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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BABO)
2024

by 손민현

2025.01.27

분출하는 창작열을 담기에 이름 하나로는 분명 부족했다. 개인으로는 찐한 콘셉트 앨범 < Error >로 죽음과 철학에 집중했고, 소속 그룹 악뮤에서는 에피소드 시리즈로 대중과의 접점을 확장하다가 맞이한 이찬혁의 2024년. 돌연 새해 첫날 세속적인 꿈 ‘1조’를 고백하더니 오묘한 예술성의 밴드 프로젝트 바보(BABO)로 한 해의 방점을 찍는다. 행동도, 말도, 음악도 무언가에 예속되지 않는 이찬혁의 마무리답다.

새로운 캐릭터가 지닌 결은 줄곧 가요에 가까웠던 지금까지와는 한 차원 다르다. 드림 팝을 거닐며 안개를 헤집고, 단 몇 초의 사이키델릭이 순식간에 어지럽히며 일부러 살을 찢는 기타 연주가 작열하여 격정을 분출한다. 트랙 간 유일한 공통점인 몽환적이고 울적한 톤으로만 본다면 연출은 이 음습하고 탈중앙적인 장르의 계보를 충실히 따른다. 그러나 굳이 수줍은 사춘기를 내포한 자기 보컬, 툭 던진 듯하지만 단번에 각인되는 멜로디, 독특한 표현법 등 이찬혁의 정체도 나란히 살아 숨 쉬며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러니 뇌를 헤집어놓고 신경을 자극하는 방식이 갖가지일 수밖에 없다. 목소리보다 큰 음량으로 강하게 연주되는 일렉트릭 기타가 돋보이는 ‘Complicated’는 축 처진 포문을 열더니, 악뮤에서 깜찍함만을 제거한 듯한 팝 록 ‘뺨’은 또 보컬 맛과 멜로디의 전개를 적절히 살린다. < b > 기호가 상징하는 플랫(♭)이 돋보이는 ‘별별별별’의 불협화음은 ‘별종’의 매력을, 다시 7분이 넘는 록 서사시 ‘멸망’으로 확연한 주변인 정서를 드러낸다. 끝자락에 위치한 ‘Blues’의 기타 솔로는 또 어떤가. 정상과 이상의 균등을 고려한 혼합 배치다.

다른 말로 긴장감과 편안함이 번갈아 요동친다. 그는 일반적 음악 서사 체계에서 벗어난 것들도 노골적으로 담았다. 동물의 울음소리를 형상화한 ‘Danso’가 대표적으로, 한국의 유명한 도시 괴담 영상을 소재로 삼은 곡이다. 감옥, 화재, 목이 잘릴 위험을 언급한 ‘늑대를 찾아서’나 믿음을 불신하는 ‘Thanks, liar’도 문자로는 기괴함 투성이다. 이 괴리감에 잠식당한 정서를 언어와 대비되는 연주, 브로콜리너마저의 따스한 어루만짐에 가까운 담백한 합주로 치유하는 어색한 친절함까지. 이 아리송하고 모순적인 감상은 듣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창작의 자유는 성공한 대중가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책임이다. 현재의 대중음악에 가장 가까운 이가 경계에 있는 음악, 우울한 단조(短調)의 기수를 자처했으니 이 괴짜 향기 짙은 작품은 이찬혁의 작품 세계에서도 이미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다만 < b >가 다음 단계로의 확장일지, 혹은 그 자아에 추가된 밴드 칭호 하나 뿐일지 묻는다면 그 방향은 아직 두루뭉술하다. 늘 천재 소리를 듣던 이의 내면에 숨은 바보는 진정한 용기를 아직 뽐내지도 않았다.

-수록곡-

1. Complicated

2. 뺨 [추천]

3. 별별별별

4. 멸망 [추천]

5. Danso

6. 늑대를 찾아서

7. Thanks, liar

8. Blues [추천]

손민현(sonminhy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