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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Pier Pressure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
2015

by 이수호

2015.04.01

트렌드를 챙겨온 모습이 가장 먼저 보인다. 펀의 네이트 루스와 캐피탈 시티스의 세부 시모니안, 인디 팝 듀오 쉬 앤 힘 등 현 세대의 팝 스타를 불러들여 이들과의 접점을 마련하고자 했다. 나쁘지 않은 시도다. 트랙 리스트 곳곳에 보이는 조력자들의 라인업은 물론이고 최근의 신스 팝 튠을 들고 캐치한 선율을 던져대는 'Runaway dancer' 또한 이러한 기조를 대표할 주요 결과물에 해당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모습은 금세 자취를 감춘다. 일정 지점을 지나면서부터는 비치 보이스 식 터치가 등장해 작품을 정의한다. 특유의 밝은 컬러와 바로크 팝의 풍성한 부피감, 여러 목소리를 겹친 코러스가 이를 대변한다.

< No Pier Pressure >는 괜찮은 팝 음반이다. 매력적인 선율과 사운드가 트랙 리스트 곳곳에 배있다. 오랜 역사가 일일이 일러주지 않아도 브라이언 윌슨이 훌륭한 멜로디 메이커라는 사실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문제는 이내 윤곽을 드러내는 50여 년 전의 작법이 발목을 잡는다는 데에 있다. 'Runaway dancer' 이후의 트랙서부터는 앞서 언급한 비치 보이스의 사운드가 여지없이 전면에 나선다. 'Whatever happened'와 R&B 넘버 'Our special love', 'Tell me away' 등의 많은 곡들이 오랜 과거의 연장선 위에 있으며 'The right time'과 'Sail away'는 'Sloop John B'의 멜로디를 사이좋게 나눠 가져갔다. 옛 동료 알 자딘과 데이비드 마크의 목소리도 자주 나타난다.

애석하게도 자기 자신을 파괴해버릴 정도로 창작에 매진했던 브라이언 윌슨은 약 30년에 달하는 독자 이력에서는 그리 큰 인상을 남기지 못 해왔다. < No Pier Pressure >의 한계와 솔로 커리어에서의 한계는 같은 지점을 공유한다. 아티스트의 재능과 욕망이 적어도 범작 이상의 위치에 결과물들을 올려놓는다 해도 위대했던 밴드 시절의 이미지로 구축한 경계가 거대한 벽이 돼 빛을 가린다. 비치 보이스에 다시금 기대 결국 솔로로서의 의미를 적잖이 잃게 했던 1990년대까지의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음반 역시 과거와 짙게 중첩돼 새로움의 멋을 감소시킨다.

근래에 괜찮은 작품을 내놓고 있었던 터라 아쉬움은 더욱 짙어진다. 디즈니 영화의 명곡들을 매만진 < In The Key Of Disney >나 조지 거쉰의 클래식들을 재해석한 멀끔한 팝 컴필레이션 < Reimagines Gershwin > 등의 앨범들은 고정된 브라이언 윌슨의 방식으로부터 꽤나 다른 지점으로 나아갔던 결과물이었다. 게다가 < No Pier Pressure >는 2004년의 < Brian Wilson Presents Smiles >서부터 시작된 리메이크의 연속을 깨고 나온 (순수한 의미의) 첫 창작물이다. 디스코그래피 상에서의 흐름까지 결합하면 이번 앨범에는 이래저래 결점이 많이 붙는다.

물론 반가움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송라이팅이나 사운드 메이킹에 있어 아티스트의 감각에는 여전히 총기가 있다. 다만 그 총기의 배경에 현재와 과거 둘 중 어느 것이 많이 들어서있는지를 생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오늘의 아카이브에 어제가 더욱 선명하게 새겨지는 요즘이기에 역설적으로 거장이라는 사람들은 어쩌면 더욱 힘들지도 모르겠다. 혹여 < No Pier Pressure >가 브라이언 윌슨이 아닌 어느 신인 아티스트의 작품이었다면 앨범에 더욱 좋은 평가가 따랐을 테다.

-수록곡-
1. This beautiful day
2. Runaway dancer (feat. Sebu Simonian) [추천]
3. What ever happened (feat. Al Jardine & David Marks)
4. One the island (feat. She & Him)
5. Half moon bay (feat. Mark Isham)
6. Our special love (feat. Peter Hollens) [추천]
7. The right time (feat. Al Jardine & David Marks)
8. Guess you had to be there (feat. Kacey Musgraves)
9. Tell me why (feat. Al Jardine)
10. Sail away (feat. Blondie Chaplin & Al Jardine) [추천]
11. One kind of love
12. Saturday night (feat. Nate Ruess) [추천]
13. The last song
이수호(howard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