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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Maid
선미
2025

by 신동규

2025.12.16

오래 걸렸다. 굳이 그룹 활동 당시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홀로 선 뒤의 성과가 선명해 이미 몇 장의 정규 앨범을 가진 줄 아는 경우가 다수다. ‘24시간이 모자라’와 ‘보름달’이 담긴 < Full Moon >, ‘가시나’, ‘주인공’, ‘사이렌’, ‘누아르’, ‘날라리’ 등으로 2010년대 K팝 여성 솔로 퍼포머의 대표 격을 지켜온 장본인이었기 때문에 그도 그럴 법하다. 본진은 언제나 과거에 있었다. 이는 선미의 뇌쇄적 이미지와 맞물렸고, 그렇게 자신만의 영역으로 나아갔다. 기다림 속에 태어난 < Heart Maid >는 이때까지의 변천사를 모아둔 사진첩에 가깝다.


서두에 언급한 히트곡은 열 세곡을 눌러 담은 앨범 속에 모두 들어있다. 다만 새로울 건 없다. 최근 부쩍 공들여 온 밴드 사운드로의 침투도 마찬가지다. 더 큰 쟁점은 각 트랙이 견고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모두가 낯익다. 그렇다고 가만 듣기에는 작품 자체의 볼륨이 크다. 앨범 단위로의 완성도를 부각하고자 팝과 록, 알앤비로 분류한 구성의 삼박자 또한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다. 그간의 발걸음을 응축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앞으로 헤쳐나갈 방향성의 부재도 위축 요소다.


그리 멀리 가지 않아도 될 빌리 아일리시의 실루엣이 그려지는 첫 곡 ‘Maid’와 뒤따른 ‘Cynical’의 후크는 확고한 고집의 결과다. ‘Can’t get you out of my head’를 부를 당시의 카일리 미노그 혹은 ‘Feels like I'm in love’로 1980년 영국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 켈리 마리, 1970년대 디스코 클럽의 강자 실베스터를 닮은 디스코 음악은 ‘뚜뚜’까지 이어진다. 그렇게 삼분의 일이 지났다. 이곳에 선미의 명의는 없다. 읊조리듯 내뱉는 개성 일변의 목소리 하나로 공식을 답습할 뿐이란 인상을 피하지 못한다.


베이스 연주로 분위기 변환을 꾀한 스킷 넘버 ‘Bass(ad)’의 모호한 위치와 록 사운드를 표방하나 결국 틀에 갇힌 선미 식 팝의 전형과 같은 ‘Blue!’는 조급하다. ‘Balloon in love’에서 밴드 풍 음악의 지향점이 일부 드러나긴 하나 실연에 힘을 둔 것도, 새로운 장르로의 도전으로 보기에도 어렵다. 이렇듯 신나게 달리다 어느덧 다가온 말미에서 서정을 찾는 모습은 전개의 빈틈을 부각하는 셈이다. 진행 흐름의 어색함 속에도 곳곳에 심어둔 콘셉트 음반의 특성, 메이드 이미지를 부각한 커버 및 장치가 어떠한 효용이 있겠는가.


보고 싶어 하리라 믿는 것과 음악가로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 간의 충돌, 강약점의 타협은 고사하고 그럴듯한 저울질도 놓친 형상. 이는 대중이 일찍이 가지고 있던 고정된 이미지만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채 잔상으로 분할 뿐이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와 독창적 퍼포먼스의 조화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이자 십수 년 만에 선보인 첫 정규작이기에 더 크게 다가오는 심적 요소까지. 가짓수 늘리기에 치중한 나머지 가지치기에 신경 쓰지 못한 과실이다.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한들 그때의 문법만으로 승부하기엔 이미 다른 판이 되었다.


-수록곡-

1. Maid 

2. Cynical [추천] 

3. Sweet nightmare 

4. 뚜뚜 

5. 미니스커트 

6. Tuberose 

7. Bass(ad) 

8. Blue! 

9. Balloon in love [추천] 

10. Happy af 

11. 새벽산책 

12. Bath 

13. 긴긴밤


신동규(momdk778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