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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
핫펠트(예은)
2020

by 황인호

2020.06.01

‘잠겨 있던 시간들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먼저 눈길을 끈다. 원더걸스 예은의 정체성을 탈피하고 싱어송라이터 핫펠트로 데뷔한 2017년 이후, ‘새 신발’, ‘위로가 돼요’, ‘나란 책’ 등의 싱글로 조각조각 자아를 제시해온 시간을 다소 어둡게 명명한 것이다. 아티스트로서의 출사표, 아이돌 활동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욕망, 자신의 희망과 두려움을 담담하게 풀어내던 곡 내용을 생각하면 이 포장은 신선하다. 깊이 있고 입체적인 개인의 초상을 기대해봄직하고, 실제 앨범 설명과 관련 활동도 이를 암시하지만, 막상 그 내용이 부실해 당황스럽다.

‘잠겨 있던 시간들’ 속 노래들을 확장하는 대신 성급하게 깊이를 추가한 듯 구성이 미숙하다. ‘새 신발’에서 개코에게 존재감을 내주던 약한 정체성은 최자가 피처링한 ‘3분만’ 같은 곡에서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고, 솔직하고 능글맞게 감정을 표현하다가 난데없이 ‘위로가 돼요’를 덧붙이는 작위적인 가사 전개는 거울 속 수척한 자기 모습을 연민하다가 개연성 없이 행복을 묘사하는 트로피컬 하우스곡 ‘Sweet sensation’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Bluebird’의 고조되는 반주와 상반되는 팔세토 가창은 피로하고, ‘Life sucks’의 보컬 역시 가사의 처절한 감정을 전달하기엔 무게감이 부족하다. ‘Solitude’나 ‘Make love’의 날 선 목소리와 상반된다. 본인에게 초점을 맞춰 앨범을 전개하다가 갑자기 청춘에게 위로를 건네는 ‘Satellite’에서도 어색한 주제와 별개로 신스 반주와 자리싸움을 하는 목소리가 미약하다. 앨범 줄기를 따라가기 전에 일단 듣는 데서부터 가로막힌다.

엉성한 구성을 걷어내고 주제 의식을 조립해보면 마음의 짐을 덜고 온전한 인간으로 사랑받기 위한 여정이 보인다. 그러나 그 발걸음은 내내 공허하다. 외로움을 못 견뎌 자신을 향해 부르는 ‘Solitude’, 소울풀한 발라드로 애정 결핍을 노래하는 ‘Make love’, 떠나간 애인에게 애원하는 ‘3분만’은 모두 연애에 집착한다. ‘Life sucks’는 가족애, ‘Bluebird’는 자기애를 찾지만 앨범을 마무리하는 ‘How to love’는 이렇게 제시된 감정들을 제대로 마주 보지 않고 고린도서를 읊으며 상투적으로 덮어버린다. 사랑에 대한 고찰이라기엔 오직 받는, 혹은 받지 못한 사랑만을 노래하기에 평면적이고 수동적이다.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드는 행위는 주체적이나 작품의 내용이 그러지 못하다.

어쩌면 음반과 함께 발매한 동명의 책 < 1719 >를 읽어야만 음원의 허술함이 풀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내용을 함부로 발설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와 함께 시작하는 이 해설집 역시 단 1,719권만 제작됐다. 애초에 불특정 다수의 이해나 공감을 배제한 듯한 인상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더라도 아티스트는 우선 이를 정제해서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핫펠트는 본인과 그 주위의 시야만을 갖고 있다. 그의 이야기가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수록곡-
1. Life sucks
2. 피어싱 (Feat. THAMA)
3. 새 신발 (Feat. 개코) [추천]
4. 위로가 돼요
5. 나란 책 (Guitar Ver.)
6. Cigar
7. Make love
8. Satellite (Feat. ASH ISLAND)
9. Sweet sensation (Feat. SOLE)
10. Solitude [추천]
11. 3분만 (Feat. 최자)
12. Bluebird
13. Sky gray
14. How to love
황인호(inho.danny.hw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