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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 Fantasy Vol.1
채영(TWICE)
2025

by 손민현

2025.11.05

아주 잠깐 현실을 벗어난 아이돌 멤버는 작은 꿈을 꾼다. 세련된 프로듀싱과 동심이 공존하고, 파스텔 톤 미감과 뚜렷한 자아가 꿈틀거리는 다이어리 속 세상. 그곳에선 올해 무엇보다 강력한 트랙 ‘Take down’으로 존재감을 과시한 래퍼는 없고 밋밋한 테두리와 실험성을 보란 듯 뽐내는 싱어송라이터만이 존재한다. 트와이스의 네 번째 솔로 주자로 나선 채영이 든 깜찍한 반기, 대중성을 내뿜었던 현실 속 K팝 대표 그룹과는 확연히 다른 상상력의 노선이다.


늘 빛나던 팝스타 채영이 ‘그림자놀이’에 지쳐 ‘내 기타’를 통해 내밀한 음악 세계로 빠져든다. 이만하면 정당성과 서사는 충분하다. 곧 이 자전적 인디 팝 나라로 동행한 일본 형제 밴드 글리코(Gliiico)가 기획안을 이어받았고, 첫 트랙부터 일관된 메인 테마를 구상했다. ‘Girl’의 무심한 타현은 꿈과 침실을 유영하는 ‘Downpour’의 몽환을 물씬 뽐내며 ‘내 기타’까지 이어진다. 마지막 트랙의 거친 마감과 정제되지 않은 독백은 심야의 민낯과도 같이 갑작스러우나 동시에 필적을 보증하는 역할이다. 가장 본인다운 모습은 직접 쓰고 그린 동화의 끝에서 드러난다.


투박한 페이지를 넘기면 또 어지럽게 반짝거린다. 뼈대보다 장식이 주목받는 탓에 개연성이 소거된 그림책 모양새가 되었지만 이 또한 판타지의 본질이다. 나름의 절정 ‘Shoot (Firecracker)’는 쨍한 빛을 반사하고, 이센스의 < 저금통 >에서 독특한 목소리를 알린 지빈(Jibin)과 소녀의 고민을 노련하게 캐치한 수민이 꾸민 ‘Ribbons’에서 광선은 점멸한다. 힙합 프로듀서 피제이의 수혜를 받은 ‘그림자놀이’의 묵직한 비트를 힘차게 뛰어다니는 기예 역시 뜻밖에 맹랑하다. 기승전결이 매끄럽지만은 않지만 이 미결마저도 플롯의 일부인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완성도와 별개로 요점은 그간 채영이 경험과 관찰로 쌓아 올린 개인 취향을 설득력 있는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체가 아닌 개인의 담화, 의도된 불완전성, 그룹과의 확연한 질감 차이를 늘어놓았을 뿐인데도 속편을 향한 기대감을 안팎에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성과다. 앞선 지효, 나연, 쯔위의 독립 활동과 굳이 견주지 않아도 이미 예상되는 결과물이었지만 생각보다 더 멀고 흐리게 비현실적인 첫발을 뗐다. 앞으로도 선명한 팔레트에서 펼칠 무채색의 꿈을 향해.


- 수록곡 -

1. Avocado (Feat. Gliiico)

2. Band-aid

3. Shoot (Firecracker) [추천]

4. Girl

5. Ribbons (Feat. SUMIN & Jibin of Y2K92) [추천]

6. Downpour (Feat. Gliiico)

7. Bf

8. 그림자놀이 [추천]

9. 내 기타

손민현(sonminhy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