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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권나무(KwonTree)
2025

by 김반야

2026.02.24

어떤 앨범은 편지를 닮았다. 봉투를 열면 발신인의 근황이 정성스레 적혀 있고, 그 사이로 추억과 다정한 안부가 배어 나온다. 6년이라는 긴 공백을 깨고 도착한 권나무의 정규 앨범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마주한 지인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읽듯, 그의 음색은 미묘하게 변해 있다. 때로는 그렁그렁한 울음이 맺혀 있고, 어떤 대목에선 더없이 단단해졌으며, 또 어딘가는 닳아 반질반질하게 길이 든 소리가 난다. 하지만 노래가 품은 본질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그대로다.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토록 안도감을 주는 아티스트가 또 있을까.


음악가에게 근황이란 최근 골몰하고 있는 음악적 스타일일 것이다. 이번 앨범은 마치 연필의 세밀한 선과 명도만으로 빛을 구현해낸 정물화처럼 느껴진다. 다채로운 악기를 쏟아붓지 않아도 입체감과 온기가 살아있는 건, 긴 시간 동안 소리를 세밀하게 다듬고 손질해 온 능숙함이다. 때문에 음악의 모난 구석은 깎여 나가고, 그 자리엔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이 남았다.


‘나도 모르게’는 여전한 위트를 머금고 있고, ‘잠든 너를 보고 있으면’은 과장된 따스함 대신 피곤이 섞인 낮은 목소리를 담아내 오히려 현실적인 삶의 무게를 감각하게 한다. 앨범의 후반부로 갈수록 호흡은 길어지고 시도는 과감해진다. ‘빠름’이 미덕인 시대의 문법에서 벗어나 느린 보폭으로 긴 전주와 간주를 채워나간다. 그 여백에 몸을 맡기다 보면 나 또한 ‘어떤 쓸쓸함과 한때의 우정과 사랑 같은’ 지난 날을 한 편의 영화처럼 들여다보는 경험을 하고 만다.


가사의 미학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소중한 가치를 섣부른 낙관이나 허망한 표어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생활을 너르게 품어 안는 ‘달관’의 태도로 노래한다. 사랑을 반복하는 ‘청춘’은 사랑이라는 거대한 감정을 설명하는 데 ‘사랑’말고는 다른 수사가 필요치 않음을 증명한다. 불혹을 넘긴 그는 어쩌면 이미 지나가 버렸을지도 모를 빛을 탐색하며 나직한 읊조림을 이어 나간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스름 속에서도 가만가만 바닥을 짚으며,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부르는 정직한 발걸음 같은 노래들이다.


그의 음악에서 곧게 뻗은 나무의 질감이 느껴지는 건 비단 이름 때문만은 아닐 터다. 나무는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지만, 계절의 변화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며 찬란하게 몸을 바꾸는 생명체다. 앳된 잎맥 사이로 햇살이 투명하게 비치던 연두색의 시절을 지나, 이제 그의 음악은 짙고 무성한 그늘을 드리울 만큼 깊어졌다. 언제 다시 그의 편지를 받게 될지 기약할 수 없지만, 그가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노래하리라는 신뢰만큼은 굳건하다.


-수록곡-

1. 그렇게, 나도 모르게 [추천]

2. 투정 여행

3. 너의 마음속에

4. 잃어버린 게 너무 많아서 [추천]

5. 두 마음

6. 어디에서도

7. 가까이에 

8. 잠든 너를 보고 있으면 [추천]

9. 새해 [추천]

10. 청춘 [추천]

11. 잔상

12. 생활 (우리에게 intro) [추천]

13. 우리에게 [추천]

김반야(10_b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