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다수의 트랙이 차분하거나 여유로운 와중에 타이틀인 ‘Baby, not baby’만 팝 펑크를 지향해 이질감이 맴돈다. 게다가 앨범의 얼굴이 될 자리에 둔 곡이 오히려 가장 모호한 인상을 준다. “한 템포 달리 반응하는” 슬기 캐릭터를 녹여낸 가사와 그것을 역이용한 높은 속력의 전개는 좋지만 멜로디가 귀에 걸리지 않았다. 참을성 있는 청중은 뒷심을 발휘할 수록곡의 달콤한 과즙을 마실 수 있겠으나, 씁쓸하게도 그렇지 않은 다수를 놓칠 현실을 지우긴 어렵다.
K팝의 정설 중 하나는 타이틀과 수록곡 간 문법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메인을 꿰찰 만한 곡이 숨은 고수 포지션으로 밀려날 수는 있으나 반대는 절차가 까다롭다. 이를 방증하듯 ‘Better dayz’가 연이어 등장한다. 이전 곡 ‘Baby, not baby’와 이전 앨범 < 28 Reasons >를 적절히 섞은 듯 박진감 넘치는 베이스와 이모(Emo) 기운이 감싸는 분위기를 가졌지만 마찬가지로 보컬보다 다양한 기타 연주 혹은 박자감각에 집중하게 만든다. 단번에 꽂힌다는 심지의 부재다.
호흡이 가파른 전반부가 지나고 템포를 꺾은 R&B가 수면 위로 오를 때가 본작의 하이라이트다. ‘Whatever’는 슬기의 노래가 가지는 강점을 가득 담는다. 밀고 당기는 리듬감이 탁월한 벌스와 막바지 스캣과 애드립은 듣는 사람들에게 쉴 틈을 내어주는 목소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레드벨벳 ‘Iced coffee’나 ‘Perfect 10’ 등 벨벳 콘셉트의 솔로 버전 같은 몽롱한 ‘Praying’ 역시도 여러 차례 증명한 어우러짐에 한 획을 덧댄다. 선율의 흐름을 천천히 늦추면서 두 가지 모습을 효과적으로 각인했다.
그룹의 최근작 < Cosmic >부터 웬디 < Wish You Hell >, 아이린 < Like A Flower > 등 팀 안에서 좋은 음반이 많이 나왔기에 기대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시도에는 연거푸 치던 박수를 주저하게 된다. 슬기가 훌륭한 퍼포먼스와 음악을 만난다면 잘 소화해낼 역량을 갖췄음을 이미 대중이 알 정도기에 더 그렇다. 상충하는 곡의 무드부터 비실험의 영역에서만 진가를 드러내는 면모까지. 아리아나 그란데의 < Dangerous Woman >을 연상시키는 가면보다 ‘Weakness’ 등 후반부 슬기의 맨얼굴이 더 빛났다.
-수록곡-
1. Baby, not baby
2. Better dayz
3. Rollin’ (with my homies)
4. Whatever [추천]
5. Praying [추천]
6. Weak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