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수 인터뷰

박명수

by 임선희

2025.01.02

연예계 활동 32년 차인 자신을 '세미프로'라고 지칭하지만, 박명수는 수없이 뜨고 지는 별들 사이에서 우직하게 자리를 지켜온 롱런의 대가다. 대표 예능 < 무한도전 >과 라디오 DJ부터 현재의 유튜브 채널 < 할명수 >, 부캐 '차은수'까지. 모든 매체를 섭렵하여 한순간도 팬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그가 "아직 부족하기에 안주하지 않겠다"라는 의지를 선포한 순간, 역설적으로 베테랑의 모먼트가 번뜩였다.   


박명수는 프로로 나아가기 위한 해답으로 한 가지를 꼽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단 말은 음악에서 가능하다"는 답변과 함께 음악은 시간을 초월해 다른 세대를 연결하는 강력한 매듭이자 연예계 생명을 연장시켜준 은인임을 거듭 강조했다. 인터뷰어에게 농담을 건네고 한경호 이사와 케미를 뽐내기도 했지만 음악 커리어를 짚어볼 때는 사뭇 진중한 자세를 유지했다. 브라운관 시절부터 함께 시간을 보낸 '무도 키즈'로서 그런 면모가 마냥 낯설지 않았다.  



   

최근 유튜브 < 할명수 >에서 신곡 발표를 예고하기도 했다. 음악과 관련된 근황이 궁금한데. 

준비 중이다. 다만 음악이 잘 소비되게끔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 노래를 제작하려면 뮤직비디오도 찍어야 하고 콘셉트가 잡혀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만, 시간이 흘러 빠르게 트렌드가 바뀌더라. 활동 자체의 의미도 있지만 완성도를 우선시하고 있다. 내가 직접 작사, 작곡을 하고 사비가 들기 때문에 연구가 더 필요하다.  


요즘은 하루에 한 시간 이상 피아노 공부를 하고 있다. 개인 콘서트를 한다면 팬들에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게스트를 불러 내가 반주를 맡는 그림도 멋있을 거 같아서 열심히 배우고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개그맨으로 유명한데, 여러 장르 중 특히 유로 댄스를 좋아한다고. 

중학생 때 신시사이저 음악을 처음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계기로 프로듀서의 꿈을 막연하게 가졌다. 나중에 나이트클럽 DJ로 일하면서 내 음악을 만들고 싶은 욕구도 생기더라. 1999년 유로 댄스 스타일의 ‘바보사랑’으로 시작해 ‘바다의 왕자’를 거쳐 < 무한도전 >으로 아이돌과의 콜라보를 진행하는 등 차근차근 꿈을 이뤄 나갔다. 과거의 유로 댄스를 향한 관심이 EDM 쪽으로 자연스레 이어진 것 같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다작을 남겼는데 제일 만족하는 곡이 있다면?? 

‘바다의 왕자’는 < 무한도전 > 시절에 5년 연속 여름 노래 1등을 차지했다. 사실 크게 히트할 줄 몰랐는데 프로그램을 통해 역주행하게 됐다. 일단 중저음이라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다. 심지어 이 곡이 북한에서 인기가 많다는 소문도 있다더라. (웃음) 내가 노래를 잘한다고는 못하지만 성적이 좋은 편이다. '바보에게 바보가' 역시 축가 순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다. 


< 무한도전 > 당시 가요제 특집에서 강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아이돌과 함께했을 때 특히 그랬다. ‘바람났어’, ‘레옹’은 내가 만들진 않았지만 구성이나 모티브를 줬다. 지드래곤에게는 “너의 노래가 아닌 너와 내가 함께 하는 노래를 만들면 어떻겠니?”라며 제안했고, 아이유한테는 레옹과 마틸다 캐릭터를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곡이 나온 걸 보면 음악적 감각이 있는 것 같다. 이처럼 내 음악이 연예계 생활을 연장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냉면'도 좋다.) < 무한도전 >에서 냈던 음원 중 전체 1등이 '냉면'이다. '말하는 대로'가 아니다! 


여태까지의 작업물 중 제일 어려웠던 곡은? 

2014년에 발매한 ‘명수네 떡볶이’.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 만들어서 차트 1위까지 간 곡이다. < 쇼! 음악중심 >의 1위 후보도 올라간 것으로 알고 있다.   


전문적인 노래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늘 하고 있다. 다만 천식이 있어서 위험부담이 있다. 물론 개인 콘서트를 진행하려면 길게 여러 곡을 소화해야 하니 죽도록 연습해야 된다. 항상 되새기고 있는 부분이다. 




EDM을 향한 열정을 아낌없이 드러내기도 했는데.

한때 UMF(울트라 뮤직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DJ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국내에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Party yeah’라는 곡으로 일레트로닉 음원 판매 사이트인 비트포트(Beatport) 차트 10위권까지 올랐다. 이처럼 세계적인 DJ가 되기 위해 티에스토(Tiësto), 아프로잭(Afrojack)도 만나면서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으나 동양인이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개그맨을 그만두고 EDM에 전념할 생각도 있었지만, 그냥 로컬 DJ를 겸업하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코로나 이후에도 DJ를 계속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내 녹음실을 우리 집 지하에 1억 2천 들여서 만들었다. 돈 액수를 밝히는 이유는 그만큼 디제잉을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단순히 유행에 몸을 맡긴 것이 아니다. 물론 비트포트 차트에 순위를 올리기도 했고, 해외 유명 디제이를 만나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큰 노력이 요구되더라. 세계적인 DJ가 되겠다는 꿈의 장벽이 꽤 높았다. 그렇지만 DJ를 관둘 생각은 없고 한국에서 1등이 되고 싶다.  


10년 전만 해도 연예인 중 DJ 시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나 박명수처럼 오래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원동력이 무엇인가? 

방송 생활 32년 차지만 나는 스스로를 ‘세미프로’라 생각한다. 아직 일인자가 아닌 쩜오. (웃음) 그래서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 프로가 되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음악도 그렇지만, 라디오 진행 역시 박명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마침 < 박명수의 라디오쇼 >가 2025년 1월 1일에 10주년을 맞이했다. 최근에 MBC 골든마우스(Golden Mouth)를 제작하기도 했다. 라디오의 시작은 1995년 < 전국퀴즈열전 >이었고 < 2시가 좋아 >로 좋은 반응을 얻어 < 두시의 데이트 박명수입니다 > 당시에는 청취율 10%까지 달성했다.   


< 박명수의 라디오쇼 >는 박명수에게 어떤 존재인가? 

라디오는 돈을 벌면서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마디로 방송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 박명수의 라디오쇼 >는 예능 라디오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예능 트레이닝을 할 수 있다. 그 덕에 그간 쌓아온 데이터를 활용해서 상황을 재밌게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이 길러졌다. 또한 요즘 유행하는 이야기나 세상 돌아가는 일을 오프닝에 담게 되니 현실 감각도 놓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라디오라는 매체를 오래 하게 된 이유 중 중요한 하나는 바로 팬이다. 라디오의 팬은 굉장히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 어떤 관계보다 찐득하고 결속이 강해서 한 분 한 분 모두에게 감사하다.   




라디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생각에 항상 행복하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배철수 선배님이 존경스러운 면이 바로 이런 지점이다. 힘든 몸을 이끌고 라디오 방송을 가더라도 누군가 나를 찾아주고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그 자체가 즐겁다. 


결국 음악에 대한 관심이 라디오를 향한 마음을 뒷받침하는 것 아닐지. 

그렇다. 일단 음악을 매우 좋아한다. 젊은 층, 흔히 말해 MZ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은 음악밖에 없다. 예를 들어 아이돌과의 협업을 통해서 나를 알릴 수도 있지 않는가. 지금도 아이돌과의 교류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결국 음악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음악을 다룰 줄 알아야 하므로 나름대로 공부하는 중이다. 


구체적으로 MZ세대와의 교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진정성을 담는 것이다. 일례로 아이유가 나의 유튜브 채널에 초대해서 아이유의 노래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얼마나 재밌겠는가. 누군가를 이용하는 목적이 아닌 정말 음악을 애정하는 마음으로 다가간다. 또 최근에 예나의 ‘네모네모’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보다 내가 더 나이가 많은데 나에게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하더라. 그 용기가 대단하여 바로 수락했다. 딸 같은 어린 친구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참 예뻤다. 


유튜브 혹은 예능으로 아이돌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박명수가 보는 K팝 아이돌은 어떤가? 

동료보다는 자식 같다. 라이즈, 투어스, 뉴진스 등등. 특히 뉴진스의 막내 혜인은 내 딸과 동갑이라 그런지 더욱 그런 마음이 든다. K팝 산업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새 그룹이 쉴 새 없이 등장하는 순환이 빠른 분야 아닌가. 그냥 오래 활동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더 재미있는 건 아이돌이 ‘무도 키즈’라서 그런지 나에게 장난을 많이 친다. 특히 세븐틴 버논은 < 무한도전 >에서 한 ‘오키나와 랩’을 다 외우더라. (웃음) 시간이 오래 흘렀지만 계속 회자되니 참 감사하다. 


현재 눈여겨보고 있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정국의 ‘Standing next to you’를 듣고 세계에서 제일 음악 잘하는 사람들이 만든 노래구나 싶었다. 유튜브 촬영을 위해 댄스 브레이크를 연습하게 되어 곡을 계속 들었는데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그래서 함부로 음악을 못 내는 이유도 있다. 어설프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정국과 함께 춤을 춘 어셔도 정말 멋있었다. 앞서 말했지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오래 할 수 있는 분야가 음악인 것 같다.  




한경호 이사님도 이름을 알리게 되었는데 한마디로 어떤 사람인가? 

형제 같은 사람. 내 동생보다 더 친하다. (웃음) 나에게 앞으로 다른 누구의 매니저를 할 생각이 없고, 내가 마지막이라고 하더라. 항상 자기 일처럼 다 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시덕 코디도 함께 19년째 오래 가고 있다. 


반대로 한경호 이사님에게 박명수는 어떤 사람인가? 

한경호: 처음에는 힘들었다. (웃음) 나에게 짜증도 많이 냈지만 점점 갈수록 좋아졌다.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다. 


박명수: 뭘 힘들어, 힘들기는. (웃음) 직원이 아니라 가족 개념이다. 내 모든 걸 알고 있어서 이 친구가 입만 열면 난 끝장이다. 그래서 나만의 기준으로 월급도 많이 준다. (웃음)  


박명수 개그의 핵심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자.’ 예를 들어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겠어요” 대신 “야, 꺼져” 같은 직설적 화법을 쓴다. 그리고 무조건 자본주의 개그다. 돈 받은 만큼만 웃기는 현실적인 개그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달라. 

음악적으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 55세에 걸맞은 음악을 해볼 수도 있다. 그리고 내 회사를 차릴 준비 중이며, 정준하와 함께 ‘하와수’ 유튜브 채널을 고민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별명이 많은 연예인을 수식어로 갖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별명이 있는지. 

모든 것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만 각자가 박명수 하면 떠오르는 다양한 별명이 있을 텐데 나는 그 자체가 좋은 것이다. 누군가는 ‘쩜오’, 다른 누구는 ‘하찮은 형’을 꼽으면서 웃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다.   


박명수를 예능인 혹은 음악가로 설 수 있도록 만들어준 선배가 있다면? 

이승철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다. 한참 흉내를 많이 냈고 영감을 많이 얻었다. 지금은 되레 형이 내 쪼쪼댄스를 추고 바다의 왕자를 부르기도 한다. 코미디 쪽에서는 임하룡, 최양락, 이경규 선배님들이 개그맨의 꿈을 갖게 해주신 분들이다.   


그렇지만 추진력을 가지고 일할 수 있던 것은 결국 내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안주하지 말고, 10년 후를 내다보자고 되새겼다. 가만히 있으면 일이 있었겠는가. 올해 DJ 행사도 30개 넘게 했고 대학 축제도 하러 갔다. 내년에도 대학 축제에 갈 예정이다. 


박명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자체 진단한다면? 

1등을 언젠가는 하고 싶다. 물론 나도 나름대로 잘 된 사람이긴 하나, 종합적인 단연 1등이 되고 싶다. 그리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진심으로 노력해서 음악을 하기 때문이다. 전 세대를 통틀어서 교류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음악뿐이다. 그래서 음악을 놓치지 않고 계속 배우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된 활동이 바로 라디오, 디제잉, 타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이다. 

 



진행: 임진모, 임동엽, 임선희, 한성현, 정기엽, 박승민 

정리: 임선희 

사진: 임선희 

임선희(lumanias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