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의 목소리는 성스러운 면이 있다. 본인도 그를 잘 아는 듯 서두부터 ‘기도문’과 전생에 대한 풀이를 내세운다. 소리를 추상적으로 직조하는 일렉트로닉의 특성을 담은 동시에 보컬이 진정성을 더한다. 일견 전자음이 만드는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채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는 만큼 가사에 힘이 실린다. 해석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외국 정서 사이 모국어로 탄생한 이 앨범은 언어적으로도, 비언어적으로도 하나의 밀도 있는 이야기다.
전자음악가 모임인 박쥐단지 컴필레이션 앨범을 통해 선보인 바 있는 훌륭한 덥스텝 ‘La-ga-da-di-do’는 여전히 아름답다. 이 트랙의 후반이 수록곡 ‘New man’의 도입과 닮았음에도 그 연결성을 포기하며 또 다른 서사를 부여하는 역설에서 해석이 더 풍성해진다. 신나면서 직설적인 ‘Eh-ah (Lesson 5)’에서 출발해 화자에게 비관적인 ‘아멘’을 외치게 한 전개 방식이 탁월하다. 본작의 문학성을 끌어올리는 대목은 플래시 포워드, 엔딩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새 흐름이다.
기승전결의 논리로 규정하자면 앨범과 동명인 ‘Humanly possible’은 전(轉)에 해당하는 셈이다. 목소리를 포함한 모든 요소가 악기로 쓰인다. 다년간 뮤직비디오 등 여러 기획으로 협업한 실리카겔의 김한주와 보컬로 물아일체가 되어 공존한다. 자연스레 주고받는 저음과 고음은 음역을 막론한 해방감을 준다. 유일하게 타인의 힘을 빌린 이 곡은 음반의 후반에서 청각적 쾌감으로 거침없이 내달린다. 이후 다시 홀로 서는 ‘To Ilya’에서 내뱉는 말끔한 육성에 설득력을 더한다.
다시 처음으로, 메인 곡인 ‘기도문’과 ‘너의 전생’에서 휘가 가진 보컬의 범용성이 드러난다. 오직 한 명의 존재로도 합창단의 코러스처럼 압도한다. 시적으로 표현한 가사에서 읊는 염세적인 주문은 듣는 사람 각자의 삶에 녹아 과거를 반추하게 만든다. 의미로 파악하자면 결(結)에 달하는 이 묶음은 미사의 심상을 빌려 깨끗하게 마음을 다림질하는 도구다. 나머지 일곱 곡의 여정을 함께하면 온도가 알맞게 올라가기에 정규 앨범의 포문을 열기 좋은 배치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이라는 타이틀은 일상을 사는 것만으로도 기후 위기에 가까워져만 가는 절망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 음반은 좌절로부터 제목에 도달하는 경위를 그리며 폭넓은 심상을 눈부시게 잘 담았다.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도전도 결국은 한 발짝에서 시작한다. 세상에 필요한 메시지를 설파하는 좋은 음악이라는 점에서 예술적 의의가 뛰어나다. 뮤지션이 제시한 생각에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 여름 > 속 한 세기를 감싼 불행에 행복을 되찾자는 단락 사이 문장을 각주로 달고자 한다. 심적인 재앙의 문은 우리의 시선을 바꿀 때야 비로소 닫힌다.
“당연히 이것은 초인적인 과제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 걸려야 완수할 수 있는 과제를 가리켜 초인적이라고 부른다. 그게 전부다”.
-수록곡-
1. 기도문 [추천]
2. 너의 전생 [추천]
3. Eh ah (Lesson 5) [추천]
4. New man
5. How God cries
6. 콜로니에서
7. La-ga-da-di-do [추천]
8. Humanly possible (Feat. 김한주) [추천]
9. To Il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