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끝내야 하는, 그리고 끝나버리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찬란하게만 보였던 유년기나 오랫동안 심장을 옭아맸던 미움의 감정. 현 포크 신의 주역이자 3인조 그룹 보이지니어스의 멤버 피비 브리저스의 새 앨범 < Lost Weekend >도 그렇게 시작한다. 왜곡된 목소리로 운을 떼는 'The outside'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에 침착하게 서 있던 주인공은, 관객이 가득한 공연장 한가운데로 무대를 옮겨 그토록 증오를 표출했던 대상을 실은 그리워하고 있음을 실토하고 있다. 그토록 고대했지만 어째 개운하지 않은 작별, 인간의 본성은 이토록 양면적이다.
피비 브리저스 자체도 실은 대치되는 두 면모를 잘 조율했던 뮤지션이다. 언뜻 처연하게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앨범 커버와 라이브 퍼포먼스에서는 할로윈에나 어울릴 법한 해골 옷을 입은 채 등장했고, 아픈 개인사를 음악 안에서 늘어놓다가도 온라인에서는 팬들과 독특한 유머 감각으로 소통하며 인기를 끌었다. 뛰어난 결과물 못지않게 소탈함을 요구받는 시대에 그는 스타가 될 자질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었다.
가십 애호가들은 전 연인이었던 배우 폴 메스칼, 그리고 그의 현 동반자 그레이시 에이브럼스와의 관계를 앨범에 투영하려고도 한다. '그 여자는 내 흉내를 낸다'고 말하는 'The governor's waltz'와 파혼을 언급하는 'Lost weekend'의 가사처럼 뮤지션 또한 약간의 여지를 남기지만 문학적 허구의 세계에서 진실을 굳이 구분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음악을 곡해하는 일이다. 'Lost boys'와 'Bobby', 'Haunted' 등에 깃든 팝의 선율이 주장한다. 문장 단위 독해와 주석을 지워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원망과 분노를 위트 있게 노래한 'Kyoto', 장대한 빌드업 끝에 성대한 마무리를 선사하는 'I know the end' 급의 트랙 단위 파괴력이 전작에 비해 약하다는 사실은 인정해야겠다. 음반은 이를 상쇄하고자 대신 소리 세공에 힘을 들였다. SF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묘사하는 듯한 타이틀 트랙의 아웃트로, 여러 곡에 신비로움을 덧칠하는 현악기 사용은 마치 신체가 부유하다 아득히 먼 우주 공간에 집어삼켜지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난 앨범 < Punisher >가 지상에 발을 붙인 채 어두운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면 신보는 반대로 지구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고 무한한 미지로 향하는 움직임을 닮았다.
혈연으로 맺어졌지만 악연에 가까웠던 아버지의 죽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유명세 이전의 생활, 그리고 연인과의 이별. 음반은 지나간 일을 되짚지만 중독적인 정서적 자해에 함몰되는 것은 기피한다. '한때의 모습은 결코 본질이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Never going back!'이 알리듯 피비 브리저스는 각별한 새 사랑 'Bobby'를 끌어안은 채 과거를 향해 손을 흔들며 하루하루 새롭게 나아갈 뿐이다. 때로는 고요하게, 때로는 거센 진동과 함께 팽창하는 그의 세계에서 끝이란 아직 관측되지 않는 개념이다.
-수록곡-
1. The outside
2. Lost boys [추천]
3. Kill me
4. The governor's waltz
5. Bobby [추천]
6. Lost weekend [추천]
7. Haunted [추천]
8. Panorama
9. Still standing
10. Liberty tree [추천]
11. Never going back!
12. Other plans
13. Lost parade
14. I can't wait [추천]
15. As above [추천]
16. Lost weekend (Repri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