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Virgin
로드(Lorde)
2025

by 한성현

2025.07.17

모든 것이 투명하다. 엑스레이로 찍은 앨범 커버와 CD, LP, 심지어는 바이닐 음반에 동봉된 사진 속 그가 입은 비닐 바지마저. 4년 만에 돌아온 로드에게는 더 이상 숨길 것이 없다. 얼음이자 불, 세이렌이자 성자였다는 ‘Shapeshifter’의 고백처럼 < Virgin >은 살갗 아래 자기 자신을 스스럼없이 전시하는 앨범이다.

전작 < Solar Power >는 ‘로드의 음악’보다는 ‘로드가 원하는 음악’이었다. 마음에 담아둔 이는 주류 팝의 황금기에 아프리카로 떠나 1986년 < Graceland >를 선보인 폴 사이먼. 그를 우상 삼은 아티스트는 2021년 같은 해 마오리어 EP < Te Ao Mārama >까지 발매하며 스타덤의 그림자로부터 도피를 떠나 고향 뉴질랜드를 찾았다. 야심 찬 여정, 그러나 평가는 엇갈렸고 공백기 동안 고민의 시간을 보낸 그는 일렉트로 팝의 영토로 돌아왔다.

회귀라 생각하기 쉽지만 < Virgin >은 재정립에 가깝다. 일단 파트너가 < Melodrama >와 < Solar Power >를 함께한 잭 안토노프에서 짐 E 스택으로 바뀌었다. 밴드 하임과 캐롤라인 폴라첵, 도미닉 파이크, 찰리 XCX, 본 이베어 등과 협업한 프로듀서의 지원을 받아 로드는 작정하고 날을 세웠다. 미니멀한 기조를 유지하되 ‘Shapeshifter’에서는 UK 개러지를, ‘Man of the year’에는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를 삽입하면서까지 전작의 열사병 같던 몽롱함을 싹 들어낸다.

타격감을 올린 퍼커션과 뒤틀린 소리는 곧 스스로 집도하는 해부 현장의 효과음이다. 찰리 XCX가 하이퍼팝의 죽음을 알린 지도 오래고 ‘Man of the year’의 크레센도식 포효에서는 빌리 아일리시의 ‘Happier than ever’와 피비 브리저스의 ‘I know the end’가 겹치니 이전 같은 충격은 아니다. 시류에 늦었다 한들 앨범은 로드 음악의 제1원칙인 선명한 심리 구현만은 충실하게 수행한다. 복잡하게 배치한 스펙터클과 대비되는 명료한 선율에는 가벼운 시선을 거부하면서도 이해를 갈구하는 인간적인 모순이 투영되어 있다.

유독 아찔한 선까지 뻗는 가사도 그 일환이다. ‘어느 날은 여자였다가 어느 날은 남자’라는 ‘Hammer’의 발언은 당혹스럽고, 노골적인 가사의 샘플과 신음 위에서 연예인의 사적 영상 유출본 시청을 털어놓는 ‘Current affairs’는 윤리적인 질문도 품게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허례허식을 벗어 던진 언어는 현실은 애초에 낭만 따위로 편집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듯이 들린다. 문학이 아닌 르포. 앨범은 그렇다면 < Solar Power >만이 아니라 < Melodrama >에 대한 작별이기도 하다.

솔직함마저 캐릭터와 셀링 포인트가 된 지금, 흐름의 발원지에 있었던 로드는 나신도 모자라 한 꺼풀 더 걷어낸다. 상처와 때로는 추잡함으로 얼룩진 앨범은 흠결을 가리지 않아 오히려 제목처럼 순수하다. 외곽 뉴질랜드 소녀가 대중음악의 중심으로 침투한 지도 어느덧 12년이 흘렀다. 많은 것이 바뀌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대체할 수 없는 팝의 ‘대안’이다.

-수록곡-
1. Hammer [추천]
2. What was that [추천]
3. Shapeshifter [추천]
4. Man of the year
5. Favourite daughter [추천]
6. Current affairs
7. Clearblue
8. Grwm
9. Broken glass 
10. If she could see me now [추천]
11. David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