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나비의 노래는 그림이고 사진이다. 이들의 노래를 들으면 추억의 회로가 작동하고 머릿속에서는 풍광이 그려지며 따스한 노랫말은 흘러간 세월을 되새기게 한다. 건반주자 유영현과 드러머 윤결의 사회적 논란으로 인한 탈퇴, 아이돌 음악과 랩 음악의 열풍, 네오 트로트의 부상(浮上) 속에서도 잔나비가 엔진을 멈추지 않은 원동력은 리더 최정훈의 존재다. 거의 모든 노래를 만들고 프로듀싱까지 전담하는 그는 잔나비를 앞으로만 나아가려는 동시대의 여타 밴드들과 달리 그 반대의 지점으로 안내한다.
< 초록을거머쥔우리는 >은 소박하다. 창밖을 보면서 산뜻하고 기분 좋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는 최정훈의 말처럼 그는 자연스레 떠오른 영감을 잔잔하고 포근한 선율과 일기장처럼 솔직한 가사로 표현했다. 노랫말과 어울리는 멜로디를 잘 찾아내고 구현하는 능력은 잔나비의 특기. 그래서 이번 수록곡들은 잔나비를 ‘브릿팝을 하는 산울림’으로 만들기도 하고 ‘고풍스런 장기하와 얼굴들’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한량처럼 느긋함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에 투영시킨 나른한 ‘레이디버드’와 순수한 클래식 소품의 ‘여름가을겨울 봄.’, 영국 밴드 이엘오의 판박이 ‘슬픔이여안녕’ 등 모두 네 곡을 품은 이 앨범 전체에 리버브를 풍성하게 걸어서 소리가 하늘을 부유하듯 자유롭다. 3인조로 축소된 사운드의 여백을 풍요롭게 채우기 위해 이펙터를 적극 활용한 모양새다. 네 곡의 넉넉하지 않은 수록곡 때문인지 ‘사랑하긴 했었나요’, ‘꿈나라 별나라’, ‘See your eyes’, ‘Good boy twist’처럼 여름에 어울리는 상쾌한 업템포 곡이 없이 가을과 겨울에 어울리는 노래들로 채웠다. 잔나비는 펜더믹으로 인한 무기력함을 음악으로 표현하되 희망적인 가사로 풀어내어 상투적인 접근을 피했다.
달리는 자동차에서는 작은 꽃들과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지만 천천히 걸으면 모든 것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음반은 그동안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들을 모아놓은 담백한 수채화이자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풍경사진이다. < 초록을거머쥔우리는 >은 현재 군복무를 하고 있는 기타리스트 김도형과 베이시스트 장경준이 다시 합류하기 전에 숨을 고르는 쉼표 같은 음반이다.
-수록곡-
1. 레이디버드 [추천]
2. 초록을거머쥔우리는
3. 여름가을겨울 봄. [추천]
4. 슬픔이여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