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푸름 인터뷰

김푸름

by 김태훈

2025.01.09

19세.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찬란했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아팠을 나이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경계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삶에 관한 고민에 관한 나름의 해답을 내리며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푸르스름한 빛깔의 시기, 2006년생의 젊은 아티스트 김푸름은 그 아름답고도 쌉싸름한 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음악에 저장했다.


가벼운 일상 이야기를 할 때는 여느 10대와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자신의 음악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자신의 생각을 뚜렷하게 말하는 어른이자 아티스트였다. 정규 앨범 활동부터 공연 준비, 그리고 차기작 구상까지, 바쁜 연말을 보내면서 20살의 문을 열 준비를 마친 김푸름의 음악과 삶에는 본인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지난 12월, 정규 앨범 < ‘푸르스름’ 언플러그드 >를 발매했다. 이번 작품의 기본적인 콘셉트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어떠한 콘셉트를 잡고 제작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EP 발매를 목표로 곡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작업하다 보니 많은 작곡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하나의 주제를 시작부터 고정해 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19살이라는 나이에 느낀 여러 감정들을 통해 곡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트랙에 19살의 마음이 담긴 것 같다.


앨범 제목에 ‘푸르스름’이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가 궁금하다.

‘푸르스름’은 19살이라는 나이를 함축한 단어다. 특징지을 수 있는 원색이 아니라 경계를 넘나드는 색깔 아닌가. 19살도 마찬가지로 아이와 어른이라는 애매하고 어중간한 경계에 서 있는 나이다. 애초에 ‘푸르스름’ 자체가 나의 별명이기도 했다. 유튜브 제목도 김푸르스름이고.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푸르스름’이 가진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타이틀곡 ‘Romeo & Juliet’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국적이 다른 두 친구의 이야기다. 환경, 조건 자체가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을 그린 곡이고, 뮤직비디오에도 접점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담았다. 두 사람 중 한 명의 일방적인 시선으로 곡이 진행되면서 ‘나의 취향도 아니고, 또 너무 다른 사람인데 왜 자꾸 부딪히게 되는 걸까’라는 생각을 담았다. 가사를 영어로 쓴 것은 나와 국적이 다른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곡 자체의 기조도 다른 수록곡들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다. 작곡 과정에서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늘 그랬듯 어쿠스틱 기타 하나로만 진행했는데, 편곡을 하다보니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제가처럼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멜로망스 정동환의 도움으로 예쁜 피아노 연주를 넣을 수 있었다.


고민이 많았던 지점은 브릿지다. 브릿지를 잘못 만들면 노래의 흐름과 무드를 끊을 수 있기 개인적으로는 브릿지를 빼는 것을 선호하는데, ‘Romeo & Juliet’는 정말 잘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브릿지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이니미니마니모’ 말장난을 넣어 코러스를 자연스럽게 늘린 듯한 브릿지가 만들어졌다.




타이틀곡을 제외하고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아무래도 ‘가죽’이다. 이 곡에서 등장하는 부정적인 표현들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들이기도 하다. 왜 사람들은 남의 가죽을 뜯어서 입어야지만 자신이 안전해진다고 여기는지에 관한 생각을 했다. 그 뜯어낸 남의 가죽은 곧 사회적 지위다.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려야 본인이 따뜻하게 입을 옷이 생긴다고 착각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쿠스틱의 본질에는 충실하되 악기 구성을 최대한 다양하게 가지려 한 모습이 보이는데.

늘 기타와 피아노, 두 악기만 썼다 보니 음악의 폭이 점점 좁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을 만들 때는 도전적인 마음가짐으로 생각나는 악기들을 바로 캐치해서 편곡하는 식으로 제작해 봤다. ‘가죽’에 등장하는 리코더가 대표적이다. 리코더 특유의 불안정한 음이 마치 비명과 같다고 느껴졌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의 심리적 불안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티스트로서 사회적 문제를 노래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아버지께서 이 사회는 시소와 같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시소처럼 계속 기울면서도 중심을 서서히 맞춰가는 것이다. 지금 시대는 많은 사회적 문제가 크게 출렁이는 단계라고 보는데, 올곧은 생각을 가진 아티스트라면 이를 수평으로 맞춰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죽’ 뿐만 아니라 ‘우산도둑’, ‘Mamagirl’ 등 여러 곡에서도 이 시대의 군상을 스크랩한 느낌이 드는데.

나 스스로 타인의 말과 생각을 대변한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나와 비슷한 나이를 지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갖고 있는 고민이 나만의 고민은 아니고,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는 것을 느꼈다.




사실 가수보다는 배우로 먼저 데뷔했다. 배우는 어떻게 시작했는가.

어렸을 때부터 아역 모델을 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엑스트라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서 < 오빠생각 >이라는 영화로 데뷔했다. 계속 활동하다 보니 아무래도 연출자 쪽에서 나를 뽑아주지 않으면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 나가기 어려운 직업인 것을 깨달았다. 계속 오디션에 떨어지는 상황이 생기니까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남이 주는 무대가 아닌 나만의 것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작곡을 시작했다. 반항적인 도전이었지만, 그만큼 연출자의 시각에서 많은 고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 좋아하는 음악이 궁금하다.

브로콜리 너마저와 검정치마, 9와 숫자들을 정말 좋아한다. 아무래도 가사에서 깊은 맛이 나는 아티스트분들을 많이 듣게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라디오헤드, 고릴라즈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록 앨범도 구상해 보고 있다. 


현재 본인의 음악 자체에는 아날로그 감성이 기초가 되어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화성학을 비롯해서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내 머릿 속에 있는 아이디어들을 최대한 꺼내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곡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록 앨범도 구상 중이라고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일단 당장은 포크에 집중하고 있지만,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나 스스로 생각이나 고민 등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기에, 나의 변화에 맞춰서 곡을 만들어가야 솔직한 이야기들이 담길 수 있다고 본다. 록 앨범을 구상한 것도 충동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을 자신 있게 도전하는 것이 나의 모토다.


김푸름이라는 아티스트를 있게 해준 음악이 있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해준 곡은 라디오헤드의 ‘Creep’이다. 이 곡을 몰랐다면 중학교 때 학교 가요제에 나갈 일도 없었을 것이고, 가요제를 나가지 않았다면 부모님께서 음악을 허락해 주실 이유도 없었다. 그러니 내 음악과 꿈의 시작점이 된 곡이라고 볼 수 있다.






진행: 임진모, 김태훈, 손민현, 염동교, 정기엽

정리: 김태훈

사진: 정기엽

김태훈(blurrydayo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