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를 들고 ‘기타’로 분류되는 청춘을 화자 삼아 노래하기, 이는 인디라 일컫는 움직임의 대표 격 이미지이자 박소은을 표현하는 문장이다. 동류로 묶어봄 직한 음악가를 통해 빗대 보자면 김사월이 처연함을, 윤지영이 일상의 포착을 증폭시키는 가사를 쓰는 점과 달리 박소은은 사시나무 같은 감정에 집중한다. ‘반복되는 모든 게 날 괴롭게 해요’ 내지는 ‘마취된 슬픔이 다시 고갤 들 때까지’처럼 서정적인 제목들이 이를 대변하는 예. 마냥 그것이 음울에 스며 풀리기보다 다양한 진폭에 실어 보낸다.
초기 작품인 < 일기 >는 어쿠스틱 록의 전형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그 스타일에서 점점 변모를 꾀했다. 시도 끝에 탄생한 세 번째 EP인 본작은 박소은식 팝이라 여겨도 될 만큼 신선한 콘셉트를 캐주얼하게 엮었다. ‘내가 되게 유치한 미디어 속에 갇힌 주인공이면 좋겠어’는 가사로도, 음악적으로도 첫 트랙의 자리를 빛낸다. 스물둘, 셋쯤에 성장을 멈추길 바라는 마음을 컨트리 풍의 기타 연주와 융합해 담은 점은 해당 장르 특유의 시대성, 특정 지역이 떠오르는 강한 풍미와 엮여 시너지를 일으킨다. 쉽게 말해 거대한 이상적 배경 속으로 빠져들고 싶은 생각이 또렷한 이미지를 품은 리프와 엉켜 커다란 설득력을 갖춘 셈.
동일한 주제를 이어가는 ‘레고월드’는 서사적 구조로는 이음새가 좋지만 시도의 측면에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어느새 트렌드로 자리 잡은 일본 록 사운드에 박소은의 서정성을 휘저은 작법보다 바로 뒤에서 드라이브감을 살린 ‘자율주행’ 쪽이 첫 곡의 생동감을 더 훌륭히 지탱하기 때문. 두 곡이 주는 만족감이 후반부까지 재생할 힘을 싣는다. 시원한 인트로와 디테일한 묘사가 특징인 ‘너에게만 계속 지고 싶어요’는 물론이고, 초반부를 이끈 상상의 계기를 연상시키는 ‘잠에 들어야지’는 반복을 자아내는 장치로 굴러간다.
삶이 버거운 청춘의 탄식, 그런 노래는 이미 많다. 자칫 진부할 수도 있던 메시지에 < B급 미디어 >는 만화로 도피하고 싶다는 망상을 더해 차별점을 두었다. 한 번쯤은 떠올릴 법한 소재지만 음악 위에 서술된 적은 많이 없는 이야기가 재미 요소로 작용해 박소은이 가진 작가로서의 능력이 선명히 펼쳐졌다. 뻔한 매듭을 뻔하지 않게 푸는 손길은 한 끗 차이에서 온다.
-수록곡-
1. 내가 되게 유치한 미디어 속에 갇힌 주인공이면 좋겠어 [추천]
2. 레고월드
3. 자율주행 [추천]
4. 나는 변하지 않아
5. 너에게만 계속 지고 싶어요
6. 잠에 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