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Z.O.O.G
리치 이기(Rich Iggy)
2026

by 박승민

2026.03.14

리치 이기의 부상에 소위 ‘일베’ 콘셉트가 큰 역할을 했음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정치인을 직접 거론하는 가사로 SNS 바이럴의 흐름에 올라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지난 1월 발매한 GGM 킴보와의 합작 < Kimbo Iggy >에서도 유사한 접근법을 취했다. ‘음지’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근래 한국 힙합의 자극 추구 풍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게 화제성에 기대는 인물로 치부되던 시점 재달의 ‘거물’에서 선보인 피처링이 재해석의 실마리가 되었다. 이어 내놓은 세 번째 정규작 < Z.O.O.G >은 그의 맨얼굴을 가장 가까이서 포착한 작품이다.


소울 샘플 중심의 프로덕션이 기존의 이미지를 완벽히 탈피한다. 전작들에서 흩어져 나타났던 인상적인 측면을 앨범 전체로 확대했으며 중후한 톤의 곡을 앞쪽에, 감성적인 곡을 뒤쪽에 배치해 짧은 볼륨에서도 완결성을 갖췄다. 흥미로운 것은 타입 비트를 모은 후 재편곡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이다.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종종 택하는 작업 방식에 준수한 비트 초이스 감각과 절묘한 구성을 곁들여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 디트로이트 랩과 익숙한 트랩을 오가는 장르 또한 자신의 역량을 잘 이해해 내린 선택이다. 신예를 위해 조력자로 나선 베테랑들도 마찬가지로 무대에 맞추어 각자의 견고한 기량을 과시했다.


다만 균일한 프로듀싱과 달리 리치 이기의 퍼포먼스는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인다. 본래 강점인 박자를 미묘하게 비껴가며 타는 플로우와 특유의 추임새는 여전하다. 여기에 적절히 강세를 주어 고저차를 만든 ‘Fear less’나 ‘Touch down’ 등의 트랙과 다르게, 싱잉 랩은 멜로디를 비롯한 랩 디자인이 단순한 탓에 래핑이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는다. 이전의 콘셉트를 걷어내려다 생긴 빈자리다. 가사 역시 전반부 대부분을 차지하는 플렉스류의 표현에서 그만의 무언가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이렇듯 약점이 군데군데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Childhood’와 ‘Silence’에서 선명히 내비치는 속마음이 < Z.O.O.G >의 주된 매력이다. 과장된 연출 뒤편에 가려져 있었던 진의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관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 난무하는 작금의 힙합 신에서 논란을 앞세우는 쪽은 정도(正道)를 걷는 편보다 쉽고 빠르다. 이 또한 영리한 전략임을 부인하진 못하겠지만 결국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운 꼴이 된다면 계산이 달라진다. 곳곳에서 묻어나는 진심과 기믹 간의 괴리감이 벌써 여러 의문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둘을 병치하는 수법 자체를 한계로 볼 수는 없다. 에미넴이 슬림 셰이디라는 페르소나와 개인적인 고백을 동시에 밀어붙이며 자신만의 서사를 완성해 냈듯, 리치 이기에게도 조율이 필요한 때가 다가올 것이다. 정반대의 두 얼굴을 공존시키는 일이 향후 그의 행보를 가를 최대 과제다.


-수록곡-
1. Outta ground (Feat. The Quiett)
2. Touch down (Feat. ZENE THE ZILLA) [추천]
3. Fear less [추천]
4. California (Feat. Paloalto)
5. Way of life
6. New vision (Feat. Chin)
7. Mula flow [추천]
8. Childhood (Feat. Deepflow)
9. Silence [추천]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