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라는 간판만 남기고 모두 다 갈아엎었다. 국내에 어느 싱어송라이터보다 더 감성적이었던 여성적인 코러스 위주의 작곡법이 희미해지고, 1980년대 영국 뉴 웨이브 씬에서 착안한 듯한 코러스 라인이 들어섰다. 멜로디의 비중을 높이며 곡의 전반에 활기를 부여하고 결정적인 대목에서 선동적인 랩으로 기치를 곧게 세운다. 이제는 단순히 힙합 그룹으로 이들을 정의하는데 무리가 생길 정도다.
타블로의 솔로 앨범 < 열꽃 >과 이어서 선공개한 싱글 ‘춥다’로 이어지는 우울의 정서도 단박에 뒤바꾸며 ‘긍정의 힘’을 역설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드레날린을 발산하도록 유도하는 요소는 YG표 사운드다. 청각화된 ‘레드불’이라고 할 만한 변조된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폭발하며, 지디 앤 탑(GD & Top)의 ‘Oh yeah’가 내세운 이미지와 닮아 있는 박봄의 출연이 에픽 하이의 본거지는 이제 YG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YG 사단의 디피(Dee.P)와 공동 작업을 한 전략도 ‘강남스타일’의 작곡가가 싸이와 예전부터 콤비 플레이를 이어왔던 유건형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더욱 명확하게 대비된다.
변신은 한 셈이지만 혹자에게는 변심으로 읽힐 여지가 충분하다는 말이다. ‘Up’은 ‘장르적 전향’이라는 케케묵은 논쟁에 엮일 떡밥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YG의 개입에 대한 반감 여론을 건드릴 폭탄을 스스로 내놓은 문제적 싱글이라는 점이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미쓰라 진과 디제이 투컷의 역할도 필연적으로 재정비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기쁨이든 당혹이든 이번 변신을 통해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노선의 변화에 내재된 아티스트의 주체성에 대하여 이들에게 충분한 대답을 듣지 못 한 구석은 개운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