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메이저는 K팝과 힙합이 결합할 때 필연 발생하는 본질적 괴리를 정면 돌파한다. 진정성과 기본기의 벽을 넘지 못하고 평범한 이들은 스러지고 말지만 2023년 출격한 이 그룹은 약간 다르다. 랩과 음악을 만들고 뱉는 행위를 즐기는 소년들은 매번 시험을 즐기고 차근차근 해결해 간다. 본명을 당당히 건 만큼 기획서보다는 본인들 이야기의 비중이 크고, 역량 확대를 우선해 큐엠을 랩 선생님으로 두며 신세인 등 한국 힙합 속 실력자의 영양을 흡수했다. 역설적이지만 힙합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 주도적인 모범생이다.
< Trophy >는 랩에만 정진하기보다는 한숨 고른다. 랩을 폭격하던 ‘뭘 봐 (Takeover)’와 달리 ‘트로피 (Trophy)’의 발화는 가볍고 간결하다. 신세인과 쿤디판다처럼 빈틈없이 마디를 가득 채운 스타일은 잠시 접어두고, 시시각각 형태를 뒤바꾸는 전자음악에 조화롭게 묻어가는 방식이다. ‘Need that bass’ 역시 접근법은 유사하다. 베이스와 리듬 악기가 난무하는 가운데 비트와의 전면전이 아닌 정확한 공간에 랩을 넣는 게릴라를 택했다. 다 장르에서 영역을 넓힌 프로듀서 아이오아(IOAH)가 꽤 어려운 과제를 제시했지만 이만하면 무난히 합격점이다.
약간의 유연함과 감속이 맛을 떨어뜨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룹의 장점을 나열할 때 적응력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지적의 대상을 모호하게 숨긴 ‘의심스러워 (Suspicious)’, 멤버들의 참여 순도가 가장 높은 이 세 번째 트랙은 K팝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스닉디스(Sneak diss)다. 당돌한 비판을 택한 것 자체보다 곡을 해석하고 소유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냉소적인 비트에 맞춤형 단어와 후렴구를 배치하고 팔짱 낀 태도와 여유로운 표정을 상상하게 만든 어조의 변화가 능숙하고, 빠른 속도의 ‘Need that bass’로 다시 돌아와도 여전히 원본은 살아 있다.
K팝의 틀에 얌전히 담긴 듯 보여도 내용물에서 올라오는 힙합의 향취는 포장지를 뚫는다. 저음을 담당하는 박석준이나 개성 분출에 목마른 윤예찬 등 여러 결로 나눠진 각자의 특색도 아직 신선하다. 다양성 공존의 토대는 개성이 팀을 해치지 않도록 발언권을 하나둘씩 높여 가는 단계적 제작 방식, 적절한 곳에 힘을 보탠 자유로운 창작 환경 덕분이다. 이들의 활동과 존재는 하나의 교훈을 던진다. K팝과 힙합을 동시에 쫓아도 충분히 멋있을 수 있다는 것. 겉멋 든 이분법보다 음악을 대하는 순수한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수록곡-
1. 트로피 (Trophy) [추천]
2. Say more
3. 의심스러워 (Suspicious) [추천]
4. Need that ba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