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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ing Papers
위즈 칼리파(Wiz Khalifa)
2011

by 홍혁의

2011.04.01

어제오늘일은 아니지만 남성 솔로 래퍼의 기세가 대단하다. 비오비(B.o.B), 와카 플로카 플레임(Waka Flocka Flame), 드레이크(Drake) 등이 2010년에 수확한 발견이라면, 2011년의 포문은 위즈 칼리파가 열었다. 언더그라운드 신에서 믹스 테이프를 위주로 칼을 갈아오다 ‘Black and yellow’ 싱글 한 방으로 빌보드를 점령했다.


‘Black and yellow’가 지닌 흡인력의 비결은 주문처럼 빠르게 중얼대는 후렴구에 있었다. 단번에 대중의 귀를 휘어잡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뇌리에 남길 수 있는 결정타를 완성하는 능력은 분명 쉽지만은 않다. 허나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랩의 스킬이나 메시지의 측면이 부각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즉 이번 앨범은 아티스트의 내공을 해부하고, 더 나아가 성장 가능성까지 점칠 수 있음에 의미가 있다.


앞선 싱글에서도 짐작 가능하지만 멜로디컬한 랩이 귀에 먼저 들어온다. 근래 들어 대부분의 힙합 아티스트들이 코러스를 외부 보컬들에게 위탁하는 공정이 통념으로 받아들이지만, 위즈 칼리파는 피쳐링 싱어를 과감하게 제외했다. 대신 무난한 리듬으로 포장한 래핑으로 빈자리를 갈음한다. ‘Top floor’에서는 중동 음악에서 따온 듯 기이한 음률에 맞춰 음성을 조율하는가 하면, 프로듀서 팀인 스타게이트(Stargate)가 세 곡을 지원사격하며 대중성을 확보했다.


다만 끌림이 있는 리듬에 비하여, 그 속에 내재한 메시지는 알차지 못하다. 가사의 주요 키워드는 ‘성공’ 한 단어로 귀결된다. 성공을 이뤄온 과정, 성공으로 얻게 된 명암이라는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어린 나이에 랩 게임에 투신하여 정상에 오른 과정이 얼마나 고투였는지는 짐작가능하나, 청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는 아니다. ‘Wake up’에서 부와 명예가 자신(인간)을 규정하게 되는 부조리에 다소 진지한 접근이 발견되긴 하지만, 이 또한 일시적으로 그치고 만다.


한 편의 휴먼스토리를 기획할 수 있었기에 아쉬움이 크다. 다른 힙합 아티스트와 비교하여 뚜렷한 아이덴티티가 부재한 상황이라 순간적인 부각에 그칠 확률도 그만큼 높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가벼운 팝 사운드에 기댄 상품들은 핫 샷 데뷔를 허락해 주었지만, 대박 뒤에 온건한 이미지가 고착되었다는 점에서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보인다.


-수록곡-

1. When I'm gone

2. On my level (feat. Too Short)

3. Black & yellow [추천]

4. Roll up

5. Hopes & dreams

6. Wake up

7. The race

8. Star of the show (feat. Chevy Woods)

9. No sleep

10. Get your shit

11. Top floor [추천]

12. Fly solo

13. Rooftops (feat. Curren$y)

14. Cameras

홍혁의(hyukeui1@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