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후의 담배 한 모금. 나른한 드림 팝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작명을 선보인 텍사스 출신 로맨티시스트 그렉 곤잘레스와 그의 밴드는 몽환적인 사랑의 단편선들을 달콤하고도 명료한 멜로디와 목소리로 써내려 간다. 세상에 둘만 남겨진 듯한 황홀, 쾌락이 채워주지 못하는 마음 한켠의 공허, 고독을 못 이겨 이름 모를 누군가를 끌어안은 어느 밤의 후회가 이리저리 뿌연 연기처럼 아지랑이 진다.
오프닝 트랙 ‘K’ 단 한 곡으로 이 모든 감성이 끌러내어진다. 최소한의 밴드 구성으로 리버브 먹인 기타 선율과 그리움을 한껏 머금은 보컬로 빚어낸 러브 발라드는 간결한 멜로디와 함께 각자의 추억 속 남아있을 연인들을 소환해내며 마음을 잠식한다. 어느 날 레스토랑에 나란히 앉았을 뿐인 그와의 평범한 하룻밤이 ‘K’에게 ‘크리스틴’이라는 새 이름을 붙이고, 제어할 수 없는 사랑으로 빠져들어가는 가사는 마음을 쏟을 누군가를 간절히 찾는 너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우리 시대의 이야기다.
반향 하는 기타 소리와 사뿐사뿐 내려앉는 드럼, 옅은 신디사이저 안개는 슈게이징 – 드림 팝의 조상들을 소환하기 충분하다. 밴드는 그들보다도 훨씬 침잠한다. 매지 스타(Mazzy Star) 나 갤럭시 500(Galaxy 500) 같은 1990년대 초 미국 얼터너티브의 영역에 가까운 이들의 사운드에는 급격히 터져 나오는 노이즈도, 다양한 변주나 속도감도 좀체 없다. 'Sweet', 'Truly' 같은 미디엄 템포가 일반적이고, ‘Opera house’같이 아주 텐션을 떨어트리는 정도가 끝이다.
많은 승부를 걸지 않아도 되는 것은 비장의 목소리와 멜로디에서 기인한다. 섬세하고도 호소력 짙은 그렉 곤잘레스의 보컬은 단조로운 전개도, 다소 유치하다 싶은 내용도 황홀한 러브 발라드로 만드는 마성의 목소리다. 애타는 구애의 마음을 묵시록에 비유한 'Apocalypse'부터 할리우드 고전 배우 존 웨인을 빌려 그녀의 남자 친구를 질투하는‘John wayne’같은 다소 유치한 곡까지도 호소력 있게 만든다. 달콤하고도 단순한 멜로디 또한 절-코러스-브리지-코러스 구성에 충실하면서‘들리는 슈게이징’을 만드는 데 한몫하면서 밴드의 부유하는 사랑은 묘한 중독을 부른다.
분위기로 승부하는 음악, 누군가의 일상 속 배경음으로 그칠 음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감각적이고, 자꾸만 끌리면서,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다 떠오른 아련한 기억에 긴 숨을 내쉬게 된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언어로 차마 다 담아낼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의 선을 건드리는 < Cigarettes After Sex >는 제목만큼이나 도발적이고 치명적인 데뷔작이다.
-수록곡-
1. K [추천]
2. Each time you fall in love
3. Sunsetz
4. Apocalypse [추천]
5. Flash
6. Sweet [추천]
7. Opera house
8. Truly [추천]
9. John wayne
10. Young & dum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