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리보이, 씨잼 등 당대 루키를 신의 중심으로 이끌던 레이블 저스트뮤직의 역할은 현재진행형이다. 2009년생 래퍼 율음의 작년 < Cicada >와 R&B 뮤지션 신지항의 이번 앨범까지. 악기 하나하나 직접 연주한 DIY라는 점에서 신진 아티스트들이 가진 열정과 능력치가 드러난다. 특히 본작은 뫼비우스의 띠 같이 끝과 처음을 결부시키고, 곡마다 끈끈한 연결성을 갖추며 앨범의 미학을 극대화한다. 장롱과 농담, 두 테마로 42분간 떠날 시간 여행은 황홀한 소리로 넘실댄다.
‘농’을 열자마자 따뜻한 연주와 목소리가 가득하다. < AP Alchemy > 컴필레이션에서 보였던 거친 비트 위 퍼포먼스와는 확실히 다른 노선이다. 이전 곡과 연주로 묶인 채 포근한 멜로디로 사랑을 외치는 ‘골짜기’는 가장 걸출한 트랙으로, 시간이 증발했다고 느낄 정도의 흡인력을 품는다. 코러스로 자연스레 합친 ‘이름’을 지나 ‘Faces’에서 ‘Slow’로 이어지는 다음 챕터에서 보다 낮은 온도로 자신을 마주한 흐름 또한 훌륭한 전개를 잇는다.
프로듀서 피셔맨과 함께한 ‘Breathe’로 산뜻한 숨을 돌리고, 예스코바의 랩을 얹은 ‘End of the world’와 다시 홀로 서는 ‘전단지’의 구간에서 에너지는 최고조에 달한다. 각각 여러 변주를 거느린 록 사운드와 신시사이저가 마음껏 뛰노는 두 놀이터는 리스너들의 러닝메이트가 되기 충분하다. 랩을 구사하는 ‘Seoul2’, 프로듀서 친구들에게 편곡을 맡겨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자리한 ‘Friends’도 넘치는 재치의 줄기다. 저녁을 지나 고요한 밤이 오듯 ‘I’ve found you’와 ‘As much as we want’는 느리고 서정적인 연주와 가창의 발현을 타고 깔끔한 갈무리를 짓는다.
산뜻한 날씨의 한강을 산책하며 반복 재생하기 최적의 음반이다. 도심과 자연이 한 쌍이 되는 풍경처럼 아늑한 아날로그 악기의 선율과 감미로운 보컬 음색이 한데 어우러진 공이 크다.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한 첫 정규작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의 유기적 구조 또한 힘을 보탠다. 편안한 청취를 돕는 본작의 발아에는 초심자의 행운이 아니라 신지항이 쏟은 노력의 시간이 보인다. 하나의 작품으로 끝날 게 아닌, 지속을 기대하게 한다. R&B 신(新) 지향점의 탄생이다.
-수록곡-
1. Nong
2. 골짜기 [추천]
3. 이름
4. Faces
5. Duck to condor
6. Slow
7. Breathe (Feat. Fisherman)
8. End of the world (Feat. Yescoba) [추천]
9. 전단지 [추천]
10. 4Letters
11. Seoul2
12. Friends (Feat. Friends)
13. I’ve found you (Feat. Hiko) [추천]
14. As much as we want [추천]
15. Out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