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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ie
로제(ROSÉ)
2024

by 한성현

2024.12.28

Apt.’는 실패하기가 어려운 곡이었다. 블랙핑크의 멤버가 솔로로 나선다는 사실, 브루노 마스의 이름값, 쉽고 간단한 팝 록 사운드 등 흥행할 요인이 차고 넘쳤다. 노래를 단순 히트 싱글 이상으로 흥미로운 화두가 되게 한 핵심은 문화적 충돌이다. 영미권 팝 음악의 구성에 난데없이 얼마간의 맥락 숙지가 필요한, 대단히 한국적인 챈트 ‘아-파트 아파트’를 투척하는 뻔뻔함. 그 패기를 보아하니 심상치 않은 작품이 나올 조짐이 보였다.

< Rosie >는 평범하다. 긍정적인 무난함의 의미보다는 진부한 쪽이다. 신시사이저 아니면 어쿠스틱 기타로 점철된 악기 구성, 눈물을 쥐어짜는 이별 가사와 ‘K팝 스타가 처음으로 보여주는 인간적인 내면’이라는 슬로건까지 많은 것이 전형성에 기대고 있다. 사브리나 카펜터와 그레이시 에이브럼스 같은 테일러 스위프트 키즈가 빌보드를 장악한 시점에 앨범은 로제를 제3의 선택지 대신 그들 중 하나로 몰아넣는다.

상당수가 전 애인과의 후일담에 의존한다. 소재 선택은 자유지만 몰입은 별개의 사안이다. 여성 팝스타의 구구절절한 러브송이 2020년대 차트를 뒤덮을 수 있던 동력은 함께 프레임에 담겼던 현실 인물을 가사에 대입하는 즐거움이었다. 연애는 말조차 꺼내기 힘든 K팝 산업에서 약간의 루머도 강경히 부인하며 살아야 했던 로제의 뒷담화가 동일한 호소력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속 시원한 대나무숲 독백을 외친들 세계 자체가 막혀 있으니 소셜 미디어나 메신저 프로필에 찍어 올릴 글귀로 메아리쳐 돌아오는 운명이다.

싱어송라이터로 전곡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며 그룹 이미지를 단숨에 씻어낸 것은 큰 성과다. 다만 독창성 보강이 절실하다. 할시나 셀레나 고메즈 풍 알앤비 트랙 ‘Drinks or coffee’와 ‘Gameboy’, 루이스 카팔디처럼 목을 긁는 ‘Stay a little longer’ 정도가 다른 모델을 제시할 뿐 나머지는 테일러 스위프트 따라잡기다. 신스팝 넘버 ‘Two years’와 ‘Toxic till the end’는 전개도까지 < 1989 >를 닮았고 후반부 대부분은 그의 직속 후계자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불러도 위화감이 없겠다. 다들 누군가의 영향을 받는 법이나 수많은 프로듀서 명단을 생각하면 음반은 정성 들인 필사본보다 빅데이터 기반 참고문헌 일람처럼 보인다.

< Rosie >에서 내면을 가장 깊이 파고드는 곡은 ‘Number one girl’이다. 여타 트랙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흉터를 되짚는 듯한 문장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로제가 토로하는 공허함은 대중의 관심에 종속된 아이돌의 자기 고문과 학대로 들린다. 완벽하게 가공된 상품이 느끼는 환멸과 집착의 메타적 서술. K팝만이 담아낼 수 있는 내용이란 바로 이런 이야기 아닐까. 보편성은 이미 충분하다. 로제, 그리고 지금 서구로 향하는 K팝의 모든 솔로이스트가 앞으로 더 고민해야 할 사안은 특수성이다.

-수록곡-
1. Number one girl [추천]
2. 3am
3. Two years
4. Toxic till the end
5. Drinks or coffee [추천]
6. Apt. (With Bruno Mars) [추천]
7. Gameboy
8. Stay a little longer
9. Not the same
10. Call it the end
11. Too bad for us
12. Dance all night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