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꽃차례
조동희
2024

by 신동규

2025.02.01

의도와는 무관하게 흐른 핏줄의 이름값이나 하나음악이 남긴 위대한 유산,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의 쓰라린 노랫말을 구태여 일일이 읊지 않으려 한다. 영향권이야 부정할 순 없겠으나 이 또한 그가 그동안 걸어온 긴 서사의 굵은 단막일 뿐, 온 배경의 무게를 넘어선 조동희만의 음악이 네 해를 지나 꽃을 피워 도착했다. 작사와 노래, 제작과 교육, 출간 등 다양한 면면을 소유한 만큼 어떻게 바라보아도 좋다. 개화에 총량과 선후가 정해져 있지 않듯 차례에 닿으면 결국 모두가 자신만의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말과 상통하는 대목이다. 


순간의 자극을 찾아 잘게 쪼개고 증폭하기 바쁜 오늘날, 제주의 마파람을 닮은 ‘애월에서’ 속 따스한 봄의 시구가 몹시 달갑다. 공간 설정에 묘미를 둔 채 아픈 기억을 헤집는 까닭은 결국 사랑이다. 이미 곁을 떠나간 ‘조각배’라는 이름의 ‘그대’를 그리워함으로써 당신을 영유하는 내가 과연 ‘달빛’이 맞는지, 출렁이는 나를 위해 물결을 비추는 마음속 ‘그대’가 사실 ‘달빛’인 건 아닌지 떠올려본다. 정답 없는 논제 위 바다와 하늘, 월색이라는 차가운 심상에 태양의 열기를 덧대자 ‘꽃차례’가 찾아와 무언가 움트기 시작하니 그것을 바라보는 서사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어떤 꽃을 봄에, 어떤 꽃은 가을에

같은 줄기에서도 꽃이 피는 순서가 있대

늦게 피는 것이 뒤처진 게 아니듯

우리는 우리만의 시간을 사는 거야”

-‘꽃차례’ 中- 


자식을 키우며 음악 생활을 이어가는 뮤지션과의 동지애는 물론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어머니를 향한 전우애를 눌러 담은 2021년 < 엄마의 노래 > 프로젝트는 의도 자체로 감동이었다. ‘틀려도 괜찮아’, ‘여전히 널 지켜줄게’와 같은 노랫말은 비단 조동희만이 품은 뜻은 아닐 테다. ‘꽃차례’의 핵심은 그렇게 스무 해를 지나온 그의 기억 사진첩 속에 깃들어 있다. 불안정한 사회와 불확실한 미래, 떠나가는 인간관계와 찾아오는 불안감, 그럼에도 자라나는 작은 ‘꽃’을 보니 새어나는 웃음. 기꺼이 거름이 되어 본유의 것을 잃어갔지만 그는 스스로 성장했고, 또 무언갈 피워내며 행복했다고 말한다. 


콧날이 시큰한 한 권의 수필과 같다. 조동희의 꾐 없는 목소리만의 공은 아니다. 음악적 파트너 조동익의 여전한 역량과 최근 삼십여 년 만에 독집 < Trace >를 발매한 더 클래식의 멤버 박용준의 손길이 더해져 지난날을 회고하는 한 여성의 낭만적인 울부짖음에 소리의 힘을 얹은 결과다. 또한 크라잉넛 한경록의 손끝에서 태어난 ‘연애시’와 언젠가부터 부질없다고 믿었던 단어를 읊조리는 ‘시절사전’이 잃어버린 가치와 존재를 다시금 복기하는 한편 ‘시간에게’가 곧이어 풀어놓은 낱말을 수합하며 종반을 향한 거시적 시각을 마련한다. 음반의 결말이 점차 긍정을 향해 변화함에도 자연스러운 흐름이 유지되는 이유다.


울림은 대체로 노랫말에 기인한다. 간결해질수록 견고해지는 포크의 아이러니도 글에 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말의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시기 < 꽃차례 >가 우리 곁을 찾아왔다. 슬픔에서 기쁨으로, 비관에서 낙관으로 변모하는 큰 틀에 담긴 것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게 될 지점들이다. 위로를 노래하는 음악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 본다면 쟁점은 전달력에 있다. 소박하고도 강직한 가사와 적확한 표현, 그리고 이를 드높이는 잘 다듬어진 사운드 조력까지 조동희만의 문장이 각자의 일기장에 적혀 유난히 추웠던 겨울, 미온이나마 따뜻함을 더한다.


-수록곡-

1. 애월에서 [추천]

2. 꽃차례 [추천]

3. 연애시 [추천]

4. 너는

5. 시절사전 [추천]

6. 시간에게 [추천]

7. 천사가 머무는 시간

8. 저녁나절

신동규(momdk778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