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담아낸 것은 결국 전작의 성취감이었다. 하림의 하모니카와 정은지의 따뜻한 목소리를 녹여낸 ‘하늘바라기’는 아이돌 솔로 여가수가 도전한 포크 팝의 성공을 알린 곡이다. 또한, 작사 및 작곡 참여로 싱어송라이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에 더 의미가 있었다. 이번 ‘너란 봄’ 역시 옛 감수성을 가득 담은 계절 송, 정은지라는 브랜드, 하림의 악기 참여라는 조건은 동일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물론 인기를 끌 수는 있겠지만, 그만의 스토리가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허점이다. 성공 요인을 단순히 앞선 세 가지 것으로 보았던 건 아닐는지.
부족한 가사의 서사성과 자기 복제성은 ‘하늘바라기’의 여운마저 퇴색할 우려를 준다. ‘너란 봄’과 ‘너란 놈’이라는 라임의 나열은 감흥을 주지 못하고, 봄 캐럴의 쌍벽을 이뤘던 ‘벚꽃 엔딩’이나 ‘봄이 좋냐??’의 내용을 적절히 배합한 수준에 그친다. 뚜렷한 유사성을 갖고 봄을 겨냥한 노래는 별다른 감동 없이 지루하게만 다가온다. 게다가 타이틀 곡을 피아노 버전으로도 수록하는 등 전체 음반의 구성까지 똑같다는 점도 답습의 증거. 에이핑크의 틀에서 탈피해 본인의 색깔을 조금은 갖기 시작해도 좋을 시점임을 본다면, 아쉬운 판단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은지가 가진 역량은 여전히 유효하다. 어릴 적부터 라디오로 옛 음악의 감성을 접한 그에게는 20대답지 않은 특유의 성숙함이 배어 있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생각을 가사로 잘 녹여내 호소력을 지닌 노래로 그려낼 수 있다는 강점도 갖췄다. 허스키 보이스를 부드럽게 소화하는 능력 또한 장점이다. 고음역과 저음역을 오갈 때 듣는 이가 부담스럽지 않게 조절하는 유연성도 보유해 남성 가수들과도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 이번 솔로 앨범에서는 곽진언과 ‘처음 느껴본 이별’로 안정적인 하모니를 선사한다.
< 공간 >에서는 타이틀 곡이 아닌 다른 곡들에 정은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직접 작사한 ‘소녀의 소년’과 ‘서울의 달’ 두 곡이 그 주인공들이다. 추억이 된 첫사랑을 간직하는 ‘소녀의 소년’은 서정시 같은 감성과 문체로 그만의 싱그러움을 느끼게 하는 노래이다. 어디쯤 와있는지도 모르는 채 매일 똑같은 나날을 보내는 상황을 노래한 ‘서울의 달’에는 음반 내에서 본인만의 목소리, 감정이 가장 짙게 물들어있다. 이렇듯 섬세하고 다정하게 다듬어진 음색은 자신의 언어로 풀어낸 가사와 만나 조화를 이룬다.
국내 아이돌 음악은 솔로든 그룹이든 해외의 트렌드를 좇고 있다. 그렇기에 포크 팝이라는 행보가 독특하게 다가오는 건 사실이나 이대로는 단기적인 성과 밖에 볼 수 없다. 잘 맞는 장르를 택했다는 이유가 컸겠지만, 활동 중인 에이핑크 내 이미지와 절충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룹에서의 울타리는 언젠가 깨야만 하는 일이다. 잠재력을 가진 솔로로서 그것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곡에 참여하는 수준을 질적으로 높이는 게 중요하다. 많은 사람에게 노래로 위로를 주고 싶다는 마음처럼, 부디 정은지만의 공간을 잘 가꾸어 나가길 바란다.
-수록곡-
1. 너란 봄 (Feat. 하림)
2. 처음 느껴본 이별 (Feat. 곽진언)
3. 소녀의 소년 [추천]
4. 서울의 달 [추천]
5. 너란 봄 (Piano 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