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자주찾기'하는 미국의 한 음악 사이트의 채팅방에서 열 일곱 살의 미국 청소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오지 오스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그 소년이 하는 말을 듣고 너무 놀랐다. 오지를 '아메리칸(American)'이라고 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고 여겨졌다.
사실 2000년부터 오지 오스본의 활동 거점은 영국이 아닌 미국이었다. 오지 오스본은 2002년 MTV를 통해 미국 전역으로 방영된 리얼 다큐멘터리 < 오스본 가족 >을 통해 백인 래퍼 에미넴이나 아이돌 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못지 않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또한 아내 샤론 오스본과 함께 기획한 대규모 록 페스티발인 < 오즈 페스트 >도 미국 록 밴드 위주로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인기와 부는 대서양 건너 미국에 있어도, 오지 오스본의 음악만은 조국 영국에 머물고 있다. 블랙 사바스 시절부터 그가 구현해온 헤비메탈은 미국의 그것과는 달랐다. 진흙탕 속에서 절망하는 브리티시 청춘의 몸부림이었다. 계속해서 전진하고 밀어붙이는 미국의 헤비메탈과 달리 질퍽하고, 끈적거리고, 흐느적거렸다.
지난 해 11월 내놓은 리메이크 앨범 < Under Cover >을 통해서도 오지 오스본은 자신의 뜨거운 심장이 영국 안에서 숨쉬고 있음을 외치고 있다. 이 작품은 25년 간의 솔로 활동을 정리하는 박스 세트 앨범 < Prince Of Darkness > 중에서 리메이크 곡들만을 모아놓은 4번째 디스크에 세 곡을 추가해서 따로 발표한 음반. 오지가 항상 마음 속에서 품고 있던 애청곡들을 팬들에게 커밍아웃한 것이다.
수록곡들은 대부분 오지 오스본이 음악 인생을 걷기로 결심했던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에 영국에서 발표된 노래들이다. 그에게 음악적인 영향을 주었고, 또한 동시대를 풍미했던 선, 후배, 동료 아티스트들에 대한 존경과 무한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특히 비틀스에 대한 그의 사랑은 매우 각별하다. 'In my life'를 비롯해서 존 레논의 노래 'Woman'과 'Working class hero'를 편하게 재해석했다.
오지 오스본의 비틀스에 대한 감정은 사랑을 뛰어넘어 숭배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2004년 6월 영국 일간지 옵서버가 음악 관련자들에게 가장 영국적인 음반에 관련된 설문조사를 했는데, 오지 오스본은 열 장의 앨범들 중 무려 다섯 장을 비틀스 관련 앨범으로 수놓았다. (참고로 1위는 < Revolver >였고, 2위는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였으며, 3위는 폴 매카트니의 < Band On The Run >이었다.)
비틀스의 노래들 외에도, 무디 블루스의 명곡 'Go now', 킹 크림슨의 '21st century schizoid man', 애니멀스의 'Good times', 그리고 크림의 'Sunshine of your love' 등이 오지 오스본의 독특한 스타일로 재해석되었다. 그리고 미국 노래로는 조 월시의 'Rocky mountain way', 마운틴의 'Mississippi queen', 버팔로 스프링필드의 'For what It's worth' 등 세 곡만이 오지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다.
이 앨범을 듣고 전성기 시절의 '악마' 오지 오스본을 떠올리는 것은 무리다. 대신 리얼 다큐멘터리 < 오스본 가족 >을 통해서 보여졌던 자상하고 눈물많고 사려깊은 '아버지' 오지 오스본을 받아들으면 된다. 요즘 그의 진짜 모습이기 때문이다. 'In my life'를 들으면서 더욱 확신했다. 하긴 오지 오스본의 환갑이 2년 앞으로 다가오지 않았던가.
-수록곡-
01. Rocky Mountain Way
02. In My Life
03. Mississippi Queen
04. Go Now
05. Woman
06. St Century Schizoid Man
07. All The Young Dudes
08. For What It'S Worth
09. Good Times
10. Sunshine Of Your Love
11. Fire
12. Working Class Hero
13. Sympathy For The Devil
14. Bonus Track : Changes (Duet With Kelly Osbour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