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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Fast Die Skrt
빌스택스(BILL STAX)
2026

by 박승민

2026.04.29

빌스택스의 시선은 최근 몇 년간 흔들림 없이 또렷했다. 문제작 < Detox >는 전형적인 트랩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대마초 합법화라는 민감한 주제를 경직된 한국 사회와 정면으로 교차시키는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었다. 그럼에도 메시지에 잡아먹히지 않고 장르 자체의 매력을 극대화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활동명 변경 이래 그의 랩은 모든 비트에 자연스레 스며들었으며, 애써 유행을 좇기보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영역을 꾸준히 확장해 왔다. 은퇴 앨범 < Live Fast Die Skrt >도 마찬가지다. < ‘Buffet’ Mixtape >부터 레이블 컴필레이션 < Skreet Knowledge >까지의 기조를 이어 다양한 메인스트림 힙합 사운드 위에 퇴장을 앞둔 이의 소회를 풀어냈다.


초입부터 직선적인 트랙을 내걸어 공세를 펼친다. 캐시미어 캣의 ‘Night night’을 샘플링한 부드러운 레이지 ‘반짝반짝 freestyle’과 명품 브랜드 나열만으로 걸출한 훅을 만든 ‘Bricks n’ mortar shop’ 모두 각기 다른 스타일을 자신만의 문법으로 해석한 결과물이다. 한편 권기백이 가세한 ‘Bless K-trap’은 멤피스 랩 프로덕션에 생생한 묘사를 더해 순식간에 범죄 현장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다만 대마초 품종 설명을 통해 간결히 구조를 나누었던 < Detox >와 달리 본작의 스킷은 오히려 호흡을 끊는 편이다. 특히  ‘오줌쌌냐? (Skit)’은 1분 동안 변조된 목소리만 계속되어 흐름이 늘어진다. 뒤쪽으로 배치한 ‘엄지 검지’와 ‘2,4,6,8,10’에서 다소 평이한 표현이 대부분을 차지해 초점이 흩어진 것과 더불어 두드러지는 흠결이다.


구성상 약점과는 별개로 전부 완성도 높은 소절을 보탠 피처링진의 기여가 뚜렷하다. 객원 래퍼 간 편차가 있었던 전작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확연해진다. 멈블 랩을 완연히 체화한 우슬라임과 세련된 멜로디 감각을 발휘한 트레이드 엘도 제 역할을 다했으나, 참여진 가운데 가장 강렬히 존재감을 각인한 이는 단연 릴러말즈다. 무엇보다 플로우를 연달아 바꾸며 발음을 유려하게 흘리는 동시에 많은 음절을 집어넣은 ‘차무식’ 속 촘촘한 퍼포먼스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또한 ‘MDMA’에서는 분위기에 맞추어 본래 주특기인 랩 싱잉을 구사하는 등 빌스택스의 수차례 샤라웃이 납득될 정도의 기량을 과시했다.


중반부를 기점으로 전개되는 감성적인 곡이 작품의 폭을 넓힌다. 래핑 면에서도 쓸쓸한 무드의 현악기 루프 혹은 드레인 갱 풍의 클라우드 랩 비트에 힘을 뺀 채 녹아들어 이질감이 없다. 와중 사랑에 빠졌을 때의 설렘을 약물 때문이라 둘러대거나(‘MDMA’) 연애 관계를 밀어내면서도 욕망과 애착은 숨기지 않는(‘너는 너무 이뻐’) 것처럼 정형화된 러브 송의 클리셰를 비트는 서술이 눈길을 끈다. 이 같은 화법은 예술 바깥의 삶에서도 자유로운 태도를 지향해 왔으며 근래 이혼을 겪기도 한 그의 개인사와 맞물려 극도로 애상적인 울림을 남긴다. 


훌륭한 가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장모님과 대마 나눠 피기가 내 버킷리스트’라 외쳤던 그는 합법화 운동 과정에서 현실의 장벽에 부딪쳐야만 했다. 이러한 시련은 ‘내 친구들 빵 먹다가 갔잖아 빵’이나 ‘조심해 이번에 들어가면은 최소 오십대’ 같은 라인으로 형상화된다. 허나 ‘내 메세지는 매번 틀림없고 분명해’란 말에서 드러나듯 그는 여전히 굳센 소신을 견지한다. 진한 록 색채의 엔딩 ‘아침 점심 저녁’에서 ‘너가 없음 난 폐인, 너가 있음 난 죄인’이라 아이러니한 상황을 그려낸 후 ‘우리 걍 이렇게 지내면 안 될까’라고 절규할 때 터져 나오는 절실함이 그래서 더욱 선연하게 와닿는다.


누군가는 그를 지지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를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 Live Fast Die Skrt >가 지닌 의미는 단순 찬반의 구도로 환원되지 않는다. 빌스택스는 예술가로서 음악을 매개로 신념을 끝까지 관철하며 선명한 마침표를 찍었다. 곳곳의 타입 비트와 프리스타일 작법에서도 은퇴작의 무게에 짓눌리는 대신 자신을 있는 그대로 투사한다는 선택이 엿보인다.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는 순간 곧바로 도태되는 장르에서 줄곧 최전선을 유지하다 퇴장한다는 결정 역시 그답다. 실로 “박수칠 때 떠난다”는 격언의 완벽한 예시이자 오랜 커리어의 후련한 매듭이다. 그리고 지금, 한 사내가 한국 힙합 역사상 제일 멋진 결승선 위로 자욱한 연기를 헤치고 서 있다.


 ‘난 갈 때 가더라도 잃지 않을 거야 품위’

- ‘나쁜영화’ 中 -


-수록곡-

1. 반짝반짝 freestyle

2. Bless K-trap (Feat. 권기백) [추천]

3. Bricks n’ mortar shop (SKRR GANG)

4. 아빠는… (Skit)

5. 빵 (Feat. Boy Wonder) 

6. 차무식 (Feat. Leellamarz) [추천]

7. 나쁜영화 (Feat. Wuuslime) [추천]

8. MDMA (Feat. Leellamarz) [추천]

9. 오줌쌌냐? (Skit)

10. 너는 너무 이뻐 (Feat. Coogie) [추천]

11. 엄지 검지 (Feat. The Quiett)

12. 2,4,6,8,10

13. 이 동네에서 젤쎈약 (Feat. TRADE L)

14. 아침 점심 저녁 (Feat. Rakon) [추천]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