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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호원
극동아시아타이거즈
2024

by 김태훈

2025.02.03

호랑이는 입체적이다. 거친 외관과 기백을 가진 용맹한 동물이지만, 때로는 곶감이 무서워 도망가거나 꼬리로 물고기를 잡다가 빙판에 얼어붙는 등 철저히 우스운 존재가 되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2020년대, 새로운 호랑이들이 인디밴드신에 내려왔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맹렬하게 포효하며 강렬한 기운을 발산하는 그들의 모습은 지극히 익살스러운 한편, 이면에서의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2019년에 결성한 4인조 밴드 극동아시아타이거즈의 첫 정규앨범 < 몽유호원 >은 슬픔이 배인 익살의 록으로 가득하다. 펑크(Punk) 록을 골조로 삼고 멜로디와 가사에 그리운 추억에 관한 노스탤지어를 입혔다. 앨범 제목처럼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과거의 시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뛰놀던 여러 호랑이들을 추억하는 작법으로 슬픔의 그릇을 비워내고, 음악의 행복감으로 그 속을 다시 채운다.


'면목중학교'는 그러한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곡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낼 것 같은 제목과는 달리, 담긴 정서는 지극히 보편적이다. 맹렬하게 달리는 베이스와 드럼이 빚은 탄탄한 리듬 위에 약간의 나른함이 섞인 기타 리프가 흐르는 사운드는 전체적으로 역동적이면서도 가볍지만, 기저에 깔린 슬픔의 정서가 포착되기도 한다. 속절없이 흐려지고 흘러갔지만, 스스로 흘려버린 것이기도 한 과거의 시간과 후회되는 순간을 노래하는 가사에는 향수가 깃들어있으면서도 언어적인 재미가 있어 무겁지 않고, '우에이야'라고 외치는 추임새는 추억을 노래하는 펑크의 낭만을 극대화한다.


청춘의 펑크 록은 언제나 유효한 정공법이지만, 다소 뻔할 수 있다는 단점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허나 극동아시아타이거즈는 탁월한 멜로디메이킹을 주무기로 내세우고 정면으로 돌파해 정석의 강점을 끌어올린다. 공허함 속에서 희망을 붙잡으려는 '자신있던'의 정서 자체는 클리셰적이지만, 구성의 완급 조절이 깔끔한 덕분에 멋진 기타 리프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은 야성적인 속주 속에서도 선명한 멜로디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회상의 소재로 숱하게 쓰이는 비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낸 트랙들도 개성이 확고하다. 후각적 심상으로 과거를 추억하는 '비냄새'는 속주와 포효, 현란한 기타 솔로가 조화를 이뤄 밴드의 스타일을 직관적으로 소개하는 오프닝 트랙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오늘은 비가 와도 좋을 것 같아'는 파워 팝에 가까운 작법으로 인상적인 기타 리프와 선명한 멜로디를 선보이며 앨범의 구성을 다채롭게 만든다.


뜨거운 가슴으로 직조하는 록 사운드는 젊은 펑크 밴드가 가질 수 있는 한시적 특권이다. 그 기한의 끝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극동아시아타이거즈는 번개처럼 짜릿한 순간을 만들고 금세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성질을 가진 펑크 록에 노스탤지어라는 재료를 첨가해 소멸 후의 여운을 은은하게 남기는 방법으로 기한을 연장한다. 거친 듯 부드럽고, 즐겁지만 만만하지는 않은 모습으로 오랜 세월 구전될 이야기들을 남긴 과거의 호랑이들이 그랬듯, 그들 또한 본인들만의 방식으로 오랫동안 전승될 노래를 시작한다.


-수록곡-

1. 비냄새 [추천]

2. 오늘은 비가 와도 좋을 것 같아 

3. 자신있던 [추천]

4. 언제까지나

5.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6. 면목중학교 [추천]

7. 기억

8. Alright

9. 이미 늦어버린 것 같지만

10. 흐려질거야

김태훈(blurrydayo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