이 몸집을 키우자 그래미 어워즈는 올해부터 해당 부문을 신설해 발을 맞췄지만 모두가 말 그대로 대안이 되고자 새것만을 찾아 헤맬 뿐 음악을 향한 진지한 고찰과 역사 공부는 뒷전인 모양새다. 모름지기 시간 낭비이자 성공에 뒤처지는 행보로 생각하기 때문일 텐데 대중성을 얻기 위한 지름길은 뒤를 돌아보는 일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사마라 조이는 ‘재즈의 대중화’라는 슬로건 아래 옹기종기 모인 다수를 향해 ‘과거를 아는 자가 곧 힘을 가진 자’라고 외친다. 또 음악으로 설파하고 기꺼이 증명한다. 그는 오랫동안 옛것을 탐하고 넓게 파헤친 결과 본인의 것으로 만들어 대중이 자신을 따라오게 만들었다. 기술 발전에 따른 신기로운 요소와 장치, 팝 음악과의 무조건적 결합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는 장르 구분 없이 어디에나 적용되는 사실이다. 진리를 받아들인 사마라 조이는 현세대의 인식 전환을 위한 매개체로 < Portrait >를 건네며 느슨해진 재즈 신에 시의적절한 긴장감을 남겼다.
-수록곡-
1. You stepped out of a dream [추천]
2. Reincarnation of a lovebird
3. Autumn nocturne [추천]
4. Peace of mind / dreams come true
5. A fool in love [추천]
6. No more blues [추천]
7. Now and then
8. Day by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