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선율에 촘촘한 은유가 수놓인다. 2023년 싱글 ‘구해줘’ 이후 피처링으로만 모습을 비추던 그의 신작은 감정과 세상을 잇는 매개로 가득하다. 묵직한 < Fanaconda >, 자전적 서사를 음산하게 소화했던 < Fanatiic >과 달리 자기 긍정을 그린 목소리와 풍성함이 특징인 프레디 카소의 프로듀싱이 만나 레트로한 무대 위 한 편의 재즈 공연이 펼쳐진다. 넓은 공간 속 모음의 흐름대로 쏟아내는 독백이 이끈 곳에 화나의 낯선 위안이 있다.
특유의 수려한 비판에 깨달음이 녹아들어 견고한 균형을 이룬다. 서른 중반의 치열함을 지나 인간사를 보다 깊이 헤아릴 수 있게 된 오늘날, 그의 섬세한 눈길이 머문 곳은 저항과 수용의 공존이다. 하강하는 ‘층계참’의 침울과 즉흥적인 사운드가 주도하는 ‘Fate accepted’의 탈피가 첨예하게 교차하며 그간의 성숙을 함축한다. 고저를 오가는 메시지에도 라임 몬스터다운 감각을 더하니 정서 간의 이질감은 거의 없다.
염세적인 태도가 불만이 아닌 풍자로 다가오는 건 전달 방식에 대한 고민이 짙게 배어 있는 작법 덕이다. 라임을 위해 의미를 희생하기보다 몰입을 지향하며 운율을 배치한 흔적이 만연하고, 사회를 겨누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를 도마에 올려놓는 행위 또한 표출보다 성찰에 방점이 있음을 뒷받침한다. 리듬감이 주는 카타르시스에 설득을 맡기지 않겠다는 의지는 절망적 현실을 유머에 굴절한 ‘그래도2’의 자기 확신에서 정점에 달한다. 감정적 배설에 기댈 바엔 자유로운 괴짜로 남겠다는 선언 역시 유쾌하다.
정교한 설계는 음절 단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Amor fati'와 마지막 '인디언식 기우제'를 아우르며 각기 다른 운명론으로 완성한 수미상관이 앨범을 관통한다. 결국 내러티브를 견인하는 주요 축은 구조에 있다는 증거. 불교의 무아와 니체의 운명애를 융합한 사유 체계가 순환하는 가운데 삶을 미시적으로 바라보는 ‘Jigsaw’는 그 평면적 반복을 깨뜨려 작품의 입체성을 살린다.
치밀하면서도 자유롭다. 헐거울 만큼 덜어낸 비트 위에 올린 고백임에도 안일하지 않고, 안팎으로 던지는 날카로운 시선은 결코 차갑지 않다. 온갖 트렌드와 이슈가 빠르게 소비되는 힙합 신이라지만 초연함을 체득한 시인에게 경쟁과 흥행은 이미 무의미하다. 세상과 생각이 바뀌어도 불변의 저력으로 유효함을 증명한 < 화명: Fate Accepted >는 화나라는 창작자의 고집 그 자체다.
-수록곡-
1. Dharma
2. Amor fati [추천]
3. 층계참
4. Fate accepted [추천]
5. Jigsaw
6. 그래도2
7. 심해어
8. 인디언식 기우제 (Feat. hu57la & 격)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