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애플 인터뷰

쏜애플(Thornapple)

by 염동교

2023.10.01

데뷔 13년, 밴드 쏜애플이 지니는 무게감은 확고하다. 프런트퍼슨 윤성현의 착란적 노랫말과 홍동균(기타)과 심재현(베이스) 방요셉(드럼)이 구현한 정교하고 날카로운 사운드는 이내 그들을 국내 록 신의 독보적 지위에 올렸다. 자기장처럼 당기는 사운드스케이프에 홀린 팬들은 신도를 자처했고, 전국의 스쿨 밴드들이 '아지랑이'와 '시퍼런 봄' 카피로 '쿨함'의 체현을 갈망했다. 쏜애플의 공연이 흡사 교주와 신도들의 집회처럼 다가오는 이유다.

윤성현은 구성원 각각의 기획력과 음악적 아이디어가 잘 투영되었다는 측면에서 신보 < 동물 >에 만족감을 표했다. 메시지와 사운드가 조화로운 EP < 동물 >은 쏜애플의 또 다른 챕터를 예견한 변곡점이며 뮤직비디오와 부스 설치 등 다각적 활동을 시도한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 록밴드로서 쉽지 않을 전국투어를 성황리에 이어간 쏜애플은 10월 7일 하남 공연으로 한 달간의 대장정을 성료했다.



4년 만에 공개한 신보 < 동물 >을 소개해 달라.
윤성현(이하 윤): 정규 3집 < 계몽 >(2019)은 쏜애플이 지금껏 해온 이야기의 마침표와 같다. 이제 어떤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는데, 심적으로 힘든 기간을 거치면서 다음 앨범에 대한 추상적 이미지가 떠올랐고, 그것이 < 동물 >의 시작점이었다.

기존에 만든 곡과 새로 쓴 곡이 섞여 있고, 제작과정에서 데모를 많이 버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음반명은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개념의 동물은 아니다. '움직이는 존재'가 가진 공통점인 '유한성'과, 거기서 나오는 멜랑콜리에 천착했다. 유한성에 수반되는 우울과 욕구를 앨범에 담아내고 싶었다.

말씀하신 대로 앨범이 인간의 여러가지 욕구를 담아낸 것 같다.
홍동균(이하 홍):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멸종'은 죽음, '할시온'은 수면욕, '살'은 성욕, '파리의 왕'은 식욕, '게와 수돗물'은 생존욕구. 흔히 삶의 3대 욕구라고 불리지 않나. 물론 이는 처음부터 의도하고 배치했다기보다 작업 과정에서 자연스레 성립된 것이었다.


윤성현(보컬/기타)

이제 쏜애플의 공식적인 마지막 트랙은 '검은 별'에서 '게와 수돗물'이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 곡을 마지막에 배치했는지 궁금하다.
윤: '게와 수돗물'은 심적으로 가장 안 좋았을 때 쓴 곡이다. 마지막 후렴구 가사를 보면 < 계몽 >처럼 마침표를 찍는다기보다는 삶의 다음 장으로 가자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있고, 이런 뜻에서 마지막 트랙에 배치했다. 영감에 대한 갈증과 갈구가 녹아있는 셈이다.

심재현(이하 심): 곡 다듬는 과정이 정말 오래 걸렸다. 나머지 네 곡을 만드는 시간보다 '게와 수돗물' 작업 시간이 훨씬 더 길었던 것 같은데. 이 때 고생해서 그런지 그 뒤로부턴 비교적 순탄하게 풀려갔다. (웃음)

그렇다면 정확하게 완성 순서가 어떻게 되는건지.
윤: 제일 먼저 나온 게 마지막 트랙 '게와 수돗물', 마지막으로 나온 곡이 앨범의 첫번째 트랙 '멸종'. 그 외에는 비밀로 하겠다.

소개란에는 '너 또한 동물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문구만이 서술되어 있는데.
윤: 말 그대로다. 앨범 소개글 아이디어를 모으다 툭 하고 나온 문장이다. 가급적 짧게 쓰려 했지만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어쩌다 보니 이번 앨범엔 깊게 의도하지 않고 나온 것들이 많다.


심재현(베이스)

파격적인 앨범 커버가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작업하게 된 이미지인가.
심: 우선 기존의 쏜애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피하고 싶었다. 선별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인면양이 등장하자 거의 만장일치 의견이 나왔다. < 동물 >을 관통하는 그림이기도 하고. 사실 인면양 표정의 여러 후보 중에서는 지금보다 더 기괴하고 불쾌한 것도 있었다.

최근 전국투어에서 설치된 인면양 촬영부스는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심: 사전 회의에서 농담 식으로 나온 아이디어긴 하지만, 진짜로 실현될지는 몰랐다. (웃음) 생각보다 팬 여러분이 재밌게 즐겨주시고 계신 것 같다.

윤: 설마 진짜 할 줄 알았을까. 우리도 놀랐다.

가사가 독특하다. 추상적이면서도 독특한 내러티브를 가져와 청자의 상상력을 많이 요구하는 편인데,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
윤: 옛날에는 문학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지만 요즘은 일상에서 더 많은 영감을 얻는다. < 동물 >이 시사하는 것처럼 '정지'된 것보다 '생동'하는 것에 더 끌리는 셈이다. 그런 방식에서 여러모로 새로운 장을 여는 작품이기도 하다. '멸종'의 경우에는 “내가 마지막으로 남은 공룡 같다”는 지인의 운명론적인 말을 듣고 떠올렸다.

그렇다면 이번 < 동물 >이 쏜애플의 새로운 페이즈(phase)라고 봐도 되는지.
윤: 어떻게 보면 정규 1집 <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 >(2010)와 2집 < 이상기후 >(2014)를 첫번째 챕터, EP < 서울병 >(2016)과 정규 3집 < 계몽 >(2019)이 두번째 챕터였다고 본다. 신보를 분기점으로 세번째 챕터가 열린게 아닐까 싶다. 슬슬 새로운 걸 시도해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심재현은 이번 EP에서 '파리의 왕'의 단독 작곡을 맡았다. 1집의 인스트루멘탈 인트로 '피어나다' 이후로는 두번째 단독 작업물인데, 어떤 부분에 집중하며 만들었는가.
심: 예전에는 윤성현이 가져온 뼈대에 합주를 거쳐 여러 아이디어를 얹는 방식이었지만, 이번 EP는 각 트랙의 작곡자들의 기획이 고스란히 반영된 편이다. 윤성현이 쓴 '살'과 '게와 수돗물'같은 경우, 윤성현의 의도에 따라 베이스 연주를 맞췄고, 반대로 '파리의 왕'의 기타 트랙은 내 의도대로 따라갔다. (4분대 이후 급격하게 곡이 변하는데) 오히려 뒷부분이 미리 만들어 둔 부분이었다. 어느날 앞부분을 작업하다가 잘 정리가 되지 않자 가지고 있던 뒷부분을 한 번 붙여봤는데, 결과적으로 쏜애플스러운 곡이 나왔다. 평소 작업 방식과는 다르다.


홍동균(기타)

'멸종'의 뮤직비디오에는 사람들을 구하려는 회사원의 분투가 기록되고, '게와 수돗물'에서는 “살아가자”라는 외침이 등장한다. < 이상기후 >처럼 < 동물 >의 테마 역시 생존으로 봐도 좋을까.
윤: < 이상기후 >의 생존과 < 동물 >의 생존은 조금 다르다. 그때는 소위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저 “살아있는 것을 추구하면서 보고, 느끼는 것을 세상으로 다시 던지는” 즉자적 생존의 이야기였다. 그 얘기를 할 때의 나는 많이 젊었고 모종의 패기가 있었다.

그간 “살아있기에 사는 것이다”란 명제에 가까웠지만 어느덧 삶의 의미를 고찰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나는 왜 살고 있을까?”란 질문이 피어났고, 이번 앨범은 생존보단 삶에 대한 여러 질문과 관점이라고 보는게 더 가깝다.

최근 곡 길이가 점차 짧아지는 추세지만, 이번 EP 역시 5분가량의 긴 대곡 형식을 띠고 있다.
윤: 음, 많이 줄였다고 생각했는데. (일동 웃음) 외려 이번 앨범에선 장황한 부분들을 많이 줄이려 했다. 컴팩트하게 잘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밴드 음악, 특히 쏜애플을 보여주기엔 최소 4~5분대가 적절하다. 물론 애당초 곡 작업시 러닝타임은 신경 쓰지 않는다.

모든 정규가 10곡, EP가 5곡이다. 의도가 있는지.
윤: 약간 쓸데 없는 강박이다. 대칭을 맞추는 셈이다. 이번 인면양도 대칭이 포인트가 아닌가.

전반적인 곡 제작 방식이 궁금하다.
윤: 그간 계속 변화해왔다. 정규 1~3집까지는 내가 상상하던 여러 이미지를 멤버들과 구체화하는 과정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상기한 대로 트랙별 작곡자의 의도가 많이 반영되었다. 그전에는 디렉션을 빡빡하게 보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밴드원이 가진 개성을 더 튀어나오게 하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밴드로서 더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뮤직비디오를 비롯 음악감상회와 챌린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유다. 이번에는 전반적으로 활동 기조가 많이 변했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을 고수할 지는 모르지만 일단 결과물은 마음에 든다. 그전까지의 강박에서 처음으로 풀린 것 같다.


방요셉(드럼)

뮤직비디오의 비하인드를 공유해 달라.
방요셉(이하 방): '게와 수돗물' 뮤직비디오 촬영 내내 물을 정말 많이 맞았다. 하도 맞고 나니까 이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부터 겁을 먹게 되더라. '멸종'은 평소에 수트 입을 일 자체가 없다보니 옷차림부터 신선하게 다가왔다. 긴 대기시간을 버티면서 새벽까지 촬영하다보니 멤버들 전부 진이 빠진 모습이었다. 강남 한복판에서 음악을 이렇게 크게 틀어도 되나 싶기도 했고. 그래도 두 결과물이 이쁘게 잘 나와서 뿌듯했다.

심: 오랜만에 일 다운 일을 한거다.

윤: 우리가 지금까지 편하게 음악을 했다. (웃음)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하다. 개인적인 목표도 좋고, 팀적인 목표도 좋다.
윤: 일차적으론 < 동물 > 활동을 열심히하는 것이다. 뭐랄까, 음악가로서 내게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창작의 유한성과 여러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부분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작업물을 보여주고 싶다. 이번 앨범을 두고 쏜애플이 유해졌다고 하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했다고 보는게 자연스럽다. 같은 모습을 인위적으로 유지하려고 하거나 연기하는 건 쇼비즈니스 측면에서 좋을 지는 몰라도 쏜애플의 방향성과는 맞지 않다.

어느덧 쏜애플이라는 밴드는 1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긴 시간을 되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윤: 우여곡절이 없는 밴드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아직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개성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밴드라는 직업이 오래가긴 쉽지 않지만 쏜애플은 다행히 그럴 수 있었기에 감사한 마음이다. 멤버들과 같은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쏜애플 음악을 들어주는 팬들에게도 감사하다. 그전까지 청자를 덜 의식했지만 시간이 점차 쌓여가면서 우리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존재함으로 인해 이 모든게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즘 공식 질문이다. 나를 음악의 세계로 인도하게 해준 작품이나 인물이 있다면.
홍: 너바나의 < Nevermind >(1991). 밴드를 하고 싶게 만든 앨범이다. 청소년기에 커트 코베인이나 너바나가 준 영향력이 아직까지도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직도 그들의 애티튜드를 동경한다.

심: 중학교 2학년 신촌 신나라레코드에서 처음 산 프랑스 전자 음악 거장 장 미셸 자르의 1993년 작 < Chronologie >. 지금 하는 음악과는 거리가 있지만 음악 생활의 시작점이 된 의미있는 음반이다. 과거 MBC에서 송출한 장 미셸 자르의 라이브 생중계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다만 현재는 잘 듣지 않는 음반이다. (웃음)

윤: 홍동균과 마찬가지로 커트 코베인과 너바나가 없었으면 우리 같은 사람은 음악을 못 시작했을 것 같다. 너바나 등장 이전의 1980년대 하드록 헤비메탈 밴드들은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를 떠나 음악 자체를 잘 하는 실력자들이었다. 누구나 기타를 잡고 얘기를 하기에는 장벽이 높지 않았나. 커트 코베인이 있었기에, 단순한 코드와 애티튜드로 자신의 얘기를 한다는 어떠한 용기를 얻게 되었다. 아티스트의 자세를 가르쳐 준 것은 라디오헤드다. 앨범마다 너무 달라서 하나만 꼽기는 힘들다. 그들처럼 매 앨범마다 작법을 다르게 가고 싶다.

방: 어릴 때 집에 CD가 정말 많았고, 어머니가 틀어주신 퀸과 레드 제플린 같은 음악을 듣고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다. 크고 나서 찾아 들었던 음악들이 알고 보니 다 집에 있는 앨범이더라.

홍: 그렇다면 음악의 세계로 인도해준 인물이 어머니 아닌가. (웃음)

윤: 조기 교육이 이렇게 중요하다. 꼭 효도해라.

진행: 장준환, 김태훈, 염동교, 한성현
정리: 염동교
사진: MPMG MUSIC 제공

염동교(ydk8811@gmail.com)