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연의 피부색을 표현하고자 < Beige >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신의 모습을 뚜렷하게 기록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담아낸 앨범은 그 뜻만큼이나 선명한 색깔, 그것도 다채로운 빛을 포착해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이미지로 키드밀리의 현재를 드러낸다.
완성도의 척추이자 그가 한 단계 진화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핵심은 프로덕션이다. 과시, 사랑, 명예 그리고 내면이라는 콘셉트를 부여한 4개의 구획은 테마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게스트를 초대하며 챕터의 포문을 연다.
'ron interlude'로 시작해 피에이치원과 릴러말즈를 거쳐 자신의 이름을 내건 'Kid milli interlude'로 마무리 짓는 4개의 인터루드가 그것이다. 이들은 감상의 포인트를 안내하는 표지판 역할을 수행하며 다양한 사운드를 지닌 17개의 곡이 적재적소에서 각자의 노릇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신을 비롯한 다른 아티스트의 이름을 곡명 위에 새긴 제작이 납득을 넘어 탁월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조타수로서 키를 뺏기지 않고 주인공 자리를 지키고 있는 키드밀리의 랩 덕이다. 음반의 중심에서 청각적 쾌감을 주는 시그니처 플로우가 독특한 명명법이 역설적으로 적절한 방식으로 객원을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 누구에게도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실력을 통해 모험 수의 리스크를 벗겨내고 멋지게 득점을 기록한 셈이다. 이미 한국 힙합 신에 한 '계파'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독특한 랩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이번 앨범이야말로 키드밀리 랩의 총체다. 시간을 거듭해 유려함과 동시에 부드러움까지 두른 랩은 이전에 그의 음악이 지니고 있던 피로함을 거의 완벽하게 해소한다. 덕분에 50분 가까이의 러닝타임에 과부족이 없다.
퓨처베이스(Future bass)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트랩 사운드인 레이지(Rage)를 적극 이용한 인트로와 그 분위기를 이어가는 'Honda !'가 강렬함을 선보이는가 하면, 라드뮤지엄과 함께한 'Simple poem'부터 'Still friend ?', 'R.I.P'가 팝적인 무드로 분위기를 전환한다.
건반과 드럼의 생명력으로 인스트루멘탈 요소를 강화한 'Test me ?'와 앨범 안에서 가장 단순한 플로우를 이용하면서도 동시에 파괴적인 감흥을 주는 '추월', 구성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지분을 차지한 'Kid milli interlude' 그리고 이어지는 아웃트로 'Bora' 까지 모두 한 번씩 언급해도 좋을 만큼 개별적으로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이들의 이음새를 매끄럽게 만들어 낸 디테일이 완성도에 매듭을 짓는다.
종합하면 키드밀리의 명백한 다음 단계임이 분명하다. 비범함을 드러냈던 < AI, The Playlist > 이후 커리어의 가장 중요한 앨범으로 회자될 < Beige >는 그의 이름을 한국 힙합 신의 중요한 위치 위에 올려 놓는다.
한동안 힙합 팬들 사이에서 넥스트 빈지노와 이센스가 누구인지 이야기가 오갔다. 절반은 농담조가 섞인 토론이었지만 분명 흔들리는 국내 힙합 신에 대한 걱정이 기저에 깔린 질문이었다. 올해 두 아티스트가 다시 역량을 증명하며 이러한 이야기가 아직 시기상조인 듯 보이지만 만일 비슷한 논쟁이 다시 오간다면 < Beige >는 키드밀리가 당당히 그 후보에 올라야 함을 증명하는 첫 번째 이유다.
-수록곡-
1. Ron interlude.
2. Beige theme
3. Honda ! [추천]
4. Simple poem (Feat. Rad Museum)
5. pH-1 interlude.
6. Still friend ? (Feat. pH-1) [추천]
7. R.I.P (Feat. B.I) [추천]
8. Test me ? [추천]
9. Leellamarz interlude.
10. 추월 [추천]
11. BNC (Feat. Sik-K, 우원재)
12. Coupe ! (Feat. lobonabeat!)
13. Lost and found freestyle
14. Let me down ! (Feat. Raf sandou)
15. 25 (Feat. 양홍원)
16. Kid milli interlude. [추천]
17. B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