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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꽃
정재일
2003

by 김獨

2004.01.01

6인조 펑크(funk) 밴드 긱스(Gigs)에서 그루브감 넘치는 경쾌한 슬랩 베이스 연주를 들려주던 바로 그 주인공, 정재일이 최근 거의 혼자서 작업에 착수한 솔로 데뷔작 <눈물꽃>을 발표해 가요계의 이목을 끌고있다. 정재일은 국내의 실력파 뮤지션 정원영과 한상원이 교수로 재직중인 서울재즈아카데미 제 1기 출신으로 불과 18살(1982년 생)의 나이에 긱스와 인연을 맺었고, 밴드의 데뷔작에 실렸던 머리곡 '노올자'와 히트곡 '랄랄라'를 작곡하며 자신의 브랜드를 마케팅하기 시작했다.

당시 긱스의 1집에서 정재일은 베이스뿐 아니라 기타, 피아노, 퍼커션, 턴테이블, 시퀀싱, 샘플링, 그리고 보컬과 래핑까지 발군의 실력으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게다가 재즈와 민속악기까지 다룬다고 하니 그는 그 나이 또래에 비하면 보기 드문 뮤지션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동료 음악인들과 일부 팬들은 지금껏 그를 두고 '천재 뮤지션'이니, '음악 신동'이니 하는 찬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악기 연주만큼은 일반인들이 가히 범접하기 힘든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던 것이다.

그간 정재일의 활동 경력은 의외로 알차다. 긱스 말고도 일찌감치 한영애, 이문세 등 베테랑 가수들의 음반에 세션맨으로 참여했고, <나쁜 영화>, <강원도의 힘>, <아름다운 시절>의 영화음악을 비롯해 근래 <원더풀 데이즈>의 음악을 담당하며 영화음악가로도 분주히 활동했다. 이처럼 그만의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믿음이 강했기에 결국 싱어 송라이터 정재일의 이름을 내건 솔로 작품까지 자연스레 이어졌다.

일단 관심을 끌만한 점은 정재일하면 떠올려지던 그의 신들린 듯한 펑키한 베이스 연주를 만나볼 수 없다는 것이다. 긱스 때에는 펑키 그루브와 소울, 재즈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더니 이번 솔로 앨범은 매우 사색적이고 정적인 음악으로의 변화를 꽤했다. 곡의 문법은 월드뮤직의 색채가 짙고, 클래시컬한 아트록의 뉘앙스까지 풍긴다. 신세대 뮤지션의 외도?! 이전과 비교할 때 완벽한 변신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또 다른 정재일의 숨겨진 음악세계 표출이라고 해석해도 괜찮을 듯 싶다.

그것은 타이틀곡인 '눈물꽃'만 봐도 대번에 증명된다. 그리고 첫 곡으로 자리한 '첫 걸음'부터 음반을 관통하는 멜로디 라인은 철저히 공식화되어버린 가요코드에서 벗어난다. 빅마마의 이지영과 신연아가 게스트 보컬로 일부 수록곡에 참여했고, 월드 비트를 수용한 '그럴지도 모른다고...', 프로그레시브의 느낌을 살린 '또 다른 오늘', 그리고 뒤이어지는 '별난 녀석', '천사의 손길' 등을 들어보면 마치 '클래식 뮤지션되기'에 임한(?) 정재일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체코 교향악단의 오케스트라 편곡이 빚어내는 웅장하고 신비감이 감도는 소리샘은 음반에 강한 악센트를 제공한다.

이제 정재일은 차세대 실력파 뮤지션으로 성장한 듯 보인다. 앨범이 발표되자마자 가요계에 이름난 선배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요즘 쉽게 접속하기 힘든 사운드가 반갑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은 단조로운 패턴과 멜로디 훅이 약하다는 게 한가지 흠이지만 20대 초반의 싱싱한 나이에 비한다면 별 문제될 것이 없다. 오히려 그의 잠재력은 언제든지 유효해 보인다.

-수록곡-
1. 첫걸음
2. 눈물꽃
3. 하얀 꽃 꿈
4. 남쪽으로
5. 그럴지도 모른다고...
6. 또 다른 오늘
7. 별난 녀석
8. 내일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9. 천사의 손길
10. 그 곳
11. 새벽달
12. 눈물꽃 (Radio Version)
김獨(quincyjon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