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피카 & 낸시보이 & 우마카 인터뷰

씨피카(CIFIKA)

by 정기엽

2025.01.22

모닥불 앞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주로 진솔하다. 미처 하지 못한 말을 꺼내느라 눈물을 흘리기도, 과하게 웃게 되기도 한다. 그런 소재를 제목 삼은 < Bonfire >에는 따스함과 진실한 마음이 담겼다. 시작부터 끝까지 세 명이 함께 완성한 캠프파이어, 그 불씨를 어떻게 피워냈는지를 듣기 위하여 앨범을 만든 전원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 앨범을 만들며 느낀 협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각자 ‘포용’, ‘솔직함’, ‘마음’을 답했다. 진실한 포용의 마음, 한 시간 가량의 상호작용 속에서 < Bonfire >에 고스란히 담긴 온기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음악과 창작에 대한 많은 내막을 듣고 한 가지를 깨달았다. 화기엄금의 자세로 홀로 존재하기보다 화기애애한 연대를 지향하는 편이 낫다는 걸.




좌측부터 낸시보이, 씨피카, 우마카


최근 발매한 < Bonfire >는 세 명의 협업이 주 요소인데, 두 뮤지션과 함께한 이유가 있나?

씨피카: 홀로 공연을 해 오면서 다음 앨범과 공연은 라이브적인 요소가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타 소리 같은 어쿠스틱한 느낌을 원했고 음악적으로 결이 맞는 기타 연주자를 오랜 시간 찾은 끝에 합류한 게 우마카다. 그리고 프로듀서인 낸시보이와는 공연을 함께한 적이 있는데, 매료될 만큼 공연을 준비하는 태도가 굉장히 프로다웠다. 좋은 방향으로 앨범을 이끌어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트랙 배치가 특히 몰입도를 주는 앨범이었다. 구성에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낸시보이: 디테일한 흐름에 의도를 두고 시작하지는 않았다. 처음과 마지막인 ‘View’와 ‘Totem’의 순서만 확실히 정해두고 다른 곡들은 작업 중에 유동적으로 배치했다.


씨피카: 다만 막바지에는 나름의 내러티브를 구축했다. 언급한 두 곡도 작업을 끝맺을 즈음에 추가된 거다. 하나의 공동체가 새벽부터 밤까지 살아가는 하루 일과를 표현하는 트랙 리스트로 서사적 재미를 줬다.


후반부의 ‘Pebble’은 처음 시도하는 장르였다. 이 곡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씨피카: 이 곡은 우마카가 오래전에 만들어뒀던 곡이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데모를 여럿 들려줬었는데, 특히 ‘Pebble’이 내가 부를 때도 잘 어울릴 거란 자신이 생겨서 허락을 맡아 수록하게 됐다.


우마카: 다른 뮤지션들에게도 몇 차례 작업 제의가 있던 곡이었지만 내가 부르고 싶다는 욕심에 모두 고사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허물어질 즈음이 씨피카가 불러보고 싶다고 한 때와 잘 맞아떨어져 작업하게 됐다. 내가 쓰지 않은 부분에 씨피카의 가사와 낸시보이의 너무 멋진 편곡이 더해졌다. 여럿이서 풍부한 소리를 쌓아가는 경험에서 많은 걸 배웠고, 셋이서 완성했기에 의미 있는 결과물이 나왔다.


전에 비해 늘어난 보컬 역량도 두드러진다.

씨피카: 작업 중 목표로 보컬 역량 높이기도 있었고,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여러 곡의 멜로디 메이킹을 낸시보이와 함께했는데, 너무 팝적인 건 지양하되 쉬운 멜로디를 목표로 했다.




사운드 면에서 이 앨범에서 새로 시도한 것도 있나.

씨피카: 질감이 굉장히 다른 마이크 여러 개를 사용해 녹음했는데, 흔치 않은 케이스긴 하다. 앨범을 만들 때 결을 맞추기 위해 마이크는 하나 혹은 두 대 정도로 통일하는 게 보통이니까. 그런데 우리는 각 곡의 분위기에 맞춰서 마이킹이나 프로세싱도 다 다르게 시도했다.


우마카: ‘If I could be’에 Line6의 DL-4라는 딜레이 이펙터를 사용해 연주한 데에 낸시보이가 또 딜레이를 쌓아 완성한 연주도 기억에 남는다. 또, 기타리스트로서 인상적이던 장면이 있다. 낸시보이가 슬라이드바를 대신해 기타를 에어컨 리모컨으로 연주한 부분이 있는데, 그건 에어컨 리모컨이 아니었으면 나오지 않았을 소리라고 생각한다.


소리의 질감 면에서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우마카: 씨피카의 목소리를 받쳐주려 노력했다. 그리고 음악적 언어로 얘기하기보다는 연주를 통해 이야기가 느껴지도록 했다. ‘Pebble’을 예로 들자면 조금은 엇나가더라도 두 기타 소리를 흐르게 두어 자연스러운 면을 꺼내는 식으로, 완벽에 기하기보다 분위기에 초점을 맞췄다.


앨범 아트 속 그림도 목가적인 분위기를 배가한다. 앨범 아트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다.

씨피카: 앨범 작업을 마친 후 전체를 들어봤을 때 고대 혹은 중세 시대 같은 심상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가 가장 기본적인 수단인 펜으로 점묘화를 그리기로 택했다. 믹스 마스터링을 모니터하는 중에도 스튜디오에서 새벽까지 점을 찍는 등 고생도 많았다.


우마카: 아트워크를 만드는 게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하기에 그냥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어렵다. 작업 속에서 나온 음악들이 자연의 일부, 벽화 같은 이미지가 있으니 곡마다의 상징을 만들어서 문양으로 구현했다. 우리가 곡들을 만들 당시의 순간들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도 한다.


작년 이번 앨범의 라이브 세션이나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무대 등 공연 전체 실황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보다 라이브를 영상화한 이유가 있다면.

씨피카: 뮤직비디오를 요즘은 잘 안 보는 것 같아서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게 제일 큰 이유다. 그리고 음악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싶어서 준비한 걸 잘 공연한 영상을 올리게 됐다. 그리고 라이브 영상을 아카이빙 해두는 게 더 의미 있기도 했다. 이번 수록곡들이 라이브에서 큰 재미가 있겠다는 상상을 많이 했어서 그 구현에도 의의가 있다.



이번 작업을 거치면서 기존과 달라진 방식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낸시보이: 가장 최근 참여한 두 앨범을 비교하자면, 알엠의 < Right Place, Wrong Person >은 워낙 다인원이다 보니 작업자들의 자아 충돌을 걱정하긴 했지만 오히려 엄청 수월했다. 자기 걸 다 만들어 본 사람들이니까 각자만의 레시피를 뒤섞으며 비교적 쉽게 이뤄진 작업이었다. 반면에 이번 앨범은 인디펜던트로 다 손수 만들어내야 했어서 개인의 에너지나 시간을 훨씬 더 치열하게 사용했다.


씨피카: 새로운 모델이 머릿속에 생긴 것 같다. 혼자 음악을 만들더라도 “낸시보이라면 어떤 변화를 줄까”, “우마카라면 어떻게 보컬을 쌓았을까” 하면서 마치 빙의하듯 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게 됐다. 두 뮤지션의 역량을 흡수해 자연스럽게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그리고 전자음악의 센 소리들을 추구해왔는데, 낸시보이에게서 참는 미학을 수용해 처음으로 절제된 음악을 낼 수 있었다.


우마카: 참여한 첫 음반이기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게 가장 달라진 점이다. 협업에 대한 열망은 늘 있었는데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 좋았다. 그리고 이번 작업 덕분에 더 재미있게 음악하는 방식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렇게 많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탄생한 앨범인 만큼, 각자가 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우마카: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조화로운 사이를 만드는 것도, 존중하는 것도 마음을 얼마나 쓰느냐에 달린 거니까. 그래서 기꺼이 애정을 써주는 사람들을 만난 게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씨피카: ‘포용’인 것 같다. 상대방의 취향이나 그려온 청사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진실되게 받아들이는 게 와닿는 음악을 만든다는 차원에서 중요한 것 같다. 심적인 장벽이 낮아야 서로의 울타리를 쉽게 넘나들기 때문에 인간성이나 성향도 잘 맞아야 한다.


낸시보이: 프로듀싱을 주로 하다 보니 늘상 협업의 연속이었던 터라, 다양한 케이스가 있다. 그만큼 여러 캐릭터를 꺼내게 되는 것 같은데, 그 모든 경우를 종합해보자면 답은 ‘솔직함’이다. 이를 테면 기싸움하는 데 시간 쓰기보다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해 최선을 만드는 게 효율적이지 않나. 열린 자세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서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걸 빨리 찾는 게 중요하다.




작년의 씨피카는 여러 활동을 선보였다. 앨범 외적인 활동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무엇인가.

씨피카: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의 내한 공연 오프닝 무대가 큰 의미가 있었다. 롤모델로 삼을 만큼 존경하고 음악적으로 닮고 싶은 부분이 많은 사람이고, 라이브를 꾸리면서 느낀 점이 이번 앨범에 반영되기도 했다. 이를 테면 큰 예산이 중요치 않다는 것. 인형극을 연출로 쓰면서 이목을 끄는 걸 보면서 자본을 뛰어넘는 아이디어가 있다는 걸 배웠다. 본질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꼈다. 같이 나눈 대화에서도 “자신의 타이밍이 올 때까지 꾸준히 음악하라”는 조언을 듣고, 그 자세로 작업에 임했다.


2025년이 됐다. 올해의 목표가 있다면.

낸시보이: 항상 개인 앨범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고 작업을 해오면서 음악 외의 것을 겪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최근 많이 한다. 소규모의 클래스에 참여하는 식으로 여러 경험이나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분야에서 영감을 쌓거나, 머리를 식히는 환기가 될 수도 있는 거고. 열심히 사는 게 바람이다.


씨피카: 기한을 정해둔 건 아니지만 EP 두 장을 만들고 싶다. 이번 앨범에서 다른 결의 시도를 해봤는데, 그 연장선으로 정통 어쿠스틱 음악 하나와 전자음악으로 돌아가는 하나. 후자는 목소리를 최대한으로 활용해 소리를 만드는 쪽으로 구상하고 있고, 어쿠스틱은 포크 앨범이 될 것 같다. 우마카와 같이 만들 거라고 다른 인터뷰에서 질러놓은 상태인데 사실 얘기를 좀 더 확실히 해봐야 한다.


우마카: 나는 확실히 얘기가 된 줄 알고 있었는데. (웃음) 다른 인터뷰에서 나도 모르는 계획을 들었을 땐 당황했지만 재밌을 것 같아 이 자리를 빌어 추진해보겠다. 그리고 개인 작업도 착실히 해서 잘 내보고 싶다.


마지막 질문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많은 영향을 받은 음악을 소개해달라.

씨피카: 음악 인생에서 영향을 크게 준 아티스트가 몇 있지만, 음악을 시작할 때 특히 제임스 블레이크의 초기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The Wilhelm scream’ 같은 곡이 있는 셀프 타이틀 앨범 < James Blake >를 음악을 하기로 결정한 때 많이 좋아했다.


우마카: 이번에 함께한 두 명을 꼽고 싶다. 앨범으로는 낸시보이가 참여했던 김아일의 < Some Hearts Are For Two >. 그 앨범에서도 엮은이 혹은 편집자로서 역할을 잘 해주었다고 생각해서 모르는 사이일 때도 인상이 짙게 남았는데, 이번 작업에 함께하게 됐다고 들었을 때 너무 기뻤던 기억이 있다.


낸시보이: 너무 많기에 고민이 굉장히 많이 돼서 큰 영향을 받은 건 전혀 아니지만, 그보다는 최근에 들은 걸 소개하고 싶다. 인터뷰 하러 오는 길에 친구의 추천으로 프랑스 뮤지션 도힌 뮤하일(Dorine Muhaille)의 ‘Le supplice de la baignoire’이라는 곡을 좋게 들으며 와서 가볍게 추천한다.





진행: 정기엽, 박승민, 염동교, 장준환, 신동규

정리: 정기엽

사진: 신동규

정기엽(gy24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