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희 인터뷰

조동희

by 신동규

2025.03.03

유난히 추웠던 겨울, 시린 현실 한구석에 피어나는 온기를 따라가보니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늦게 피는 꽃이 뒤처진 게 아니듯, 우리는 우리만의 시간을 사는 거야”. 4년 만에 세 번째 정규 앨범 < 꽃차례 >로 돌아온 조동희의 동명 곡 중 일부였다. 다종다양의 저작 활동으로 매번 위안을 심어줬던 그가 또 한번 우리를 끌어안으며 새로운 안식처를 자청한 것이었다. 


아픔이 언제나 위로에 선행하듯 개화 또한 여러 조건의 충족이 필요하다. 충분한 흙과 좋은 물, 적당한 햇살, 그리고 시간. 한국 포크의 전설 조동진, 조동익의 동생이라는 사실과 장필순의 명곡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가 안긴 위상은 그에게 토양이 되었고, 순수의 외피마저 장착한 아름다운 음악은 수분으로 기능했다. 남은 건 햇볕과 시간뿐. 둘 모두 직접 타개할 순 없는 것이기에 흐르는 시간 속 나름의 온기를 보태고자 조동희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여전한 음악 사랑과 세월이 전해준 것들의 가치, 그 안에 간직한 자신만의 직관이 너무나 따스해 점차 명확해지는 꽃차례의 잔상에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세 번째 정규 앨범으로 돌아왔다. ‘연애시’와 ‘저녁나절’을 제외하면 모든 곡을 직접 만들었다. 이 두 곡은 일전에 선보인 적이 있지 않나.

삶에 지쳐 사랑이 버거운 오늘날 연애를 응원하는 순수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크라잉넛의 한경록이 문득 떠올라 가사를 써 전달했는데, 하루만에 노래를 보내주더라. 그렇게 2019년에 싱글로 발매하게 됐다. ‘저녁나절’도 유사한 경우다. 기타리스트 드니성호의 작품에서 함께한 곡으로 애정이 큰 만큼 시간이 흘렀어도 다시 싣고 싶었다.

 

조동희의 음악 세계에 있어 조동익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 꽃차례 >에서도 호흡을 맞췄는데.

< 투트랙 프로젝트 > 작업을 함께한 이후 에너지가 다소 소진되었음을 느꼈다. 이번 작업은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역시 도움을 주셨다. ‘애월에서’의 사운드를 같이 만들어 나가던 기억이 떠오른다. 가족 관계와 무관하게 음악가로서 존경하는 사람이다.


반가운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더 클래식의 박용준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 

나의 사수다. 박용준 오빠의 사수는 조동익 오빠였고. 인연은 하나음악 때부터 이어졌다. 내가 영화계에서 음악계로 넘어가려 할 때 다양한 가르침을 줬다. < 꽃차례 > 작업 당시 직접 믹싱을 하는데 부족함이 느껴지더라. 그럴 때마다 작업실로 찾아가 같이 밤새 고치고 다듬었다. 오랜 시간 혼나가며 참 많이 배웠다.


많은 도움이 있었다 해도 작업 과정에 고충이 있었을 텐데.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꼼꼼하고 정교한 장인들 곁에서 자랐다 보니 귀는 고급화 되었는데 내 실력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더라. 사운드 퀄리티를 비롯한 전체적인 완성도 면에서 자기검열의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 꽃차례 >를 들으면 자연히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

“같은 줄기에서도 꽃이 피는 순서가 있다”. 꽃은 각 계절에 맞게끔 피어나고, 같이 자랐어도 동시에 피지 않는다. 사람이라고 다를까. 우리의 인생이 피어나는 순간도 언젠가 찾아올 테니 조급해 하거나 거대하게 생각하지 말고, 조그맣게라도 차근히 이뤄 나간다면 머지않아 차례를 맞이할 것이란 메시지였다. 각자의 블루밍 포인트는 꼭 온다.



‘최소우주’라는 회사를 차려 대표로 있다. 우선 ‘최소우주’는 어떤 뜻인가.
우리 모두는 결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각자는 투명하고 맑은, 하나의 완전한 우주다. 그 사이를 잇는 건 음악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이렇게 짓게 되었다.

최소우주에서 진행한 < 엄마의 노래 > 프로젝트는 진정 감동이었다. 소개를 해준다면.
아이를 키우면서 음악 활동을 이어간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때론 욕심도 나고, 미안하기도 하고, 좌절도 한다. 그런 엄마들이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를 노래로 만드는, 아무런 상업적 욕심 없이 만든 프로젝트였다. 작업하면서 앞으로 가장 사랑하는 앨범이 될 것이라 얘기하곤 했다. 최소우주에서 처음 진행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경기문화재단과 경기어린이박물관의 지원이 있어 보다 집중할 수 있었던 귀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 꽃차례 >를 듣다보면 ‘어머니 조동희’가 투영된 듯한 노랫말이 곳곳에 비친다. 부모로서의 감정이 많이 이입된 것이라 봐도 괜찮을까.
실제로 작업하면서 < 엄마의 노래 > 생각이 숱하게 났다. 그렇게 해석해주셔도 좋다. 어머니로 살아온 지난 이십 년 간의 세월을 담았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아이를 키우는 급박함 속에서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 힘들 때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그만큼 깊어지고 넓어지는 시야 속에서 새로운 교훈을 많이 배웠다. 이를 작품에 녹이고 싶었다.

< 투트랙 프로젝트 >도 최소우주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다. 어떻게 시작하게 된건가.
오디션 프로그램이 범람하던 시절,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사용 허락 요청이 정말 많이 왔다. 이처럼 강한 생명력을 가진 노래 한 곡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후 “사랑이란 무엇일까”를 주제로 가수 정승환과 대화를 나누다 그 내용을 토대로 곡을 썼는데, 프로젝트의 첫 곡 ‘연대기’가 되었다. 장필순 언니가 가이드 녹음을 해주며 탐을 내더라. 그렇게 투트랙 포맷이 시작됐고, 두번째 시즌까지 잘 마무리했다.

음악, 방송, 교육, 출간, 제작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름 앞에는 작사가라는 타이틀이 주를 이룬다. 모름지기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의 영향이 클텐데, 이렇듯 작사가로 이미지가 굳혀진 듯한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각자의 무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 노래를 잘하고, 누군 연주를 잘하듯 나의 무기는 작사다. 나는 싱어송라이터라 외치며 작사가란 명함에 갇히고 싶지 않았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내가 가진 하나의 재능을 인정해주신 것이라 받아들인다.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도 덜해졌다. 이렇게라도 하나를 남겼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조동진과 조동익의 동생으로 태어나 음악 활동을 하며 무게감과 부담감에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지금은 어떤 마음인지.
처음에는 심했고, 지금도 없다고는 못한다. 자괴감에 허우적 대던 날들도 있었다. 동진 오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모든 비교와 비난에 강해지라”는 말을 하셨다. 또한 첫 앨범을 낸 시기 필순 언니의 노래를 듣고 오빠에게 “왜 나는 저렇게 못할까”라고 물었더니 “너보다 오래 살았잖아”라 답하더라. 그게 정답이었다. 세월 속에서 얻어지는 게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많이 극복했다. 언젠가 오빠들이 “이미 충분히 자랑스러운 동생”이라 말해준 적 있다. 정말 위로를 많이 받았다.

수많은 곡의 가사를 썼다. 현재 활동하는 후배들 중 노랫말이 인상적이었던 곡을 꼽자면.
요즘은 정말 잘 쓰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당장 떠오르는 건 악뮤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와 데이먼스 이어의 ‘Yours’. 최근 허회경의 가사도 인상적이었다.

그럼 조동희의 가사가 담긴 곡 중 가장 애정이 큰 곡은 무엇인가.
장필순의 ‘지금 아니면 언제’, 첫 정규 앨범에 실린 ‘그게 나예요’, 더 클래식의 ‘종이피아노’가 떠오른다. 모두 그 자리에서 한 번에 나온 가사들이기도 하다.

열심히 준비한 세 번째 정규 앨범 < 꽃차례 >, 대중에게 어떻게 남겨졌으면 좋겠나.
< 꽃차례 >는 모든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계속해서 음악을 해나갈 수 있는 힘을 얻고자 했던 의지가 투영된 작품이다. 한 분이라도 좋아해주신다면 또 준비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힘들다. 견뎌내다보면 언젠가 꽃이 피리라 생각한다. 스스로 블루밍 포인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했으면 좋겠다.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지금의 조동희를 만든 인생 음악을 골라본다면.
< 조동진 1집 >이다. 유년 시절 집에 두 장의 레코드가 있었다. 하나는 차이코프스키 음악이었고, 다른 하나가 바로 < 조동진 1집 >이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돌려 들었다. 동요를 대신할 정도였다. 노래를 듣고 가사를 옮겨 적고, 그걸 그림으로 그리면서 성장했다. 



진행: 염동교, 신동규, 박승민, 정기엽
정리: 신동규
사진: 정기엽


신동규(momdk778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