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지난 음반에서 ‘사슴의 저주’를 제목으로 내걸었던 2020년대 고딕 록 대표주자가 로맨스를 노래한다니,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일찍이 포스트 펑크의 신화를 이을 기대주로 간택 받아 세 장의 뛰어난 정규작을 연거푸 안겨주었던 아일랜드 출신 밴드 폰테인즈 디씨는 돌연 1990년대의 얼터너티브 록과 브릿팝을 향해 경로를 전환했다. 특유의 냉소적인 면모를 기대했다면 조금 낯설지라도 수긍 가능한 움직임이다. 보다 말랑해진 성질 안에도 본래의 곧은 심지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대중음악의 주된 질료인 사랑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면서도 뻔한 접근법을 취하지 않는 독창성이 먼저 엿보인다. 기괴하게 뒤틀린 아트워크처럼 이들이 묘사하는 감정은 입체적이고 혼란한 형태다. 그런지의 묵직한 기타 톤을 내세운 오프닝 ‘Romance’에서 되뇌는 가사인 ‘아마도 로맨스는 장소일 거야’가 대표적이다. ‘Horseness is the whatness’에서는 아일랜드 대문호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속 문구 ‘모두가 아는 단어는 무엇인가? 사랑이다’를 인용하며 시작해 자신들의 사고로 넓혀가는 등 온 문화를 아우르는 폭넓은 작법이 인상적이다.
음험한 분위기를 잇는 ‘Starbuster’는 커리어를 통틀어 보아도 단연 압도적이다. 랩 록 스타일로 타이트하게 채운 구절은 코러스 끝마다 나타나는 헐떡거림과 합쳐져 쇄도하는 파괴력을 형성한다. 성대한 폭발 뒤의 잔불이 인터루드의 스트링으로 옮겨붙어 멜랑콜리한 불씨를 남기며 그라이언 채턴의 목소리 역시 이에 맞게 더욱 애수를 띄는 방식으로 발맞춘다. 본연의 색채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빛깔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데 성공한 킬링 트랙이다.
다만 한순간 타올랐던 화염이 너무 쉽게 잦아들고 말았다. 유명 밴드의 명품 조력자 역할을 한 프로듀서 제임스 포드의 손길이 말쑥함을 더했으나 결국 그간 그를 거쳤던 수많은 팝 록 트랙의 그림자 아래에 있다. 어쿠스틱 기타를 전면에 배치한 구성과 단순한 반복 위주의 훅으로 초반부의 뜨거움을 무색하게 만드는 ‘In the modern world’가 그 예시다. 그러나 개중에서도 감정을 파고드는 보컬이 두드러진 ‘Desire’와 같은 곡은 메인스트림으로의 이행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남긴다.
처음과 대조되는 서정적 쟁글 팝 마무리 ‘Favourite’에 이르러 기존 밑그림 위 덧칠해 낸 조감도를 내려다보았을 때 드러나는 목적은 영역 확장이다. 절충주의 혹은 현실과의 타협이라는 비판을 받을지라도 끝내 과거의 어두운 의상을 반쯤 벗어던졌기에 소기의 뜻을 달성했다고 봐야겠다. 결성 10주년과 메이저 데뷔 5년을 맞는 해 이미 이뤄낸 성과를 넘어 전진하는 광경을 보니 이들을 한 장르 안에 가둠으로써 운신의 범위를 한정 짓는 것은 잠재력을 억누르는 행동일 뿐이라는 예감이 든다.
-수록곡-
1. Romance [추천]
2. Starbuster [추천]
3. Here’s the thing
4. Desire [추천]
5. In the modern world
6. Bug
7. Motorcycle boy
8. Sundowner
9. Horseness is the whatness [추천]
10. Death kink
11. Favourite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