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쉽지 않다. 디스토션 질감을 안고 사운드 패닝 방향을 따라 좌우로 오가며 앨범을 열어젖히는 신디사이저에서부터 작품이 범상치 않음을 감지할 수 있다. 2000년대 초 개러지 리바이벌 신이 배출한 슈퍼스타는 자신의 앨범에서 종잡을 수 없는 실험을 수 차례 진행한다. ‘Connected by love’의 드론 풍 신디사이저 라인에 이어 괴작가의 기행이 깃든 장면들을 더 추적해보자. 왜곡된 톤을 입고서는 ‘Why walk a dog?’의 한가운데를 과격하게 비집고 지나가는 기타 솔로, 후경을 음산하게 만드는 ‘Over and over and over’의 보컬 코러스, 더블링된 목소리를 타고 ‘Ezmerelda steals the show’를 부유하는 나레이션, 조악하게 반짝이는 ‘Everything you’ve ever learned’의 1980년대 SF 무비 풍 오프닝이 그러한 예에 해당할 테다. 실험가의 기행이 그저 이런 소규모 장치들에만 투영되랴. 통상적인 보컬 파트를 배제하고서는 각종 장치들의 난입을 허용해놓은 ‘Corporation’과 템포를 조절하며 아트 록 식 기승전결을 취하는 ‘Respect commander’, 개별 악기 파트들의 등장과 퇴장을 간헐적으로 배치해 사운드의 집합을 거부하는 ‘Ice station zevra’ 등 러닝 타임 전체를 헤집어놓은 트랙들 또한 존재한다.
< Boarding House Reach >는 어렵다. 갖은 오브제들이 우선하는 탓에 멜로디는 존재를 상당수 잃고, 사운드 콜라주 또한 난해한 터치들이 연속해 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덕분에 앨범은 솔로 디스코그래피는 물론, 화이트 스트라입스와 데드 웨더, 래콘터스 등 각기 독특한 컬러를 지닌 프로젝트들을 포함한 활동 전반의 결과물들 가운데서도 가장 기이한 작품의 지위를 차지하게 됐다. 물론 잘 들리는 리프, 발라드 선율을 심심치 않게 풀어내던 화이트 스트라입스 시절과 솔로 활동 초기의 기질이 완전히 사라진 모습은 아니다. 고전주의와 최소주의를 혼합해 근사한 리프들을 뽑아내던 역량은 ‘Sixteen salties’와 ‘Lazaretto’를 잇는 멋진 개러지 록 기타 트랙 ‘Over and over and over’를 탄생하게 했으며, 퍼즈 톤 가득한 블루스 록을 ‘Respect commander’의 중후반부에 배치해 자신의 시그니처 로큰롤을 다시금 소환해냈다. 더불어 에스더 로즈의 배킹 보컬과 함께 차분하게 멜로디를 따라가는 컨트리 발라드 ‘What’s done is done’, 버스에 멜로디컬한 보컬 파트를 담은 블루스 ‘Connected by love’, 원곡의 템포를 늘이고 편곡을 단순화해 예쁜 곡조와 창백한 잭 화이트의 보컬이 돋보이게한 ‘Humoresque’와 같은 트랙은 이 아티스트가 여전히 선율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알려준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종잡을 수 없는 작품을 잭 화이트가 의도적으로 대중 친화의 노선을 회피한 결과로 보아야 하겠다. 솔로 커리어의 초기 또는 데드 웨더나 래콘터스에 임했을 때에는 뚜렷한 선율과 직관적인 기타 리프, 잔잔한 컨트리 블루스 사운드로 가득 채웠을 러닝 타임 위 공간에 이번 잭 화이트는 갖은 요소를 투하하고 또 뒤섞는다. 아티스트를 아메리카나의 대담한 계승자로 만드는 컨트리 풍 스트링, 가스펠 코러스, 재즈와 랙타임 풍 피아노, 아프리칸 봉고, 펑크 오르간에서부터 전개상에 독특함을 더하는 브레이크비트와 드럼 머신 루핑은 물론, 음악을 더 없이 괴이하게 만드는 노이즈와 드론, 철 지난 SF 음향 효과, 음산한 팔세토 코러스에 이르는 각양의 성분들이 잭 화이트가 계산해 놓은 템포와 타이밍에 맞춰 이합집산을 반복한다. 이 과정 속에서 부드러운 멜로디와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리프가 러닝 타임 위에 자리할 순간은 많지 않다. 이들이 비집고 들어갈만한 ‘Corporation’, ‘Hypermisophoniac’, ‘Ice station zebra’ 등에서의 중반부 여백마저도 아티스트는 미니멀한 리듬 섹션과 드론 사운드에게만 점거를 허락한다.
지극히 불친절한 작품이다. 돌발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충돌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사운드 장치들은 각양각색인 데다 개중에는 특이하다 못 해 괴이하게 다가오는 성분도 여럿 존재한다. 장르와 스타일, 정형과 비정형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잭 화이트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음악을 재단하고 직조한다. 앨범의 매력은 이 작위적인 불친절에 놓여있다. ‘Corporation’의 틈새로 끼어드는 봉고, 둔탁한 기타, 비명에 가까운 잭 화이트의 보컬과 ‘Respect commander’의 중반에서 벌어지는 변화하는 템포 및 사이키델리아, ‘Everything you’ve ever learnded’의 후반부에서 갑작스레 터져나오는 다이나믹한 드럼과 오르간, 퍼즈 기타는 개개의 곡에 긴장을 배태시키면서도 아트 록의 구성미를 함께 부여하며 ’Hypermisophoniac’의 홍키 통크 피아노 주변에서 쉴 새 없이 피치를 잡아당기며 웅웅거리는 음향은 청각과민증을 암시하는 곡의 제목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장치로, ‘Over and over and over’에서 곡의 타이틀을 음산하게 외치는 코러스는 시시포스가 받은 끝 없는 벌을 담은 곡의 내용에 다분히 어울리는 장치로 기능한다. 다소 난잡하게 흐르는 가운데서도 기승전결의 구조를 유지하는 ‘Ice station zebra’, 잭 화이트의 사유 기저에서 드론이 불안하게 진동하는 ‘Why walk a dog’, 가스펠 사운드에 오르간과 기타의 과격한 솔로잉을 얹어 완급에 변화를 준 ‘Connected by love’와 같은 트랙은 어떠한가.
작가 잭 화이트의 의도에 기준을 맞춰서 바라본다면 결과물들은 하나하나 근사하다. 캡틴 비프하트와 프랭크 자파, 닥터 존과 같은 아티스트들이 그랬던 것처럼 잭 화이트는 전통을 해체하고 조각들을 짜맞춘다. 너른 음악적 양분과 풍부한 상상력, 훌륭한 연출력, 대담한 시도가 모여 통념을 뒤트는 장면들이 수 차례 앨범을 장식한다. 아메리카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Connectedby love’와 ‘Why walk a dog’, 루츠 음악을 기반으로 건설한 잭 화이트 식 아트 록 ‘Ice station zebra’, ‘Hypermisophoniac’, 리드미컬한 록 넘버 ‘Over and over and over’, 나긋한 컨트리 ‘What’s done is done’ 등 주목해야 할 곡들이 트랙리스트에 포진돼있다. 물론 앨범에는 실험성으로 가득한 작품에 따르는 필연적인 한계 역시 놓여있다. 음반에서 잭 화이트가 행한 대담한 실험들은 아티스트 주변의 경계를 단숨에 허물어버림과 동시에 아티스트의 모든 저작을 아울러 가장 배려가 없는 괴작을 가져다주었다. 불시에 다가오는 이질감이 자연스럽게 수용되기까지는 분명 어느 정도의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한계가 이 앨범의 의미를 완벽히 가리지는 못 한다. 통념 속의 자신을 파괴하고 재창조한 이 앨범에는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아우라가 존재한다.
-수록곡-
1. Connected by love [추천]
2. Why walk a dog?
3. Corporation
4. Abulia and Akrasia
5. Hypermisophoniac [추천]
6. Ice station zebra [추천]
7. Over and over and over [추천]
8. Everything you’ve ever learned
9. Respect commander [추천]
10. Ezmerelda steals the show
11. Get in the mind shaft
12. What's done is done [추천]
13. Humores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