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이상기후
쏜애플(Thornapple)
2014

by 김반야

2014.06.01

“구해주세요. 여긴 날씨가 나빠요. 물이 자꾸 불어나요. 누구보다 나를 먼저 건져 내줘요”
- '백치' 중에서

이 가사를 듣고 앨범 이미지를 보면서 지난 4월 안타까웠던 침몰이 떠올랐다. (물론 이는 뮤지션의 의도가 아니라 개인적인 소회다.) 이들이 초점을 맞춘 건 바로 생존, 그러니까 말하자면 'SOS 살려달라'는 하나의 외침이다. '생존'이라고 하니 극단적인 가사 같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과 크게 벗어나지 않다. '생계'와 '안전'이 우리 턱밑까지 치고 올라와 '목숨'을 위협하는 시대, 어쩌면 가장 절박하고 근원적인 화두가 아닌가

최근 인디씬에서 가장 주목받는 밴드하면 단연 '쏜애플'을 꼽을 수 있다. 1집을 내고 입대해 활동이나 홍보가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데뷔 앨범은 입소문을 타고 모두 품절이 됐다. (그래서 그들의 애칭이 품절남이다.) 제목도 범상치 않은 < 1집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 >는 꽉 짜여진 구성력과 유니크한 보컬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화려한 데뷔(?!)와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던 밴드가 4년 만에 2집을 발매했다.

남극과 적도를 넘나드는 < 2집 이상기후 >는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들의 매력은 여전히 도발적이다. 그로테스크한 가사와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보컬, 귀에 잘 들어오는 집중도 있는 멜로디는 단박에 청각을 압도한다. 노랫말이 가진 기괴한 심상은 음악적으로도 단단하게 구현된다. 각도에 따라 다른 색을 띄는 상징적인 가사가 분비되면 멜로디와 보컬이 끈적거리며 착 달라붙는 것. 다양한 장르와 얽혀있으면서도 명료하게 정리된 결과물은 질리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무엇보다 밴드 각각의 성장이 악기 간의 이음새를 부드럽고 조화롭게 만든다.

앨범은 거의 모노톤이지만 각기 다른 질감과 느낌을 낸다. '남극'은 1집 '이유'에 이어 동양적인 멜로디가 아로새겨져 있고, '살아있는 너의 밤'은 끝도 없이 달음박질하며 이야기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낯선 열대'는 가사 그대로 '어질어질 아른아른' 신비롭게 이어지고 '베란다'는 베이스가 위협적으로 고막을 두드린다. 스토리로 엮인 앨범은 '물가의 라이온'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남극'에서 시작해 '사막'을 헤매고 '열대'를 건넜던 그들은 휘청휘청할지라도 마칭밴드의 행진처럼 끝까지 전진한다. “해를 가리는, 내 두 눈을 가리는, 신님의 목덜미를 물었다”라는 당찬 가사가 통쾌하다.

치명적인 독사과처럼 유혹은 계속된다. 한 입 베어 물면 어지럽고 들뜨는 이상 증세에 시달리게 된다. 답을 찾지 못해 자꾸만 듣고 싶고 자꾸만 생각나게 만드는 물귀신같은 중독성도 있다. 그러니까 한동안 작정하고 앓을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베어 물지 않는 편이 좋겠다.

-수록곡-
1. 남극 [추천]
2. 시퍼런 봄
3. 피난 [추천]
4. 백치 [추천]
5. 살아있는 너의 밤
6. 낯선열대 [추천]
7. 암실
8. 베란다 [추천]
9. 아지랑이
10. 물가의 라이온 [추천]

김반야(10_b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